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필자는 사무실에서 처음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과장님 한분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것을 봤는데, 이때만 해도 필자가 배트맨이니 X-MEN 이니 하는 미국 DC, Marble 코믹스의 히어로물에 한참 꽂혀있을때라 큼지막하게 대문자로 찍혀있는 'JUSTICE' 라는 타이틀만 보고 DC의 히어로물인 'Justice League'의 소설 버전인줄 알았다(ㅡㅡ;). 워낙에 자기 세계에서만 사는 인간이라 종종 이런 착각을 잘한다..하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 히어로물을 읽을분은 아니라서(과장님이) 물어봤더니 하버드의 강의를 책으로 낸 것이란다. 거기까지만 대충 듣고 필자는 또 한권의 자기계발서가 히트쳤나보다 생각하며 심드렁 했드랬다.

 

  필자는 자기계발서 종류를 싫어한다. '성공을 위한 7가지 습관' 이라던가 '아침형 인간' 이라던가 하는 종류를 말하는데, 얼마전까지 스테디셀러와 자기계발서를 같은종류로 혼동하던 무식한 필자인만큼 사실은 이런 계발서들을 읽어야 할텐데도 싫어한다. 뭐랄까 자기계발서를 읽고있으면 마치 트롯트를 듣고 있는 느낌이랄까? 트롯트가 나쁘다거나 하는건 아니고 단지 너무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라서 싫어하는 것으로, 왠지 문학이라던가 음악이라던가 하는 예술은 좀더 은유와 비유로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것도 또하나의 속물 근성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책들의 유용성을 폄훼하는것은 아니다. 좋은책들도 많고 그러한 좋은 책 한권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수 있음 또한 믿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좁은 소견으로 인한 오해가 풀린것은 EBS의 강의를 보고 나서이다. 사무실에서 자꾸 눈에 띄이고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도 종종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EBS에서 이 강의를 방송했던일이 있었음을 알고 요래조래 탐색한 결과 그 강의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멋진 강의였다. 방송을 위해서인지 상당부분 편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쉽고, 명쾌하고, 간결하면서도 요점을 딱딱 집고 넘어가는 명강의가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것은 하버드의 젊은 청춘 미녀들(퍼퍽!!..)@,.ㅜ))..이 아니고 그 많은 수강생을 상대로 매번 의견을 묻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가방끊이 짧아 대학에 가지를 못해서 우리나라 대학의 강의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필자가 경험했던 일반적인 강의는 수업의 70~90%정도를 강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초중고 수업은 말할것도 없고 사회에 나와서 들어본 전문 혹은 교양 강좌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EBS에서 편집되지 않은 실제 강의를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일대 석학이신 '도올' 선생님의 명강이라는 '중용' 또한 들어보면 대부분 일방적인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일관한다. 그러한 필자에게 끊임없이 학생들의 의견을 묻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대답하며, 강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그렇게 자기 생각을 토론하고 분석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부러웠었다. '자유의 나라' '기회의 땅' 이라는 미국의 자부심과 힘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는 강의였다고 생각한다.

 

  꽤나 강렬한 느낌을 가진 디자인의 소프트 커버 표지에 정갈한 편집으로 내부를 마감한 'JUSTICE'. 이 책에는 그러한 '센델' 교수의 다년간의 강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느낌이다. 그의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이 계속되는 상호간의 토론이었다면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 구비마다 제시되는 여러 실례들을 바탕으로 그러한 토론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쉽고 간결한 해설이다. 이 책에, 이 강의에 등장하는 고전 철학자와 철학이 몇가지인가? '벤담', '밀', '칸트', '공리주의', '자유 지상 주의' 등 수많은 철학 사상 고전이 등장하고 언급된다. 필자의 책읽기에 고전은 없다. 어렵고 졸립고 따분하다. 몇번이나 고전에 도전했지만 시쳇말로 수면제를 발라놓은듯해 매번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읽기에는 쉬운 '헷세'나 잘 모르고 봐도 인상적인 '까뮈'정도가 기억날뿐 필자에게 고전은 마치 뿌연 안개와 같은 느낌이다. 문학에서 이러한데 앞의 사상가의 철학서라면 깜깜 절벽쪽에 가깝다. 이렇게 난해하고 어려운 그들의 사상의 근본 원리를 '센델'은 여러 실례들과 토론을 통해 쉽고 간결하게 뽑아내어 눈앞에 보여주는 느낌이다. 물론 앞선 이들의 방대한 사상이 아무리 좋은 실례와 함께 한다고 해도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필자같은 이에게는 그 끝자락만을 잡기에도 상당한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그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가장 멋있는 점은 '센델'이 자신의 강의를 통해 어떤것이, 어떤길이 정의롭고 옳은 길인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읽는 내내 마음 한편으로 '이게 정답이야, 이게 바로 정의야'라고 가르쳐 줬으면 싶은 욕구를 느낀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니리라. 그러나 이 강의에서는 그렇게 하나의 쉬운 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앞선 이들과 앞선 사상들을 토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정의'에 대한 시각과 관념을 포괄적으로 나누고 정리하여 우리가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정의인가를 가르쳐 주는것이 아니라 정의의 '정체' 에 이르는 여러가지 길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길을 찾도록,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도록 그 단초를 제공할 뿐이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센델'이 생각하는 정의는, 자신 역시 강의를 듣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길을 찾고 있다는 듯이 '센델' 자신이 바라보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소박하게 얘기하는 느낌이다.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비교적 재미있고 비교적 쉽다고 대답하고 싶다. 인문, 그것도 철학 강의에서 서스펜스 소설에서와 같은 재미를 기대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한 극단적인 재미를 배제한다면 필자는 재미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국내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거대한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가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만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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