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필자의 책읽기는 비교적 느리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딱히 정독을 하는편이라서는 아니고 목적 자체가 즐김에 있다보니 그냥 짬짬히 읽는 버릇때문인듯 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리뷰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지해 읽던 당시에 남았던 느낌이나 인상을 주로 하여 리뷰를 하는 편이다 보니 앞으로도 따끈따끈 리뷰는 자주 보기는 힘드시리라. 뭐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슈퍼 블로거도 아닌 필자의 글을 누가 기다리겠나 싶은만큼 부담은 없다. 으하하~~퍼퍼퍽!!..ㅠㅠ;

 

필자가 이 작품을 구매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품절] 도서였기 때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을 그렇게 구하고 싶었는데 그놈의 '절판' 때문에 좌절을 경험했던 필자로서는 - 결국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알라딘과의 인연이 되기도 했지만 - '절판', '품절' 혹은 '한정판'의 태그만 보여도 충동 구매의 열정이 불끈 솟아 오르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알라딘의 '품절'도서 특별 판매전은 마치 고양이가 개다래를 거부할 없듯 딸려갈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인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체선택-바로구매를 누르고 싶었으나 돈이 없는 관계로(ㅠㅠ) 나름 느낌이 있는 작품을 고르고 고른것이 이 '핑거포스트 1663' 이었다.

기대반 흥분반으로 풀어본 택배 박스에 담긴 '핑거포스트 1663' 세트는, 딱딱한 하드케이스에 소프트커버의 1,2권이 꽉 짜여진 딴딴한 느낌으로 들어있는 2권 셋트로 손에 드는 순간, '' 이거야 하는 느낌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베르사이유 궁을 뒤로하고 인물 초상화가 오버래핑 되어있는 배경에, 페인트로 찍은듯한 낡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제목이 인쇄된 표지 디자인 또한 제법 마음에 들었고, 아담한 사이즈의 절판임에도 묵직한 두께와 무게감이 느껴지는것도 참 좋았다. 페이지 편집은 약간 빡빡한 느낌이었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일반 소설에 비해 비교적 적은 사이즈의 지면을 충실하게 활용한 느낌이라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것 또한 ''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제법 묵직한 두께임에도 아담한 사이즈로 휴대하며 읽기에 최적의 느낌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는 '서해문집'이라는 출판사는 제법 책의 느낌을 살릴 줄 아는 출판사가 아닌가 싶다.

 

책소개에도 잘 나와있듯이 이 작품은 한 가지 사건을 바라보는 4명의 진술(진술이라기 보다는 수기)로 진행된다.

 

원제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 '길안내표시(Fingerpost)가 가리키는 증례'를 말한다. 17세기 초 귀납법을 확립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역저 <노붐 오르가눔>에 나오는 이 말은, 어떤 문제가 미궁에 빠졌을 때 오로지 한 길을 가리키며 모든 형태의 증거를 압도하는 독자적 증거를 뜻한다.

 

필자는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프랜시스 베이컨' 4가지 우상에 대한한 구절이 각 챕터의 첫장마다 수록되어 있고 그에 대비되는 각 인물들의 기술이 시작된다. 4개의 우상, 4개의 증언중 '핑거포스트'의 증언은 과연 무엇일까? 한 대학교수의 죽음과 그 이면에서 펼쳐지는 군상들의 이야기. 과녕 진실은 무엇일까? 1663년의 옥스퍼드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책의 뒷표지에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을 언급한 작품에 대한 찬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필자가 느끼기에 <핑거포스트 1663> '에코'의 작품군과는 좀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는 결단코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워낙에 전문적인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독자에게 상당한 기반 지식을 요구할 뿐 아니라 문체 또한 뻑뻑하고 고전풍이라 상당히 부담스러운 반면, <핑거포스트 1663>은 생생한 시대배경과 당시의 인식들을 통해 작가의 방대한 배경지식과 역사인식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음에도 결코 어렵다거나 부담스러운 느낌 없이 부드럽게 읽을 수 있다. 두번째로 <장미의 이름>은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미스터리로는 충분할 정도로 중세와 비의학을 배경으로 숨겨진 음모를 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핑거포트스 1663>은 비록 한 인물의 죽음과 그 주변인물의 증언이라는 구도를 택하고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 사건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펼쳐지는 증인들과 주변 인물들이 내면 이야기를 시대배경과 함께 기술함으로써 '인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 '장미의 이름'은 미스테리를 위해 중세와 비의학이라는 배경을 택한 느낌이라면, '핑거포스트 1663'은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미스테리의 구도를 택한 느낌이다.

 

솔찍히 말하자면 필자는 이 작품에서 커다란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비록 종반에 따듯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미스테리 소설로서 기가막힌 수수께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숨막히는 긴장감이나 정신없는 속도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나 필자는 이 작품을 적어도 '볼만한' 작품 이라고는 말하고 싶다. 비록 자극적인 재미는 없지만 잔잔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지독한 편견과 종종 혐오감까지 느끼게 하는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를 보여주는 증인들의 모습이, 우리시대의 정치가와 기득권 세력의 역겨운 모습과 너무 닮아있음에 신기함까지 느꼈다. 이 부분이 필자는 '핑거포스트 1663'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가 우리시대의 인물인 만큼 당연히 현대의 부조리한 인간 군상을 표현 하였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작품을 읽는동안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읽는 내내 필자는 1600년대 작가의 작품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시대의 작품인데 왜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지?' '400년 전의 인간 군상이 어쩜 우리시대와 같을까?'라고 의문스러워 하기까지했다. 예를 들어 외도를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지는 여인이 나오는 장면에서 사형당하는 여인이 강간을 당했다며 무죄를 주장하는데, '쾌락을 느껴야만 임신이 된다. 그러므로 강간을 주장하는 저 여인의 주장은 틀렸다'고 한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그런 상식이 버젓이 상식으로 대우받던 시기인 것이다. 그러한 생생하고 디테일한 시대 배경이 이 작품, 그리고 작가 '이언 피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제멋대로 별점은 재미있다에 3, 외형 및 편집에 4, 소장가치에 3.5 대충 평균 3.5점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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