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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외 24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전부터 한동안 젊은이들 입에선 '상실의 시대'니 '하루키'니 하는 낱말에 중독이라도 된 듯 너도 나도 입에 달고 살았고 각종 광고들도 마음껏 우려 먹을 듯이 그러했다. 그런 와중에도 난, 소설류를 별로 안 좋아하고, 더구나 일본풍 소설(내가 지극히 좋아하는 미우라 아야꼬를 비롯한 몇 작가를 제외한)에 그다지 흥미 없었다.
"참새 코빼기보다 짧은 꼬맹이 소설"로 단편소설이 수모를 당했다는 단편의 거장 체호프의 말이 무색하게 나는 단편 소설도 좋아한다. 짧게 스치며 지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도 하고 담백함 때문이기도 하다. 장편 소설의 찌릿찌릿한 절정과 위기 부분의 전율, 밤을 홀딱 새며 눈이 새빨개지도록 끝을 보도록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긴장감, 무엇보다 그물처럼 촘촘한 묘사들을 한없이 좋아하는 나로서는 장편소설의 지루한 숨막힘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단편소설은 단편만의 상큼한 매력이 있다. 이 책도 전문가들의 말을 빌자면 하루키의 뛰어난 문학적 특성을 잘 살린 단편만을 모아 놓았다고 한다.
난 아직도 하루키의 문학적 특성이 뭔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몸으로 직접 체득한 바는 아니지만, 이 책을 보니까 하루키는 일본작가이면서 일본풍의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진다. 그가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스티븐 킹을 비롯하여 트루민 카포티, 리처드 브로우티건, 단편 작가 폴 세로 등 미국의 중견작가들이란 점이 이채롭다. 물론 내가 고작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정도 밖에 접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들과 하루키 작품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더 힘든 일이지만, 또, 장편이 아닌 하루키의 단편들과 견줄 수 있기나 한지도 오리무중이지만. 확실한 건, 이 책에서 느낀 하루키의 문체가 본인은 의도적으로 자국소설을 기피하며 어릴 적부터 미국소설 페이퍼 본으로 섭렵하여 미국적인 문체를 가지려고 했다지만 아무래도 온전한 미국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가 왜 그런 노력을 했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자국 소설을 버리고 싶을 만큼 미국 냄새가 뭐 좋다고?).
아무튼, "감정의 군더더기 없이 가벼운 문체. 대화체에서 톡톡 살아나는 신선한 감성"
이라고 하루키의 문체를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하게 된 게 이 책을 읽은 소산이라면 소산이다.
참고로 하루키는 자신의 문체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잠시 옮겨 보겠다.
"저의 문체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저는 한 문장 속에 절대로 필요한 것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둘째 문장에는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음악, 특히 재즈에서 배운 것입니다. 재즈에서는 훌륭한 리듬이 훌륭한 즉흥 연주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모든 것은 가벼운 발놀림에 달려 있습니다. 그 리듬을 타려면 여분의 무게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불필요한 무게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분의 지방은 빼야합니다."
-버클리 대학에서의 대담 중에서-
짧고 가벼워 스쳐가는 이야기 속에서 하루키가 말하는 '자아'와 '존재증명'의 가볍지 않은 주제를 온전히 파악하진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단편 소설이 주는 짧은 길이에 대비한 심오한 주제의 접근은 가슴에 여운이 남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꼭지씩 읽어 보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단편의 장점을 충분히 살렸다.
25편 작품 중에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글의 소재가 전혀 될 것 같지 않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가볍게 스케치하는 솜씨와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를 독자에게 전혀 강요하지 않는 듯이 짤막하게 끝내 버리는 모습이 한마디로 "쿨~"하다./050327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