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위험한 가계.196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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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을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셔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튀밥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 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셨다. 봐라. 나는 쉽게 뽑혀지지 않는 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