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에 시 읽기 1 나라말 중학생 문고
배창환 엮음 / 나라말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유치원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고 감상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러나, 문학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시집'을 주면 첫인상이 대번에 굳어진다.
시험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시험공부를 하자면 시를 이리저리 쪼개고 발겨서 뭘 그리도 많이도 외워야 하는지...게다가 아이들은 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에 공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공부가 순전히 암기식 공부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걸 보면, 차라리 시는 시험범위에서 제외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앗. 어리석은지고, 그렇게 된다면 이번엔 아무도 시를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다. 시험에 안 나오는 건 공부할 가치도 없다는 망조가 깃든 생각이 편만하니....

'국어시간에 시읽기'를 엮은 배창환님은 나보다도 훨씬 앞서 이런 고민을 하신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수록된 시들을 한 편 씩 읽어가는데 '어쩌면 이렇게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좋은 시들을 골랐을까!~'하는 감탄이 우러나왔다. 오랫동안 교단에서 직접 학생들과 만나면서 연구하고 노력한 선생님이심을 느낄 수 있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인 학창시절엔 그 무엇보다도 좋은 시를 만나야 하고,  시 맛을 알아야 하고, 또 암송하며 산문 형식의 일기를 쓸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심상을 시로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한편 한편이 주옥같은 시인데, 학생들이 이해하기가 난해한 현학적인 시어들보단 내면을 진실하고도 소박하게 조명한 시가 많다. 시 맛을 느끼기에 아주 적합한, 학생들 눈높이의 쉽고 좋은 시들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지은 생동감 넘치는 시를 읽는 맛도 쏠쏠하다. 시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든 언어들을 나열해 논 게 아니라, 언어의 함축미를 가진 의미있는 아름다운 표현이란 걸 체험하게 한다.

가까운 일상-가족, 이웃, 삶을 소재로부터 삶의 의미, 지혜, 생명, 그리움, 역사 등 세계로 시야를 넓혀가는 소재들을 다룬 시가 실렸다. 시와 대화하며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이며 세계와 대화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시는 김용택님의 "이 바쁜 때 웬 설사"이다.

이 바쁜 때 웬 설사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051213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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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12-1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택님 시들 좋지 않아요??
이 시하고 콩이던가요??참 좋아했는데..(제가 치매기가 심각해서 돌아서면 잊습니다)

진주 2005-12-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 너는 죽었다 -말씀이시죠? ㅋㅋ 바로 뒷장에 이 시도 있네요.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콩 잡으러 가는데/ 어.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진주 2005-12-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제봐도...귀천(천상병)과 꽃(김춘수)이 좋던데..아이들은 웃기고 재미나는 걸 일단은 좋아하더라구요. ㅎㅎ

반딧불,, 2005-12-1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콩 , 너는 죽었다.
좋아요.
천상병과 김춘수를 이해하기엔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요.
저도 이십대에는 그냥 그랬었는걸요.

진주 2005-12-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부에서 교양국어가 있긴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시는 고등학교 때 배운 실력으로 평생을 버티는 거 같아요. 학창시절에 시를 제대로 보는 눈을 기르지 않으면, 또는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면...어른이 되어서 빈약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나봐요. 그래서, 엮은이 배창환선생님의 말씀대로, 상업주의 출판문화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이끌려 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인지, 중고생 교과서에 다루는 시들은 어려운 게 참 많아요. 학창시절에 중요한 건 다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 때문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걸 공부하는 학생들..참....대단하단..말 밖엔....

반딧불,, 2005-12-1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른 넘어서 이해한 시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럼에도 그때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죠. 저도 그때 배운 것이 전부인 듯 합니다.

프레이야 2005-12-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택님의 시는 가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웃음이 묻어나요. 마음에 와닿는 시는 세월따라 나이따라 변해가는 것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