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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ㅣ 겨레아동문학선집 1
방정환 외 지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엮음 / 보리 / 1999년 4월
평점 :
이 책에는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태준님의 <엄마마중>에 대한 감상을 올립니다.
이 동화는 한 편의 시 같습니다.
이제 겨우 말이나 할 줄 아는 아주 작은 꼬마가 수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 근대의 거리의 풍경 속에서 엄마 마중 나오는 그림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이야기 서두에서부터 날씨는 얼마나 매서운지 아가의 코끝이 빨갛다고 읽는 이의 모성(또는 부성)을 단번에 끌어당깁니다. '쯧쯧 가여워라, 날도 찬데 엄마는 어디 가셨을까?" 하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철없이 아장아장 걷는 꼬마 뒤를 독자들은 부랴부랴 따라 나섭니다.
그렇다고 아가가 불쌍하리만큼 가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애처롭긴 하지만 하는 모양이 기특해서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전차 차장에게 또박또박 제 할 말은 다 하는 것 좀 보세요. 바쁘고 험난한 세상살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떠나버립니다. 그 중에 단 한 사람의 차장이 아기를 걱정해 줍니다.
저는 단 두 줄로 끝을 짓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합니다.
여전히 찬바람은 불고 있고, 전차는 소란스럽게 왔다가길 반복하고, 그 속에 코가 새빨간 우리 아기가 거기 서 있습니다. 아! 어쩌려구! 저렇게 어린 아기를 기다리게 해 놓고 엄마는 왜 아직 안 오시는 걸까. 아기는 얼마 추울까, 속으로 울진 않을까......
우리는 이제 엄마가 속히 와서 꽁꽁 얼어 있는 아기 볼도 어루만져 주고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며 포근한 집으로 빨리 들어가길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되고 맙니다. 엄마가 오기만 오면 추운데서 오랫동안 떨며 기다린 아기의 서러움이야 흔적도 없이 지워지고 말텐데요......
그러나 아무리 책을 펼쳐 놓고 기다려도 엄마는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기의 옆집 아줌마라면 달래서 업고 들어오고 싶어도 작가는 단호하게 코가 새빨간 채로 엄마만 기다리는 아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점점 줌 아웃시키는 감독처럼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맙니다.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해야 아름답습니다. 이야기는 허구지만 또한 진실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이야기가 발표 된지 7 년 만에 해방이 된다는 걸 알지만, 당시엔 그 날을 미리 알 순 없었겠지요. 독립을 기다리는 애처로운 조선백성이 아기라면, 엄마는 독립된 조선이 아닐까요? 엄마도 아기가 보고 싶겠지만 아직은 오시지 못한다는 걸 이야기 끝에서 보여줍니다. 그런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는 아직 어리고 약하디 약한 아기라서 엄마 마중하는 것이 춥고 힘들지만 엄마가 오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아기는 저물도록 엄마가 오실 때까지 꿋꿋하게 기다릴 수 있겠지요.
식민지 치하의 다른 동화작가들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작품을 많이 썼지만 이 태준님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소망이 잘 드러나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독립과 빗대지 않고 순수하게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모습으로만 봐도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요? 만약에 이 장면의 삽화를 엄마가 돌아와서 좋아라 손잡고 돌아가는 그림으로 그렸다면 “휴~”하고 마음은 놓일 런지 모르지만 이 글이 주는 가슴이 찡하도록 아름다움은 사그라졌을 것입니다. 만난 후의 기쁨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순간도 너무나 귀중하고 아름답습니다. 기다림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었고, 기다리면서 갈망한 만큼 만난 후의 기쁨이 더 배가되니까요.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 동화가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 것 같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아기의 기다림이 주는 아름답고 가슴 찡한 감동 말이에요!
-050906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