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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ㅣ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할머니>라는 제목과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라는 부제목만 보고 슬프고 애처롭거나 다소 궁상스러운 분위기라고 지레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할머니는 이상석의 "외할매 생각"에 나오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가 아닌 독일 할머니라서 그런지 파격(?)에 가까운 할머니 모습을 보여 준다. 활기차고 당당한 할머니의 모습 때문에 책의 분위기는 유쾌하고 건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진한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다섯 살 난 칼레는 교통사교로 부모를 다 잃게 된다. 할머니는 손자를 고아원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연로한 나이지만 직접 돌보기로 작정한다. 할머니가 어린 아이를 돌보기엔 체력이나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 힘겹다. 할머니는 광고용지 나르기 같은 일도 하고 적은 금액의 연금으로 검소한 생활을 한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칼레와 할머니는 장장 60년의 나이차이 때문에 한동안 서로 티격태격 부딪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유교의 사관으로는 손자가 할머니에게 불만을 말하는 것은 불손하게밖엔 봐주지 않을 것이다. 어린 손자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사고와 행동, 또 생활고와 손자 양육이 힘에 겨워 가끔은 투덜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현실감있게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함께 5년을 살면서 손자와 할머니가 서로 가까워지고 이해하는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당당하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시던 할머니를 통해 칼레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다. 궁색한 생활과 고아라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위축될 수 밖에 없을 텐데, 칼레가 공부는 다소 못하지만 축구도 잘 하고 친구도 잘 사귀는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칼레가 열 살 생일 무렵 할머니는 발병한다. 그간 독자의 마음 뒷편에서 조바심을 내게 하던 걱정거리가 실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어린 손자의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의 병듦과 돌아가심에 대한 염려가 이 책을 손에 쥘 때부터 떠나지 않았는데.....아픈 것을 숨기고 며칠을 버티던 할머니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칼레에게 의사를 불러달라고 말할 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할머니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칼레에겐 할머니의 부재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그러나 칼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대처한다. 할머니가 입원하신 이 주 동안 혼자서 집안 청소도 말끔하게 하고 학교도 다니는 걸 보면 그동안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나약하게 키우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할머니가 안 계실 동안 사회복지과 직원이 매일 와서 숙제를 도와주고 이웃들이 칼레를 보살피는 것은 손가정의 아이가 어긋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랑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복지정책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칼레 나이 열 살, 할머니는 일흔. 퇴원한 할머니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 아직 어리지만, 그렇다고 결코 어리지만은 않은 칼레와 함께 앉아 장래의 일을 담담하게 의논한다. 나는 이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나라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지만 할머니가 혈육을 사랑하는 진심은 어느 할머니나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칼레 할머니의 멋진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칼레 할머니는 좀 더 지혜롭고 현실적인 케릭터이다. 사랑하는 손자를 언제까지나 살아서 돌봐 줄 순 없지만 할머니는 손자에게 강인한 정신력과 독립심을 쉼없이 교육하였기 때문이다 (끝에서 나는 주착없게도 펑펑 울었다).
050614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