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혜의 메이저 밥상 - 맛있는 음식으로 날마다 행복한
박리혜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탐스런 과일나무 아래 앞치마 두른 다소곳한 리혜씨의 모습이 실린 표지에 내 시선이 잡혔다. 사람 키를 두 배나 넘기는 압도적인 그 과일 나무가 친정집 뒷마당에 있는 나무(유자도 아니고 오렌지도 아닌 그런 종류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라고 할 때부터 나는 이 책을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실용서 요리책이 아니라 요리하는 '이야기책'으로 받아들였다. 잔디가 깔리고 단정하게 정리된 뒷마당에 달콤한 물이 가득한 샛노란 열매가 열리는 과실수를 심고 아욱과 호박잎 따위 푸성귀를 심는 집에서 자라난 여자 아이 리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박찬호의 아내라는 타이틀보다 그 점이 부러웠다. 열 살 될 때부터 요리를 시작할 수밖에 없도록 요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같다. 주관적인 이런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절반 가까운 분량의 리혜씨의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요리를 좋아하게 된 이야기, 남편 찬호씨가 어떻게 해주면 잘 먹으며 시어머님께 요리전수받는 이야기 등. 보통 요리책의 준비재료-다듬기-조리-완성된 음식사진으로 구성하는 것 옆에 따옴표로 리혜씨의 주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쏠쏠하게 담아두었다.
내가 갓 결혼한 새댁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거기 있다. 인스턴트 패스트푸드로 밥상을 차리거나 아예 아침밥 굶는 집도 허다한데 리혜씨는 가족을 위해 아침밥을 차리는 이야기를 한다. 이른 아침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내 맑은 국을 끓이고 채소와 계란과 두부로 반찬을 만들 때 그릴에서는 생선이 구워지고 있다는 그녀의 아침 풍경이 평화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전을 겪은 주부라면 알 것이다. 보기만큼 현실 주방은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단 달디단 아침잠을 반납해야 하고 한정된 시간 안에 두 아이와 남편을 깨워가며 '밥,국,반찬 한 두가지, 생선'를 창조(!)하여 상을 차려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방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물론 리혜씨가 요리공부를 전공했고 요리를 직업으로 삼았던 여자라서 나같은 주부보다는 낫겠지만 아침마다 한결같이 사랑과 정성으로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우리가 십 년, 이십 년 더 이상의 세월동안 지치지 않고 밥상을 차려 내려면 사명감 같은 걸로 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리혜씨의 밑바탕 마음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형편에 따라 밥을 남편이 하건 아내가 하건 가족을 위해 상을 차리는 건 희생을 감수한 사랑의 배려이다. 리혜씨가 밥상을 차리는 것으로도 남편 박찬호에게 큰힘이 되는 내조라고 생각한다.
신혼부부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두번째 이유는, 실전에 필요한 음식들이 소개되었고 그 요리방법이 쉽다는 점이다. 소개된 음식들은 우리가 날마다 흔하게 접하는 음식들이라서 아주 실용적이다. 이렇게 자주 먹는 음식이 만드는 방법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하면 스트레스가 될 텐데 리혜씨는 수월하게 요리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먹을 줄만 알지 막상 만들지는 못하는 사람들, 요리에 취미가 없고 재주가 없더라도 밥을 제손으로 해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토속적인 한국 식성인 남편을 위해 그녀가 끓이는 맑은 국과 매운탕, 갓가지 나물 반찬같은 한식요리는 당장 따라할 수 있어 좋고, 제일교포 3세인 그녀의 입맛으로 전수해주는 일식요리 팁들도 꽤 괜찮다. 한식과 상통하는 점이 많은 일식이 요즘 많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어서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집으로 손님초대할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그녀가 제안하는 특별식은 도전해볼만하다. 결혼전 박찬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갈릭소스스테이크는 레시피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만간 나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아쉬운 점은 밥상 사진까지 곁들여 편집했더라면 더 좋았지 싶다. 세련된 주방사진과 가지런히 진열된 접시와 조리기구 사진들은 여성지만 봐도 넘쳐난다. 식상한 그런 사진을 빼고 리혜씨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땀에 흥건히 젖기까지 열성적으로 차린 아침 밥상들이 어떤 모습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 사진 몇 컷이 있다면 밥상 차리는 사람들에게 참고도 되고 더 실용적일 것이다. 그리고 찬호씨가 그 밥을 먹는 모습의 등짝이라도 실렸더라면-다른 요리책이라면 이런 걸 요구가 당찮겠지만 이게 보통 요리책인가? 요리책에 남편 찬호씨 이야기가 반이다- 리혜씨의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20110121ㄱ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