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거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詩 이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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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8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7-0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무슨 일일까나....^^
 


 

오늘 아침, 외출 준비를 하는 나를 괴롭히던 중, 카메라에 딱 걸림! ㅎㅎ
저 앙다문 입술, 너무 귀엽다~~~ 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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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0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귀여워라...^^ 저 옆의 물건은 자동 물 공급기 같은거예요?

플레져 2005-07-0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네~ 저 물통 끝에 쇠꼭지 보이시죠? 믹키가 저기에 혀를 갖다대면 물이 나와요. 혀를 계속 낼롬거려야 물이 나온다는...ㅎㅎ

어룸 2005-07-0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어머어머어머어머♡ 넘 이뻐용!!! 이거 퍼갈래용~>ㅂ<

인터라겐 2005-07-0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강아쥐도 까만데 어찌 이리 다를수가...흑흑

플레져 2005-07-0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풀님, 지금 제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흐흐흐...
인터라겐님, 밤엔 님의 강아지도 잘 안보이죠? 너무 까매서 가끔 강아지를 밟게 될까봐 걱정되곤 해요 ㅎㅎ
 

거미의 계절이 왔다 오월과
유월 사이 해와
그늘의 다툼이 시작되고
거미가 사방에 집을 짓는다


이상하다 거미줄을 통해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한때 내가 바라던 것들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그 중심점에 거미만이 고독하게 매달려 있다


돌 위에 거미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나는
한낮에 거미 곁을 지나간다
나에게도 거미와 같은 어린시절이 있었다
거미, 네가 헤쳐나갈 수많은 외로운 시간들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거미에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다만 오월과 유월 사이 내
안의 거미를 지켜볼 뿐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것


나는 해를 배경으로 거미를 바라본다
내가 삶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이고
또 깨닫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거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에도
거미는 해를 등진 채 분주히 집을 짓고 있었다

詩 : 류시화



* 거미 관련 사진, 그림이 없어 벡진스키의 러브 로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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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05-07-0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봤을 때는 이면우? 박성우? 했습니다. 류시화,의 시군요. 이 시도, 좋네요.
내친김에, 다른 '거미'도 놓고 갑니다.
(아, 백진스키의 그림, 좋아요. 좋아하는 화가라지요.)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거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이면우, '거미',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 2001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生) 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 박성우, '거미', <거미>, 창비, 2002

로드무비 2005-07-06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님이 올리신 시 두 편도 참 좋네요.
플레져님, 오늘 저 모처럼 알라딘에서 하루죙일 놀았더니 허리가 아파요.
리뷰는 안 쓰고 책 살까말까 넣었다뺐다 그 난리였다오.;;;
벡진스키의 저 그림은 다시 봐도 좋네요.^^

플레져 2005-07-0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케이아이엠제이아이님...박성우의 거미는 저두 참 좋아하는 시인데, 이면우 시는 첨이에요. 내일 페이퍼로 올릴래요. 고마워요 ^^
로드무비님, 알라디너의 영원한 고민이자 낙이 될 것 같어요. 제게는 이제 취미 생활이 됐다는...흐흐...

돌바람 2005-07-0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월의 시 중에 '거미가 눈에 띄는 달'이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래도 제게는 안 보였어요. 그러다 아이가 부쩍 거미다. 여기도 여기도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고 보니 아이가 가리키는 곳마다 거미줄이 있더라구요. 참 신기하지요. 첫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즉에 인사드리려 했으나 들락거리기만 하고 오늘이 처음이네요. 자주 뵐게요. 아, 아쿠타가와의 <거미줄>도 생각나네요.

플레져 2005-07-06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반갑습니다. 언제나 처음 인사 드릴 때는 설렘 한가득입니다 ^^ 아이만 포착할 수 있는 그 무엇 덕분에 어른이 아이의 눈을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제게 거미는 그닥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시와 소설에서 만나는 거미덕분에 근심 거미로 여기는 (미신이겠죠?^^;;;) 밤 거미를 보아도 두렵지 않아요. 아쿠타가와의 거미줄, 찾아봐야겠어요 ^^ 고맙습니다.
 

편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도 없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내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을 쓰면 한 귀절을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詩 :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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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플레져님께 편지 한 통 받아봤으면 좋겠다......^^

플레져 2005-07-0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쓸겁니다!! ^^

히나 2005-07-0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덤으로 제게도 ^^

플레져 2005-07-0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께도 쓸겁니다!! ^^

mira95 2005-07-0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플레져 2005-07-0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미라님께도!! ^^

2005-07-04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7-0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은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을 겁니다.

플레져 2005-07-0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갖고 계시는군요...저두...^^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詩 안도현  畵 헤몽 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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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5-07-02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좋지만 그림도 예쁘네요^^

플레져 2005-07-0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라님,심장을 열어보일 수 있다면 사랑이 어떻게 될까요? ^^

날개 2005-07-0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정말 이쁘다.. 플레져님 닮은 그림이예요..^^

2005-07-03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