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전2권 세트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이것 또한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예술가로 보면 피카소가 결혼을 수도 없이 했고 화풍이 바뀌는 것은 바로 애인이 바뀌는 것이었다고 한다. 경영자로 보면 잭 웰치가 결혼을 3번째 했다. 그렇게 거창한 사람 아니고 평범한 서민들의 경우도 로또가 되면 이혼을 고려한다고 한다. 

가깝게 내 주변에서도 수십억 이상의 제법 적지 않은 돈을 자신만의 힘으로 벌어들인 전 직장 여자동료는 과감히 이혼을 선택했다. 자신 만큼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 남편이 아주아주 얕잡아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그녀는 대학교때의 연인을 취직하면서 회사 동료로 바꾼 전력이 있었다. 그럴만한 힘은 물론 미모다.

주인공이 일에 빠지면 빠질수록 바닥에서 헤메이고 있는 남자친구는 점점 작아 보인다. 파티에서 대작가를 만나고 그의 연줄로 난관을 뚫게 되는 경험을 하다보면 그녀에게 보통의 삶은 더욱 거리를 느끼게 된다. 갑자기 등장하는 오랜 친구들의 순진한 생각은 사실 소설적 장치일 뿐이고 보통사람들의 도덕율일 뿐이다.
실제 세계라면 차라리 과감히 무능한 네가 싫어하고 애인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럽다.

영주가 모든 것을 바치고 추구하는 권력의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이 의의가 있을까?
답은 당연히 있다가 된다. 드라마에서 아니면 적당한 소설책에서 도덕을 통해 세계를 보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더럽다고 부정하는 것이 권력이지만 조금이라도 맛을 본 사람은 그렇지 못하게 된다.
그게 멋이 없다면 권력을 쟁취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그렇게 다반사로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권력을 잡기 위해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한반도 너머의 김정일도 굶어죽던 말던 자신이 물려받은 권력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 한다.
이들의 심리를 아직 이해못하겠다면 긴 말보다는 마키아벨리의 고전 군주론을 권해드리고 싶다.
군주의 세계는 보통 사람의 세계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기준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큰 일을 치르지 않아도 조직 생활에서 작은 권력 투쟁은 늘 일어난다.
가장 못 견뎌하는 것 중 하나가 아래라고 생각한 후배나 부하직원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싫기 때문이 미국의 경우 절대로 자신보다 유능한 직원을 바로 아래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바 피터의 법칙으로 이를 막기위해 많은 기업들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배를 제치는 것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영주가 냉정하게 권유를 할 때 이를 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리의 여행, 업계의 최고봉을 만나는 영광 더불어 일류 레스토랑 등 갖은 혜택은
쉽게 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큰 떡을 그냥 버릴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에 자연스러운 사고라는
해결책이 나타난다.
어쨌든 파리에 선 주인공의 모습 또한 냉정하게 부하를 해고하고 아래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몰아붙이는 영주의 모습에 점점 다가가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교훈이 나타난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유사한 경력과 역량을 가진 경쟁자다.
사원시절 가깝게 지내기 시작해서 호형호제 하던 사이가 어느새 임원 자리 하나를 놓고 싸우게
되자 으르릉 대게 되고 결국 한쪽이 그 자리르 차지하게 되었다. 보고하는 과정에서 이제 부하가 된
옛 친구에게 서류가 날라가고 온갖 모욕적인 말이 내뱉어진다. 한참 후배들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아직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임원의 자리가 불안해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내가 모시던 부장님은 졸음에서 깨어나
열심히 준비를 하고 발표를 하며 정열을 다시 불태웠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실패였지만.

이런 경쟁관계를 끊임없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조직이다. 그리고 자신의 역량 보다 더 대우받기도
하고 덜 대우받기도 하는 것은 역학관계와 권력의 생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영주는 가정이 원만하지 않았고 사적인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힘을 주는 무엇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향해 쏟아지는 spot light 그 환호 속으로 자신을 던지면서
다시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다.
카메라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수 많은 사진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눈물가 희생, 잔혹함을
보면서 더 이상 그 미소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주인공은 더 이상 영주를 따라가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서로는 서로를 인정했고 주인공은 소원대로 기자가 되었으며 나아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소설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바닥에서 오래 머물고 한계단씩 올라가려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그녀 또한 충분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했고 고생을 단지 고생에 그치게 하지
않고 더 나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경험을 다듬어 스토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것 바로 그런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연금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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