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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마을 식당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작은 바, 어스름한 불빛에 달아오른 얼굴들..
"물장사하는 돌싱은 눈치가 많이 보여요. 학교 학부모 모임에 가도 자기 남편을 유혹하는 게 아닐까. 다른 엄마들이 경계하고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당신 좋은 분이군요. 참 매력적인데요. 정 뭐하면 긴자로 와요, 내가 가게 차려 줄 테니까."
술기운을 빌려 큰 소리 떵떵 쳤다
통통한 살집이 붙은 중년남자, 여행자 차림이다.
여기는 작은 섬이다. 인구 2천, 일본 훗카이도 북단에서 다시 배타고 들어온 곳이다.
다음날 중년남자는 기어코 술집 마담의 초등생 아들 검도 시합을 참관하러 간다.
가보니,
<어제와는 전혀 딴판으로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청바지에 두꺼운 티셔츠, 안경 차림이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약간 잘생긴 어머니다.>
하얀 햇빛에 술기운은 가시고, 차갑게 부는 겨울 바람은 냉냉해진 현실을 일꺠운다
남자는 오쿠다 히데오.
일본의 꽤 괜찮은 작가다.
하지만 실속은 좀 다르다
여행지 서점에 가보니 하루키 밖에 없고.. 하긴 작은 섬이니..
나도 대마도 가보니 그 정도 되는 섬에서 서점은 하나 발견했다. 술집에서 마담과 읽는 작가 물어보니 최대치로 잡은게 아사다 지로..
그래도 나는 꽤 읽어 주었는데 안타까운 방랑자의 마음이다. 작가의 찬 바람이 휭 가슴을 휘젓고 나와 내 가슴까지 전달된다.
작가란 어떤 존재일까?
<나는 퇴근하고 동료와 한잔하는 생활에서 멀어진 지 십 몇 년이다. 그래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참 신나고 기뻤다. 어째서 그런 생활을 버리고 집단에 등 돌리고 사는 걸까. 회사원 노릇을 할 수도 없는 주제에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직장에 다니라면 사흘 만에 손 들 게 틀림없다. 그런 식으로 여러 번 회사를 그만두었다. 금세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 융통성이 없고, 머리숙여 사과할 줄 모르고, 붙임성도 없다. 내가 작가가 된 건 필연이다. 소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길이 없었다.> 31P
무리에서 떨어져나와야 무리가 보일터이니, 훌륭한 작가란 고독한 존재일수밖에 없다. 그들의 고독이 가슴에 뭉쳐져 떨어져나온 편린들이 글이 되지 않을까?
긴자에 가게 차려주겠다는 건 넘치는 술기운의 허세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작가는 자기가 잘 하는 방법으로 보답했다.
소설 <무코타 이발소>의 스낵바 여주인은 딱 이 여행기의 마담이 모델이다.
그렇게 길위의 인연을 형상으로 만들어 기억의 전당에 올려놓음이 굳이 긴자에 차려진 화려한 술집속의 매상 고민하는 여인보다 훨 낫지 않을까?
작가의 손은 마법이고, 그의 괴팍한 고독은 독자에게 축복이다. 여행이 어떻게 소설이 되는지를 이 책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