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배기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코리아, 생존의 기로에 섰다.

자뭇 협박조로 들릴수도 있는 심각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 협박이 꽤 맞는 이야기다.
최근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겠다고 하고 미국은 클린턴 정부때 북한 폭격을 거론하고
부시정부는 경제봉쇄를 추구하는 등 한반도의 상황은 그렇게 평온하지 못하다.
수십년간 조용했지만 한국전쟁, 2차대전, 만주사변이 있었고 청일,로일 전쟁 모두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었다.

우리는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이웃은 관심이 있다는 격언이 있다.
다투지 않고 평온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군자의 처세인 듯 보인다. 하지만 바쁜 세상은
그렇게 홀로 놔두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세력이 변화가 있을 때 그 영향은 반드시 내게도 온다.
중국이 통일되면 북방이 어지럽고 일본이 통일되면 부산으로 밀려온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한국의 주변을 살펴보면 한국보다 약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러시아는 과거 미국과 패권을 다투었던 강대국이고 중국은 전통적인 아시아의 맹주다.
미국은 이제 단일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현대의 로마제국이다.

반면 남한과 북한은 어떠한가? 이미 사멸해버린 이데올로기를 변용하여 김빠라고 할 수 있는
소수의 권력집단이 끊임없이 안보 드라이브를 하는 북한의 운명은 그리 밝지 않다.
스스로 백성을 먹이지 못하는 경제, 대외적인 폐쇄 속에서 나만이 옳다고 믿는 그들은 일종의
종교집단이다.

남한의 운명 또한 갈림길에 놓여있다. 과거의 성장 패러다임을 포기했지만 새로운 리더십은
확립되지 못했다. 똘똘뭉쳐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알아서라고 하면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적은 돈이 없어 굶는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에서
소비하는 막대한 외화가 존재한다.

경제적 정황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반도 자체가 세계적 갈등의 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실험 자체도 큰 이슈가 되지만 문제의 뿌리가 제법 깊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부시 정부의 첫번째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취임하자 마자 북한 공격계획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한다.
(밥 우드워드, 워터게이트 폭로 기자) 핵이 존재하니 뒤로 미루자는 멘트를 보고 그는 전쟁의 방향을
이라크로 돌렸다고 전한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그렇게 통탄한 것도 바로 북한이 핵을 가졌는데 자신에게는
그 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바로 그 핵을 놓고 북한은 자신을 당당히 보유국으로 대우하라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문서로 남기기를 거부한다.

어느쪽이 옳은 것일까? 국제 관계에서 절대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도 클린턴 정부 시절  대화를 통해 미사일과 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적이 있고 지금 부시 정부처럼 무조건 힘으로 밀어 붙이는 쪽이 있다. 둘 다 미국의 국익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친미주의자들이라면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부시를 따르는 건 친미고 클린턴을 따르는 것은 친미가 아닌가?

지금 한국의 많은 문제를 좌파의 발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우파라고 자리 매김하지만
이들의 사고 방식 또한 냉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부시가 되어야 경제가 산다고 지지하던 기업인을 보았다. 막상 부시가 되자 북한과의 전쟁가능성이
커지고 외국인들이 매도에 나서자 한국 주식의 가치가 폭락하였다.
그 때는 다시 정치를 잘 못해서 주식이 떨어진다고 소리친다.
한국의 우파라고 하는 사람들의 머리에도 이런 우물한 청개구리 수준의 현실인식이 너무 많다.

이런 고민들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외부의 흐름에 따라 친일을 할 것인가 친로를 할 것인가 고민하던 조선 말기의 모습도 유사했을 것이고
더 멀리 광해군처럼 반청 정책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았는지 아니면 인조처럼 전쟁을 불러도
무조건 의리로 밀어붙이는 것이 좋았는지 고민도 비슷한 것이다.
다시 더 멀리 가면 고려, 고구려 등 한반도에 머물렀던 선조들의 여러 고민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 교훈을 얻어 오늘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저자가 볼 때 한국에는 과시병 환자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특히
성리학적 윤리체계를 강조해서 이를 기초로 이상적인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에 반대하며 광해군을 끌어내린 무리들이 백성에게 준 것은 거대한 재앙이었다.
또 밖으로 눈을 돌려 세상을 넓게 보자고 하면 한사코 거부한 인물들이 가져온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국가의 위란에서 당파로 나뉘어 끝까지 싸웠고 백성에게 양보하기를 거부하며 동학혁명을 불렀던 것이
조선의 지배층이다.

즉 대외적인 시야가 좁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실용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 분기에 찬
종교적 목소리만 높이는 빠들이 많은 나라가 조선이라는게 저자의 문제의식의 기초가 된다고 보인다.
특히 빠가 많은 것이 문제인데 이들은 각기 자신의 종교를 숭배하며 타인을 철저히 배타적으로 대한다.
박빠,노빠,김빠 등 본질은 다 선생님을 모시는 광신도와 비슷하게 종교적이다.
일요일에 수많은 거대교회에서 외치는 구원을 해주소서라는 목소리와 잘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서로 안된다. 종교는 논쟁에 올리지 말라는 서양 격언이 있는데
한국은 정치와 삶 자체가 종교화된 나라다 보니 대화보다 상대에게 믿어라고 강요하는 것 뿐이다.

반면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부족하다. 임진왜란을 가져온 힘이 일본의 경제력인데
이는 당시 은제련 기술을 통해 서양무기를 도입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그 기술의 개발자가 조선인이라는 것이 일종의 역설이다.
기술을 제대로 대우한 것은 아마 세종시절과 박정희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은 한국의 이공계가 급격히 무너져도 제대로 고민하는 정치인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남보다 강하지 않을 때는 주변이라도 잘 읽어야 한다.
네덜란드가 작은 나라지만 주변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를 국민에게 가르치고
주변 누구보다 뛰어난 서비스를 개발해 소위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도 중국의 최근 부상의 맛을 보면서 허브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 기반이 되어야 할
서비스 정신이 앞서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의 서비스 기업으로 해외에서 성공한 곳이
단 하나라도 있나? 아마 게임 빼고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미국도 중국, 일본 어느 나라하고도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한국의 외교가 되고 있다.
나빠진 것을 일거에 만회하겠다고 내놓은 정책들은 FTA와 같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치졸한 수준이다.

한국의 지금 위치는 연달아 전쟁이 터지던 선조에서 인조 사이나 대륙과 해양의 세력이 부딪히던
조선말기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반면 지도자의 수준은 그때보다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현실감 없이 이상론 떠들며 문제를 쉽게 보고 자기 주장만 하며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그런
리더십은 빨리 종결지어야 한다.

자신을 알고 남을 안다면 싸움에서 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 초석으로 이 책의 독서는 꽤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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