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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통치론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자식을 죽인 적장을 용서하고 항복을 받은 뒤 그 참모를 끝까지 측근에 둔 사람.
시인으로 당대 문학의 일류 그룹에 올라섰고 건안문단을 일으킨 사람.
패한 적의 수뇌에 대해 절을 하고 정복한 지역의 세금을 깍아주며 민중을 안위시킨 정치인.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일절 금은보화를 넣지 말라고 하고 상복도 입지 말라고 한 인물.
항상 주변에 의견을 구하고 공정하게 생각해 자신의 의사결정을 내리려 한 인물
이 모든 것이 삼국지의 주인공 조조의 실제 인물상이다.
동양사회에서 악역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인물이 지만 그의 통치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 긍정적 요소가 부정적 요소 보다 훨씬 많다.
최근 한국사회의 혼란을 보면서 정치의 교본 삼국지를 가끔 들여보게 된다.
노무현이 정몽준을 비롯해 자신에게 100% 공감 하지 않은 인물들을 용서하고 대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어떠했을까? 민주당 분당은 과연 그렇게 필요했던 일인가? 탄핵사태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정말 새롭고 제대로 된 인물일까?
세금을 늘리고 재정을 적자로 만들고 주변국과의 외교에 실패한 다음 그 모든 책임을 언로에 돌리는 것은 잘 하는 짓일까?
이런 여러 기준들을 놓고 보면 조조는 노무현보다 백배는 나은 인물이다.
갈라졌던 사회를 통합할 때 우선 사람들의 과거를 묻지 말아야 한다. 과거야 어떻든가 상관하지 말고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를 하나 하나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소위 code 인사 몇몇 밖에 남지 않는다.
포용력이 없다는 점이 우선 노무현의 큰 결점인데 그 여파로 참여정부에서 제몫을 했던
장관이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대제 정도였는데 쓸데없이 지방선거 내세워서 망신만 주었다.
IPTV 정책은 다시 헤메도록 만들어버리고 말이다.
반면 조조의 주변은 사람이 꾸준하게 늘어나는 구조였다.
적의 부하였다고 해도 항복하면 깨끗하게 과거를 묻지 않고 받아들였다.
인사를 공정하게 시행하려고 노력했고 공에 의해서만이 대우를 받도록 체제를 만들었다.
삼국지에 나온 조조와 주변 인물의 전기를 보면 그런 참모들이 무수한 조언을 조조에게 했고
이를 조조가 상당수 받아들이며 성공의 주요한 동력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잘 나온다.
때로 조조의 오만에 의해 채택되지 않았던 헌책들도 나중에 그 가치를 인정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문제가 많은 지도자는 어떻게 되는가? 계속 사람이 줄어든다.
맨 마지막에 가면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온다. 김대중 때 법무장관이 다시 임명되고
박지원이 계속 자리 바꾸어가면서 기용되는 것이나 최근 노무현이 청와대에서 장관으로
다시 같은 인물로 왔다갔다 돌리는 것은 모두 그런 한계를 보여준다.
자신들이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남을 쉽게 비판해서는 안된다.
늘 입으로 민주주의 이야기하다보니 이들은 마키아벨리와 조조에 대해서 꼭 쓰레기 같이
취급하지만 내용을 보면 마키아벨리나 조조가 백배 더 나은 것이다.
적은 수의 군대로 늘 상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조조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사고가 짧다. TV토론장에서 잠시 상대를 골려먹을 정도 수준의 논리를 쥐어짜낼 능력은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멀리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을 발휘할 사상적 지침은 개발하지 못한다.
아파트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부자도 가난한자도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캐나다를 여러번 살정도의 부동산 거품만 잔뜩 만들어 놓았다.
조조는 새로운 땅을 병합하면 변화를 최소화시키고 백성들에게 세금이 적게 돌아가게 하고 호족들이 마음대로 횡포부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덕분에 처음에는 동조하지 않던 백성들도 하나씩 마음을 돌리고 땅을 경작해 국력을 튼튼히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마음이고 이를 위해 공정한 법집행이 중요하다는 조조의 사고가 장기적으로 적중 한 것이다. 한나라 말기 폭정에 의해 흔들렸던 천하의 정치가 하나 둘 씩 안정된 것이 상당수는 조조의 공인 셈이다.
특히 조조의 현명함은 외교에서 나타났다. 근교원공의 원리에 따라 힘이 약할 때는 몸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서 평화를 도모했다. 한국의 외교가 사방 어느 나라하고도 교감이 없어진 것은 노무현의 언행 덕분이다. 일본에 대해 던진 말들도 결과가 별로 좋지 않고 미국을 낮추다 높이다가 오르내리면서 관계는 멀어진다. 그렇다고 중국이나 북한과 관계가 좋은가?
이 책은 기존의 삼국지 이론들의 병폐를 하나하나씩 까발리면서 조조의 정치가 가진 진면목을 보여준다. 삼국지에 달린 여러 각주들을 일일이 뒤지고 후대에 나온 각종 저술을 골고루 참고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처음 제목을 보고 이렇게 두터운 책을 무엇으로 메웠을까 의문도 들었는데 막상 살펴보니 저자가 들인 수고가 책장 곳곳에 배여있는 듯 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조조에 대해 매우 인색하였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별 논리도 없었고 공부도 부족했다. 그런 책들은 쉬운 문장으로 널리 읽히지만 절대로 진실이 아니다. 그 노력의 일부를 이런 책에 기울여 균형잡히고 오늘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