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戰神) 조훈현 - 나는 바둑을 상상한다
조훈현. 김종서 지음 / 청년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조훈현 이름 석자는 곧 한국 바둑 그 자체였다.

본인 스스로가 모든 프로 기전 타이틀을 장악하는 전관왕을 여러 차례 달성했고
청출어람이라고 할 까 자신보다 더 나은(최소한 현재 성적으로는) 제자 이창호를 키웠고
국제 대전에서 여러 차례 우승해서 한국 바둑의 위상을 바꾸었다.

처음 출발은 그도 모든게 순탄하지 않았다. 천재라고 인정 받았지만 배울만한 스승이
한국에 부족했고 어려서 일본에 가서는 반 평균 깍아먹는다고 담임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도장 또한 제자가 단지 세명 밖에 안되는 조촐하다면 조촐하다고 할 수 있는 세고에 문하였기에
더더욱 외롭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가 그에 대한 인정을 하기 보다는
새롭게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훈현은 시련을 성공을 위한 자극제로 삼으려는 위인이었다.
어려움이 아무리 닥쳐도 하나 하나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다짐하고 실제로 극복해내었다.

그가 한편으로는 천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력가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화들이 있다.
20년전 바둑 하나를 제시하면서 어디가 승부처였는지 물어보자 앞뒤 상황, 주변의 관전자 표정까지
기억해내는 그의 모습이 주변에 놀라움을 주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묻자 밥벌이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단순한 답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한편으로 집중력의 산물이다.
영어단어 외워보면 곧 까먹는다는 경험을 보아도 집중하지 않으면 머리에 남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초일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한국사회는 천재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모두가 다 국민복 입고 새마을 운동에
매진하라는 식의 평등주의가 많았다. JP를 비롯한 소수의 골프 멤버들 빼고는.
예술의 천재였던 윤이상,이응로를 잡아다 사형수를 만드는 사회였기에 조훈현에 대한 병역특례도
인정하지 않았다. 기껏 한국으로 불러놓고 몇년을 더 대기시켰던 것을 보면 답답할 노릇이다.

한국에 바둑붐을 일으켰던 일대사건은 조치훈의 일본 타이틀 획득이었다. 그 기념으로 벌어진
조훈현과의 대국은 대국료도 차별했지만 방송을 비롯한 언론의 조훈현 깍아내리기가 심했던
사건이다. 나도 어린 마음에 당연히 조치훈이 이기겠거니 했었는데 후일 돌아보면 얼마나 우스은
생각이었는지 아쉬움이 많았다.

한국과 일본,중국 모두가 함께 하는 문화 중에 하나가 바둑이다 보니 국가간 대결도 벌어졌고
그 결과가 곧 국민 모두의 희비가 엇갈리도록 만들 던 것이 당시 부터였다.
그런데 일본은 중국을 그나마 상대로 인정해서 슈퍼대항전을 열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수 아래로 보았다. 이를 극복해낸 것이 조훈현의 응창기배 우승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이 많았어도 반드시 극복해내는 조훈현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싸움을 피하지
않고 반드시 이겨내는 전신의 이미지 자체였다.

응창기 우승을 통해 주도권을 잡은 한국 바둑은 최근까지 연달아 수많은 바둑대회를 휩쓸었는데
이는 문화에서의 한류, 전자산업의 세계 초일류화와 맥을 함께 하는 흐름이었다.
덕분에 중국에 진출한 농심 같은 기업이 바둑을 적극적으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보다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렇게 바둑은 한자처럼 말을 달라도 아시아권이 함께 즐길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로 역할을
하고 있고 그 흐름의 선두에 놓인 한국이 올 수 있었던 핵심에는 꾸준히 한국의 위상을 올려 왔던 조훈현이
있었다.

물론 조훈현에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담배 애호가로 유명했는데 나중에는 금연초 광고의
모델이 되었다. 사업가로 나서 타이젬이라고 바둑 사이트에 투자했지만 아직 성공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최근 일화 중 하나는 조훈현이 체육학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 있다. 이를 보면
바둑의 위상 자체가 승부를 다루는 체육에 맞다고 의견이 모아지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고
또 바둑의 사회적 기여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제 장강의 물이 흘러흘러 앞물을 밀어내는 것처럼 조훈현도 바다로 들어가는 길목인 것 같다.
하지만 늘 자신에게 주어진 한판 한판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 우리가 본받아야 할
프로의 귀감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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