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큰 기대를 하고 극장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느낌을 갖고 나오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은 주한미군에 의한 독극물 방류사건이다. 시체실에 쓰이던 포르말린 약품을 한강에
그냥 방류해버린다. 아무런 절차적 고려 없이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그냥 버린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 놀이 하러 온 사람들 위로 갑자기 뛰어오른 괴물에 의해 송강호의 어린 딸이 납치당하고 만다. 이렇게 죽은 줄 알고 슬퍼했지만 살아있다는 신호가 휴대폰으로 전해지자 딸을 구하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선다.
느릿 느릿 움직이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빨리지고, 양궁 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고모, 운동권 학생 출신의
작은 아버지는 꽤 강한 팀이지만 꾸벅 꾸벅 조는 송강호는 어디에 써야할까?
가족들이 똘똘 뭉쳐 싸우러 나가는데 가만 보니 경찰은 군대는 언론은 과학자는 다 어디 갔나
의문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미군은 괴물과 관련된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경찰과 군대는 뒤로 빠지고 의료진들이 나서서 송강호를 놓고 감시를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은 딸에게서 전화를 받았으니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달라는 송강호에게 미친놈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바이러스 감염의 결과물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어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이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 미국은 분명 괴물을 탄생시킨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 과학적 상식이 통하든
안 통하든 영화는 그렇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를 놓고 다시 확대시켜서 괴물이 정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채 사방을 준계엄 상태로 만들고 다시 여기에 생화학 실험을 전개한다.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 하나는 이건 이라크 전에 대한 야유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후세인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는데 미국은 막대한 기여를 했다. 막 회교혁명을 수행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무기를 대주면서 싸움을 부추겼고 전쟁에 질 것 같자 생화학 무기까지 지원해준다.
그러더니 쿠웨이트 전쟁 이후 갑자기 돌변해서 후세인은 악마의 화신이 되어버렸고
이라크에 있는 화생방 무기를 찾자고 또 한번의 전쟁까지 시작해버렸다.

정말 괴물은 누구일까? 한강에서 툭 튀어나온 에일리언 같은 존재도 괴물이지만 그 괴물을 활용해서
더 많은 압박을 강요하는 존재도 괴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괴물의 뜻에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시종 추종하는 한국의 경찰과 군대,언론의 모습도
또 하나의 괴물인지 모른다.

반면 문제를 붙들고 끝까지 고통을 겪으면서 해결에 나서는 것은 작은 시민 가족 하나와 약간의 옹호자일 뿐이다. 이들은 거대한 시련 속에서 고통을 겪지만 아무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마치 IMF 이후 밀려오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파도에서 단 하나의 구명보트에 매달려 헤쳐나가게 된 가족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사회는 그냥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국가에게도 사회에게도 복지시스템에도 기댈 수 없이 그냥 홀로 존재하게 될 따름이다.

국가는 그냥 방해만이라도 좀 덜 해주었으면 좋을 따름이다. 약해진 몸에 더욱 강해진 방역시스템을 거치라고 하지 않나, 조금 먹고 살려고 하면 세금이니 각종 기부금 뜯어가려고 하지 않나, 참 이 대목에서 노무현이 증세 이야기하자 TV 뉴스에 나온 어느 월급장이 가장 말씀이 정말 이 정권은 월급 수령자들의 얇은 봉투를 철저하게 뜯어가려는 존재인 것 같다는 한탄이 떠올랐다.

봉준호를 비롯해 영화계에 있어서 괴물은 무엇일까? 스크린쿼터 폐지를 밀어 붙이는 놈현과 그 일당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한심한 경찰과 수사대, 언론 등을 보면 아마 맞는 것 같다. 비싼 세금 내주면 그 돈으로 불쌍한 전경들 동원해서 미국이 효능도 입증되지 않는 생화학 무기 마구 퍼 붓는 실험장을 보호하는데 투입시킨다. 강대국의 논리에 대한 비판 능력도 없고 권위만 존재하며 제대로 대화할 용의도 하지 않는 정부, 그런게 바로 영화가 보여주려는 또 하나의 괴물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영화속의 괴물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러 나오니 플랫폼 위의 동영상에서는 광고판 속의 FTA 찬양 광고물이 열심히 돌아간다. 저것도 다 내 세금의 일부인데.

영화속 괴물을 피 하고 나오니 또 하나의 괴물이 눈에 띄고 있다.
영화의 가족들 처럼 우리도 지혜와 용기와 기술을 모두 합쳐야 그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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