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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만 평전 - 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생 이야기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평점 :
공병호 박사의 우리시대 인물 평전 2탄이다.
전작인 김재철평전이 워낙 대단했기에 두번째는 누굴 주인공으로 세우나 궁금했다. 처음에는 약간 의외였다 솔직히 존함도 잘 모르고 최종 지위도 재무부장관이었기에 낮지도 않지만 더 대단한 인물도 많다고 보였다.
읽어 가면서 삶의 평가는 지위와 같은 외형적 지표 보다 난관을 뚫고 가는 치열함에 더 비중을 두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갔다.
영화 <국제시장> 세대처럼 이북에서 넘어와 625에 참전하고 총 두 방을 몸에 맞는 큰 부상도 입었다. 당연히 골수보수고 기독교 신앙도 돈독했다. 그리고 가난했다. 홀로 서서 자기 몸을 추려간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돌볼 가족도 없지만 돌봐줄 가족도 없이 시작해야 했다.
이후의 삶에서 신기한 건 놓인 자리마다 기회를 만들어가는 힘이었다. 우체국에서 우연히 시작한 외국의 펜팔 레터 관리가 우표 수출 비즈니스가 되어 꽤 큰 돈을 만졌다. 가족이 없기에 새로 시작하는 인연에 비중을 두는 태도는 그에게 계속 행운을 만들어준다.
그와 일해본 상사들이 짧은 기간에도 감동할 정도로 그는 전력을 다 했다. 지방 순시 보고서를 쓰라고 하면 남들 하나 둘 갈 곳을 두배 이상 더 다녔다.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그 가진 것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해가면서 성심껏 노력하는 그에게 행운이 하나 하나 내려온다. 소위 조직에서는 그걸 보고 줄이라고 하는데 실제 살아보면 아무에게나 행운의 줄이 내려오는 건 아니다.
박정희 개발시대의 관료성공 신화이기에 가만 보면 웃기는 일들도 많다. 브리프 차트에서 박정희가 묻는 서릿발 같은 질문에 빨리 정확히 그리고 눈치것 대답해야 한다. 당시는 전산이 없는 시대라 앞에서 한다고 하고 뒤에서는 뭉개는 일이 많았다. 그런 요령껏 행동하는 고위관료들 모습도 여기에 그려져있었다.
당시의 풍토를 보여주는 증거 하나가 부처대결 사격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저자가 선수로 참여해서 재무부를 1등으로 만든 것이다. 심지어 국방부도 꺽었다. 이는 젊어서 참전했던 것과 맡은 일은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에 풀린다는 도전정신 덕분인데 저자도 이를 수긍해서 꽤 길게 묘사했다. 웃기기도 하지만 하나의 삶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보인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온다.
전두환 정권으로 바뀌고서 우연히 자리가 날라간다. 알고 보니 이규광이라는 처삼촌이 만나러 갔다가 기다리게 하니 가서 전두환에게 꼰지른 것이다.
참 독재정권이라는 것, 절대권력이라는 것이 한심한 일도 많이한다고 보이는데(우리는 최근에도 이런 현상을 막 겪었지만) 어쨌든 이용만은 유탄을 맞았다. 허무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아니 열어가게 된다. 유학도 시도했지만 그보다 그를 워낙 좋게보던 수 많은 이들의 여론 덕분에 재기의 기회가 열린다.
중앙종금,신한은행,외환은행을 거쳐 다시 관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여기서 이런 저런 금융사와 삼성을 거쳐가면서 그가 본 기업 풍경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극이었다. 나름 유익했고 지금의 은행풍토와도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라응찬 등 신한사태 주역들의 이름이 그 먼 시대에 고대로 나오니 말이다.
그러다가 노태우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맞는다. 정권이 바뀐다는 것, 선거를 한다는 건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여러 각도로 보면 사람의 다른 장점이 보인다. 지금도 특정정권에서 시련을 겪었던 사람이 다음에 화려하게 부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기업도 매한가지다.
은행을 감독하는 입장까지 올라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시키는 일을 하는데 남과 다른 속도감을 보였다. 이를 높이산 <물 태우> 께서 그를 재무장관으로 발탁한다.
박정희 시절 승승장구하는 관료, 민간 금융 경험 등이 쌓인 그에게 이제 재무 정책의 수장이라는 지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당시는 민주화를 통해 다양한 욕구가 표출되고 언론의 힘이 강해지면서 외곽의 다양한 집단 특히 교수들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대중은 새로운 인물 특히 참신한 이미지를 선호했다. 민주화의 한 특색이다. 이때 인기를 끈 사람이 조순 서울대 교수였다. 그는 노태우때부터 기회를 잡아 여러 보직을 거쳤다.
하지만 조순에 대해 이용만은 매우 부정적이다. 책에 이 정도로 서술할정도면 실제 삶에서의 갈등은 훨씬 컸을 것이다. 이용만은 현장에서 감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동향을 체화시켰던 사람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주장하는 서구 이론 대표적으로 <화폐수량설> 등을 몸으로 거부했다. 그런데 민주화라는 건 여러 분야가 권한을 나누고 견제하는 체제를 취하고 이들 포지션이 학교 명망가들에게 주어지니 갈등이 벌어진다.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요즘 왕년의 최고의 경제해결사라고 김종인이 거론된다. 그가 성과를 냈던 시기도 가만 보면 군사독재로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었을 때이다. 반대로 현대정치는 티비에 나와 이미지 관리하던 변호사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리더십이나 운영방식이 서로 맞지 않게 된다.
각설하고 이용만의 삶으로 돌아가면 그는 당시 경제가 뭔가 부정적으로 가고 있다는 걸 여러가지로 느겼다고 한다. IMF로 가는 길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종금사 면허의 남발, 정치가들의 탐욕, 그리고 현실감 없는 이상주의 등이 줄줄이 나타난다.
이용만은 스스로 가방끈이 짧다고 아쉬워하지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미국의 고위관료 앞에서도 강력하게 어필 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생각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서서히 민주화를 거쳐 정치라는 여론 영합형, 리더십의 변천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용만은 그 물결에 휩싸여서 다시 퇴장해야 했다.
두 번의 시련과 추락 모두 정권 교체에서 벌어졌다. 동화은행장 구속 사건의 여파는 그에게 깊은 상흔을 주었고 YS 집단의 정치자금 요구에 대해 실상을 아는 그로서는 정말 속에 열불이 났다고 한다. 어떻게 달라고 해놓고 일부 들어주니 나중에 그걸 또 빌미로 잡아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냐고 부도덕성과 의리 없음에 치를 떤다.
그 주역들은 김현철 등은 후일 죄값을 치렀지만 지금 보면 그 과정은 모두 IMF라는 거대한 시련을 향해가는 과정이었다.
한국 앞에 헬이라는 단어가 자주 붙는다. 하지만 정말 헬은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그것도 네임팜탄 -동경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방에서 총이 날라오는 625 전쟁통이었을 것이다.
그 헬에서 기적을 만든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다. 기적은 자기 신념이 아주 강한 사람이 아니면 이루어내기 어렵다. 저자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많은 돈을 내서 교회를 짓는데도 도움도 주고 한 일들이 그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 기적의 나라가 다시 헬이 되는 모습에 속에서 나는 열불이 아마 이 책을 만들었다고 보인다. 압축해서 표현해보면 그냥 <국제시장>도 아니고 꼰대의 훈수도 아니다. 이념이 주는 방향타, 현장감 없는 교수들의 날림 공약이 적용되다가 경제를 흔들어 대는 현상을 경계하고자 함이라본다.
조순 교수에 대해 여러차례 비판한 건 개인적 감정을 떠나 그러한 행태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경계하려는 고언이라고 생각된다.
참 오늘도 보니 모캠프가 전정권 사람들 마구 영입하던 데 가만 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그럴거렴 아예 김종인을 내보내지 말지. 이런 철학도 없다니 참 안타깝다. 지지여부와는 별도로 다음 정권은 정말 경제를 잘 해야 하는데 경제의 출발점은 바른 철학이다.
현실과 과거가 자꾸 오락가락하다가 글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앞으로도 공박사의 평전 만들기는 계속 잘 이어졌으면 한다. 이번 책에서도 많이 배웠다.
현실감이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이라는 역사에 대한 빼곡한 기록이 소화되고 성찰되어서 다시 삶을 이끄는 반성적 인식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 기초는 바로 이런 우리시대 삶을 다룬 논픽션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