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권력중독 - 의전 대통령의 재앙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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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는 늘 감탄스럽다.

이슈가 터지면 꼭 책이 있다. 예기치 못했던 트럼프 충격에도 그를 다룬 책이 바로 준비되었고(힐러리도 한권 내놓았다. 양면전략) 이번 최순실 농단 사태에도 이 책이 손에 잡혔다.

그의 속도에 놀란 지인이 던진 "책이 너무 빨리 나오는 거 아냐"라는 유쾌하지 않은 질문에 강교수는 이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여가 시간을 희생하가면서 2-3시간씩 자료 정리에 투자하는 저의 평소 습관 덕분입니다. 당신 술 마시고 놀 때 저는 그 일 했다니까요"


갑자기 찔린다.

하여간 책으로 가보자.


강교수가 박근혜를 설명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의전자본>이다.


의전은 조직에 일체감을 주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거대한 상징행위다. 고대의 제례에 비유할 수 있다.


박근혜는 특별한 존재였다. 쉬지 않고 박정희를 상기시켜주는 리보커(revoker)라고 강교수는 표현한다.

과거로의 복귀, 회고적 생각은 사회가 전성기를 지난 다음에 만들어지는 정서다. 박근혜는 다시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시대의 정서를 활용해 자신을 상징물로만 만들어 존재하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달랐고 손가락에 피를 내서 만주육사에 합격하는 갈망과 수십년 군대와 국가의 운영을 해온 콘텐츠는 유전되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박근혜의 말은 짧았다. 


사실 거기에 뭔가 통찰이 있겠지 하고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고 강교수는 이야기한다. 초딩워딩. 초등생용 말이라고 한다. 

미국의 승자 트럼프의 화법은 철저히 교육수준이 낮은 대중들에 맞추어져 있다. 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학자에 의하면 상대방 후보는 꽤 교육이 높은 고2 이상을 원한다면 트럼프는 거의 초딩 수준에도 같이 따라하고 웃기도록 말을 한다고 한다. 생각이 나는데 우리나라 방송작가들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중2 수준의 아줌마가 편하게 웃도록이었다.

하여간 박근혜의 화법 뒤에 숨어 있는 무지에 대해 깨달은 이도 있고 아닌 이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심지어 지지자들 포함해서 다들 설마 이정도는 했으니 말이다.


박근혜는 초딩워딩의 논란을 알았다. 자신 스스로가 콘텐츠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그 컴플렉스를 최대한 외형적인 양식의 화려함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옷 잘 입고 좋은 차 타고다니면 뭔가 있지 하는 외형 꾸미기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영국의 대처 수상에 비유되면 싫어했다고 한다. 그보다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델로 원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의전은 더욱 형식화되고 강화되었다. 심지어 청와대의 회의들도 그냥 의전화되었다. 토의는 없고 말씀을 듣고 상납을 하는 행위가 반복된다. 이런 의전은 여기서만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보통 외국공관에서는 1년에도 50-100번의 방문이 있고 이걸 잘 해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주재원이 아니라고 한다. 갑자기 최근 떠오른 모 후보님 생각이 난다.

이걸 문제라고 지적하는 외국인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LG전자의 최초 외국인 임원이었던 프랑스 현채인의 책도 인용한다.

그리고 따끔하게 한마디, 의전에만 몰두 하는 조직은 중세의 왕궁이고 관료는 일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환관이 되어 버린다.


자 이렇게 해서 조직은 상징과 의전만 남게 되었다.

대기업은 관계만 남게 되고, 한국의 청와대는 조선시대 궁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침몰해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다.


제목을 상기해보면 박근혜의 권력중독은 대단했다. 하지만 권력으로 무얼 이루어내는 성취지향이 아니라 왕관을 쓰기 위한 지위투쟁이었다. 그 투쟁의 관객이 되어 환호와 갈채를 보였던 이들에게 이제 냉정하게 청구서가 날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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