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월드컵, 일주일 전.

지금쯤 저의 편지를 기다릴 분들이 꽤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또 앞뒤가 맞지 않을 글을 쓰고야 맙니다.  긴 글을 쓸 시간도 없고, 이런 저런 분석들은 신문방송과 인터넷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을 듣고보는 준 개최국 수준인 대한민국에 있으니 짧게(?) 저의 핵심만 요약해보겠습니다. 

금번 대표팀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1. 이동국이 없다

이동국이 없다는 것은, 황선홍이 없는 2002년 대표팀을 의미합니다. 경험있고 필살기가 있는 타겟맨의 부재는, 한국축구가 거의 모든 팀의 선수들과 비교해 개인기가 달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장 없는 고아원에 비유할만 합니다. 

거친 상대의 중원에서 압박당하고 밀릴 때, 패스할 곳이 없어 당황스러울 때, 우리 대표팀은 거의 걷어내듯 타겟맨으로 공을 차냈고 타겟맨은 이렇게 공을 차기 편한 위치를 항상 잡고, 수비수를 등지고 몸싸움을 해대며 공간을 확보하고 받은 공을 키핑해 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2002년의 순간순간들을 보시면, 황선홍 없는 대표팀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정말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핌 베어백은 세레소 오사카에서 황선홍을 찾아내고서는 히딩크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지요. 

"우리가 찾던 그 선수가 바로 여기 있어요!" 
2006년 이동국은 바로 그 역할을 할 선수로 성장해 있었고, 2002년 월드컵 이후 박항서, 코엘류, 본 프레레, 아드보카드 감독이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센터포워드 주전이었습니다. 그 선수가 부상으로 탈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황선홍 없이 도전해야 했던 98년 프랑스월드컵의 차범근 대표팀과 동일한 "비상상황"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네덜란드 = 프랑스, 쟁쟁하던 멕시코 = 스위스, 쉽지 않던 벨기에 = 토고로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은 저의 비관론일까요?

안정환은 차라리 박지성 스타일의 선수입니다. 

안정환이 가장 빛났던 시절은 2002년 월드컵이 아니라, 그가 미드필더로 부산대우에서 활약할 때였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경기 내내 헤매다가 헤딩슛 두 방으로 국제스타가 되기 훨씬 전인 1999년부터 안정환은 국내 최고의 미드필더, 새도우 스트라이커였습니다. 

이운재가 가장 무서워했던 돌파와 슛을 가졌던 그는, 그 빛나는 포지션을 포기한 이후로 별로 빛을 못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멋진 선수가 왜 원톱 스트라이커 자리를 고집하는지! 

그는 한국의 지단이 될 수 있었는데, 이미 박지성에게 그 자리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제가 기대할 선수는 차선책인 조재진입니다.

 

▶ 타겟맨이 경기의 흐름을 결정한다 - 조재진의 활약을 기대해보며...

2. 박지성도 없다

경험있는 유럽리그 선수들, 그 중에서도 박지성의 존재는 우리에게 든든한 믿음을 줍니다.그렇게 믿게끔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을 보면서, 저는 이 역설을 말합니다...박지성도 없다.

이미 노출된 플레이메이커란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을 2002년의 지단, 피구에게서 우리는 보았습니다.박지성은 집중 마크 대상이어서 그의 소속팀에서 하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드보카드 감독이 아마도 유럽팀과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왼쪽 윙포워드로 쓸지도 모르는데, 화내지는 마십시오, 저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지성이 있기 위해서는 원톱 타겟맨이 박지성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동국의 부상 이후에 투톱체제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축구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었는데 바로 이런 상황, 박지성이 집중 마크 대상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놓고 볼 때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의견입니다.

아드보카드 감독은 그런 실험을 할 여유가 없었고, 원톱 타겟맨도 부실해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이 똑똑하다면 자신에게 쏠린 상대수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결국 박지성이 없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공격을 해야한다 -  박지성을 그저 세워놓고 뛰라... 

3. 너무 긴장하고 있다

2002년 대회의 빚이랄까,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몇번의 평가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강한 압박을 받을 경우 주변의 동료에게 패스하고 다시 받는 것보다는

후방으로 길게 패스해 안전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평가전이라 좀 모험적이어도 되었겠지만 지나치게 긴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별로 성공한 적이 없었던 유럽에서의 월드컵은 항상 시차가 문제였습니다. 

이번 대회에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선경기는 한국시간으로 저녁 10시 새벽 4시에 벌어집니다. 

16강전은 모두 새벽 4시일 정도로 국내선수의 경우에는 운동하기가 매우 열악한 시간대입니다. 

비록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표팀 전체의 시차적응이 문제인 상태입니다.


시차는 긴장감과 결합해 체력과 판단력 저하를 불러옵니다. 

이것은 집중력과 순발력 저하를 동반하며, 실수가 발생하면 당황하게 만들고 경기 주도에 대한 책임감을 떨어뜨립니다. 

해결방법은 역시 정신력, 그 중에서도 투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대표팀에서 이 부분을 챙겨줄 선수가 너무 없습니다. 리더가 좀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이운재가 이걸 하기는 포지션에 제약이 있습니다. 

2002년의 홍명보와 비교하기에는 최진철은 너무 점잖습니다. 

김남일은 리더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해, 이을용에게 유상철과 비교되는 리더역할을 기대해봅니다. 

근데, 이 친구 너무 쑥맥이라...

▶ 심신이 고달픈 새벽경기에서는 리더가 경기의 흐름을 결정한다 - 이을용의 활약을 기대해보며...

4. 조직력의 다른 말은?  

개인기가 부족한 우리 대표팀은 조직력으로 승부한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런데 개인기가 강한 팀은 조직력이 약할까요?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개인기가 강할수록 조직력도 더 강해집니다. 

개인기가 트래핑이나 드리블이라고 착각하는 한국의 축구팬에게는 조직력이 개인기와 상대가 되는 말로 들리겠지만, 아니올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얼 믿고 조직력이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박종환의 벌떼축구를 조직력의 축구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당장 조직력하면 연상되는 것은 박종환의 청소년팀과 히딩크의 2002년 팀입니다. 

두 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박종환의 83년 청소년대표팀은 약속된 공격플레이로 유명하고 

히딩크의 2002년 국가대표팀은 처절한 압박으로 유명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공격은 약속대로 하고, 수비는 처절한 압박으로 하는 것. 

이것이 한국 대표팀이 추구해야할 조직력의 실체입니다.  

조직력의 다른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성이고, 그것은 부지런함이고, 그것은 체력이고, 그것은 속도입니다. 

조직력이라는 것이 개인기처럼 눈에 띄는 것으로 나타나려면 

역시 체력과 속도가 담보되어야 하며 체력과 속도라는 면에서조차 밀리면 우리보다 개인기가 강한 팀을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체력과 속도가 밀리는 조직력은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2002년과 달리 주구장창 합숙훈련을 하고 자기 나라에서 경기를 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는 

2006 월드컵은 정말로 선수들 개개인이 정신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치 98년 월드컵 예선의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 전... 감독이 현장에서 해임당하고 

선수들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각오로, 최소한 전패를 면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싸웠던 

그 정도의 정신력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조직력은 정신력이다 -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전패할 수 있다.

제 예상은 이렇습니다.

토고와의 경기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토고는 동네축구를 하는 팀입니다, 잘하는 몇 명이 대부분의 경기를 이끌어가는...)

그러나 나머지 두 경기는 전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우리가 이미 아는 팀이고, 스위스는 오히려 프랑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스위스와 중국의 평가전을 보고 느낀 것은...

거칠고, 압도적이고, 지치지 않고, 공격적이며, 쉴 새 없이 밀어붙이는데다 잔재주까지 있는 팀이었습니다.

거기다 스위스는 독일말을 쓰는 사람들이 태반인 반 독일입니다. 홈구장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어려운 상대를 맞아 선전해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6.6.6.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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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의 오랜 지인 짱구박사님의 작품입니다.
원래 축구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인데 마침 이번 월드컵을 위해 좋은 분석글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저자가 동의해주신바 알라디너분들이 읽도록 여기 올립니다.
가나전 보고 나서 16강도 희망 없다고 기죽은 분들께 다시 희망을 담아 대표님에게 보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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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6-06-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괜찮은데요.축구를 2002년도 전부터 보신 분인지는 의심이 가네요.저 같은 경우는 축구에 대해서 열광은 하지않지만,꾸준히 본 상황에서 다른 의견이네요.
이동국에 대해서 요즈음 평가가 좋은데 그전에는 황선홍처럼 국제적인 시합에서는 인정을 받지못했습니다.뭐라고 할까? 강팀에게는 이상하게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황선홍의 경우 나중에 명예회복을 해서 그렇지 90년대초반에 강팀하고 할때는 축구팬들 사이에 뻥축구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골징크스가 있었습니다.이동국도 마찬가지고요.스위스가 프랑스보다 강하다. 이것은 최근의 경기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ㅡ_ㅡ 스위스는 요즈음 떠서 그렇지,프랑스에 비해서 한수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안정환의 경우 2002년도에 행운인 것 같은 결정골들을 넣어서 발탁한 것도 있을겁니다.(개인적으로는 별로지만,전에는 이동국보다는 알아주는 선수였죠.) 그리고 아직은 미숙하지만,박주영을 주목하면 좋을 것 같네요.^^ 토고가 동네축구라 그것도 동의하기는 어렵지만,그래도 좋은 글 봤습니다.

사마천 2006-06-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은 아니고 짱구박사님이라고 축구 애호가 글이라 소개드린 것입니다. 하여간 서로 논의하면서 즐거움 키우면 좋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