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난민 - 꿈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혼다 유키 해설, 이언숙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차라리 희망을 단념시켜라>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수의 청년들에게 더 이상 희망을 주려고 하지말라는 주장이다.


일본의 청년 사회학자가 2009년에 외친 이야기다.


그는 일본의 교육이 잘못되가고 특히 진로교육에서 꿈,희망 등 원하는 것으로 가라고 한 결과 낭인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원래 예술분야가 그렇다. 소수의 성공 뒤에는 무수한 무명인들이 허탈한 가슴을 쓸어 안고 남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히 이야기해서 단념시키는 진로 교육을 시키라는 주장이다.


그의 책이 한국에 5년여 시간이 더 지나 번역되고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이 닮아가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노량진 공시생을 보면 매번 수십대 일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만명이 모여 있다.

김훈의 <영자>에 잘 묘사된 풍경이다.


원래 이 책 <희망난민>은 피스보트라는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99만엔으로 세계일주 멋지게 들리지만 싼 덕분에 여러 해프닝이 발생한다.

배안에서는 평화라는 목적성에 경도된 그룹,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단순한 목적의 그룹, 그냥 여행자 그룹 등등으로 나뉜다.

각기 다르지만 공공성이 필요한 그룹은 새로 낯선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소외되고 피로한 현실을 다르게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사회적 배경은 프리타와 같이 경제적난민들이 많다. 경제의 부족을 사회적자본으로 보충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런 그룹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소외자를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피스보트>의 역할이 분명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반면 이런 소프트한 해결책 덕분에 사회에서 강자인 기업주나 지배층은 더 심하게 위로 받아 좀 나아진 청년들을 착취한다. 그러니 진정한 사회변혁에는 오히려 장애라고 한다. 마치 레닌이 빈민운동가 신부를 강력하게 경쟁자로 여기고 비판하던 논조다.


어쨌든 희망을 단념시켜라는 구호는 결코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인다.

한국의 공시족, 과연 자신이 몇년후의 모습이 어떨지 미리 안다면 꼭 같은 길을 가야 할까 의문이 든다. 

그냥 해보자, 노력하면 된다, 넌 할 수 있다

이런게 희망이다. 

얼마전 티비를 보는데 소위 청년멘토가 와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동조못하겠다.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일이 안될 때는 목적이 합당한지, 방법이 적당한지 수시로 되돌아 보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목적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방법으로서 열정 이상으로 중요한 고민을 같이 해주지 않으면서 희망 뿌리기를 하는 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강하다.

도대체 애들 게임을 시키면서 튜터리얼은 엉망, 초기 파라미터는 게이머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설정이 되었다고 비유한다.


이것도 한국의 수저 논쟁과 비슷하지 않을까?


희망이 꼭 좋은 처방인지에 대해 같이들 논의할 때가 한국도 왔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회학자의 참신하고 도발적인 발언은 그렇게 짙은 여운을 남긴다.


청년멘토,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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