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릉싸움과 유비의 죽음

 

처음 촉으로 들어갈 때는 구원군 처럼 들어갔지만 결국은 욕심을 드러내서 주인을 몰아내고 촉을 차지하게 되었다. 진행과정은 다른 싸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정한 편이었다. 장비가 엄안을 포섭한 것처럼 되도록 감정을 상하지 않고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유장은 결전의지가 부족했고 이러한 태도가 부하 장수들에게 전염되어 대세가 기울었구나 하는 분위기를 만들게되었다. 

유비로서는 독자적 깃발을 내걸고서는 처음으로 제대로 땅의 주인이 것이었다. 과거 차례 서주의 자사가 경험은 있지만 기간이 짧았는데 이제 오랜 방황을 끝내고 정착할 거점을 마련하게 되자 기쁨을 감출 없었다. 논공행상을 하면서 자신을 오랫동안 따랐던 장수들에게 집이며 땅을 나누어주었다. 이때 조운이 나서서 자신은 많이 받지 않아도 좋으니 굳이 무리하게 현지인들의 재물을 빼앗지 말라고 간언한다. 조운만큼 유비를 오래 모신 장수가 없다고 보면 이러한 모범적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제어할 있는 기준이 된다. 조운의 미덕은 전장에서 보다는 이러한 내치에서 발휘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객이라고 있는 유비편과 원래 촉의 터줏대감들간의 감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서서히 화합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조조의 군대가 한중을 점거하게 되자 힘을 합쳐 여기에 맞서게 된다.

하지만 유비가 성공에 도취하면서 개인적인 감정을 발휘해서 불필요하게 선비를 죽이는 경우가 발생했다. 전까지는 위나라 쪽에서도 조조에 반감을 가지고 유비가 오기를 기대하던 세력들이 있었는데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잠잠해졌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갑자기 출세했을 처신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유비가 전성기를 맞는구나 하는 순간 않좋은 일이 생겼다. 바로 형주의 관우가 조조를 공격하러 나갔다가 손권의 기습에 의해 본거지를 빼앗기고 것이다. 당시 손권으로서는 처음 빈털터리로 유비에게 형주의 땅을 양보해주었다. 나중에는 정벌을 함께하자는 제의까지 했지만 유비가 거절하고 단독작전에 나서서 혼자 차지하는 보고 배가 아팠다. 당시 오나라에서는 촉과 화친을 공고히 하자는 세력과 이제는 형주를 빼앗는 것도 좋다는 세력이 맞서고 있었다. 마침 형주를 차지하고 있던 관우가 오의 통혼 제의를 거절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기습에 나선 것이다. 물론 선택은 오나라로서는 스스로 한계를 지은 꼴이 된다. 만약 당시에 유비가 한중을 넘어 장안으로 나오고 관우가 허창을 공격하고 손권이 서주 방면으로 전진했다면 위나라로서는 일대 위기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권이 천하를 놓고 멀리 보기보다 바로 눈앞의 이웃집 땅을 탐하다 보니 동맹은 무너지고 만다. 여기에는 물론 유비측 잘못도 적지 않았다는 점은 지적해야 한다. 성공적인 확장에 도취되어 내실을 튼튼히 하지 못한 것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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