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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망국의 역사를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가슴 아픈 일이 워낙 많았기에 읽다보면 자연스레 눈물이 흘러 내려 종이에 떨어져버린다.
그렇게 번져버린 종이를 읽어가면서 당대를 머리로 그려감이 쉽지 않다.
이 작품의 토대는 "조선왕조실록"이었지만
이제 근대의 초입에 와서는 다양한 참여자의 여러 기록을 보게 된다.
각종 회고록, 방문기, 외국역사책 등 방대한 사료는 여러가지 시선을 주게 된다.
지난 실록이 주로 반도에서 왕과 사대부, 당파간의 다툼 이야기가 많았다면
이번 <망국>편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한반도의 모습이 보여진다.
지금까지는 주로 역사를 나쁜 것과 옳은 것으로 구분하여 보아왔다.
하지만 3자의 시선으로 보면 나쁜 것은 강함, 옳은 것은 약함으로 묘사된다.
한반도의 사건들은 이제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으니 수평적으로 묶어 보아야만 한다.
주체적인 개혁 노력은 청의 개입을 불렀는데 점차 일본이 끼어들고, 나중에는 강국 러시아까지 참여하여 벌이는 싸움의 모습은 현대의 발칸이나 팔레스타인을 보는 듯 하다.
일본이 초단기간에 러시아를 물리칠만큼 강국이 된건 지금 봐도 참 신기한 현상이었다.
120만 육군을 양성하고 예산의 7배(이 부분은 한번 검증이 필요한데)에 달하는 전비를 동원하는 힘에 비하면 조선의 국력은 참 미약하였다.
고종이 열심히 전환국 지폐기 돌려서 국내 물가 폭증을 시켰지만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하였다.
일본이 자기 고유의 힘 + 근대화시킨 힘 + 외부의 신용(미국,영국의 채권 발행) 이렇게 해서 몸을 키워갔다.
조선은 개화파와 수구파, 친일과 친러, 동학과 양반, 개화와 시골 유생들의 의병 등 쉬지 않고 대립의 모습만 보여진다.
시야도 좁고 힘도 모으지 못한 조상들의 모습들에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 나온다.
김옥균,박영효,유길준,서재필 등 당대의 재사들은 어떠했을까?
다 하고 싶은 말, 해내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대세는 바꾸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바로 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동안 일반 역사책이 잘 다루지 않는 고종과 민비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비교적 공정하게 묘사한다.
한미한 집안 출신 민비였지만 초단기간에 일족에게 거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동학 봉기를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은 민비일족이 팔아버린 관직의 수령들의 탐학이었다.
이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청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전장터로 변해버린다.
동학의 수십만 농민군도 일본군 대대급 병력에 처참하게 죽어감은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도 유학생을 보냈건만 그들의 지식이 나라안에 흘러가지 못했고 덕분에 이런 꼴이 되었다.
이후 조약이 체결되고 또 일제시대에서 훈작을 받아 연명하는 민씨 등 조선 척족들의 행태에도 날카로운 필봉이 가해진다.
이 한 권은 그동안 난해했던 조선말의 역사를 정말 풍부한 정보를 통해 인식의 업그레이드를 시켜주는 걸작이다.
작가의 8년 세월 노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