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기행 학고재 산문선 6
시바 료타로 / 학고재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탐라기행이라고 이름지워진 시바료타로의 제주도 기행문이다.

시바의 시야에는 아시아가 먼저 있다.
서양과 대비되는 동양, 그 방대한 영역에 대한 전체 조감이 먼저다. 
그리고 중심으로 나섰던 일본과 주변국에 대해 골고루 관심을 두는 자세가 그의 특징이다.

제주도의 중심에는 산 하나가 우뚝 솟아 있고 해변에서 중턱, 산정까지 서로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산의 중턱은 거대한 초원이다. 
이 초원의 한 가운데서 그는 몽골과의 연계에 관심을 둔다.
몽골어를 전공하고 몽골 부근으로 파병되었던 그로서는 응당 관심이 많으리라.

탐라가 하나의 독립된 나라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원 제국의 직할령이던 시절이다.
삼별초의 최후 저항을 직접 군사를 움직여 말살하고 목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름을 
탐라국 하고 붙여 버렸다.

1700명의 목동은 어찌 되었을까? 아마 제주도인들의 피에 적지 않은 각인을 남겼을 것이다.


한 지점에서 그는 역사의 다양한 장면을 떠올린다.


제주도는 섬 답게 독특한 역사를 가졌었다.

관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그리고 부근에 조천이라는 항구가 있다.

이는 한반도와의 관계가 중요하기에 만들어진 인조물이다.

조선시대 멀리 이곳에 온 관원들의 무자비한 착취가 있었다.

 

이를 비판하다 어느새 그의 박학은 불교의 기원, 유교가 정주학이 되어서

교조화된 문제점 등으로 휙 튀어나간다. 


그의 관심은 제주의 고유한 것,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에 많이 머무른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해당과 무속이었다.

제주 해녀의 특질을 보며 아시아 곳곳에 널리 퍼진 흑조문화의 흐름을 찾는다.

무속에 이르러서는 퉁구스 문명 전반으로 간다.


정말 정말 아는 것이 많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주제가 나와도 눈을 휙 하늘로 올려서 한중일 삼국을 금방 비교하면서 선명하게 특질을 드러낸다.


한국인에게 일본 작가는 오래도록 불편한 대상이었다. 

시바는 때로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찬양에, 때로는 조총련계와의 친분 등으로 기피 대상이 되었다.하지만 이제 일본도 정상을 지나 하산하고 있고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짐을 느끼면서 아시아라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점점 커지게 된다.

진순신과 더불어 시바는 아시아 전반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보여주었던 작가다. 그래서 그가 한반도에서 만든 이 작품들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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