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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다 -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전쟁 연대기 ㅣ 동아시아와 그 너머 5
개릿 매팅리 지음, 콜린 박.지소철 옮김 / 너머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아르마다는 무적함대를 뜻한다.
1588년은 스페인 제국이 이제 한참 뻗어나가던 시기다.
얼마전인 1571년에 레판토에서 무적 터키를 꺽어냈기에 한층 기세가 올랐다.
제국의 통치자 펠리페 2세의 눈에는 섬나라의 여자 통치자 엘리자베스가 가엽게 보였을 것이다.
한때 감옥 생활을 했고, 돈이 거의 없고, 결혼도 못한 그런 여인이 감히 자신의 맞상대가 될 것인가?
하지만 그의 눈에 가시 같이 박힌 네덜란드의 반란자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통에
가만 놔둘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대함대를 보내 상황을 한번에 해결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잘 알고 있듯이 스페인의 참패였다.
이 책은 길게 길게 그 전후 과정을 설명한다.
전투는 아주 짧았고 전장에서 직접 손해를 입은 배는 몇 척 되지 않는다는 점(함대의 규모에 비해)
그리고 전쟁은 오랜 준비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이미 많은 한계가 그어진다는 점
지도자들이 전장에서 보여준 선택은 후일 알게 된 것과는 차이가 많다는 점 등을
찬찬히 이해시켜준다.
대전쟁은 무엇보다 보급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르마다라는 규모에 맞게 물자를 동원하고 전투 태세를 갖추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특히 화포에 필요한 포탄과 화약을 다 소모하고 나서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었다.
항구에 가까운 영국은 수시로 보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스페인의 원정군대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식량과 물이었다.
전쟁보다 한참 전에 드레이크가 약탈한 물자 중에는 물통을 만드는 재료가 있었다.
이후 전쟁터에서 스페인군이 보관된 물통이 썩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짓게 되는 좌절된 표정이 선하다.
후일 나폴레옹 원정을 가능하게 한 전략 물자가 통조림이라고 이해되는데 이때의 해전도 매한가지였다.
스페인의 문제는 이런 세심한 점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기보다
의지를 더 강조하는 지도자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규모를 통해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지도자의 귀결점은
플루타크가 묘사한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우스에서 잘 나타난다.
군대를 그렇게 크게 만들기 보다 오히려 치밀하게 준비하고 보급망을 잘 깔았다면
그리고 적을 분열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보다 연구했더라면 아마 승리를 얻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지극히 현명한 통치자였다.
빈약한 재정은 그녀에게 투기 행위와 함께 민영화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한다.
드레이크라는 해적을 공인하여 소자본을 넣고 큰 배당을 받게 된다.
더 중요한 일은 해적을 국가 통치의 일원으로 공인해준 행위다.
덕분에 영국의 해군은 소수지만 가장 신분과 벗어나 실력에 의해 쟁취되는
강력한 군대가 된다.
이 군대가 계급과 위계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스페인 보다 훨씬
효율적인 전투를 펼쳤다는 점은 역사가 잘 입증해준다.
민영화의 전통은 이미 그 당시 엘리자베스에 의해서 잘 발휘된 것이다.
이는 후일 그녀의 모방자인 대처 수상에 의해서도 이어진다.
퓰리처 상을 받은 이 걸작은 매우 길지만 세세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으로
1588년의 역사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