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출발 대산세계문학총서 7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선영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소년이 여러 착오를 통해 어른이 되가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사회의 변해가는 풍경을 묘사한 발자크의 걸작이다.

첫 출발은 소략하다. 
어머니가 귀하게 키운 아들을 합승마차를 태워 시골로 휴양차 보낸다.
파리에서 지방을 오가는 합승마차라는 이 공간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이들이 허세,허풍 그리고 은닉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년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공간에서 허세를 보이다가 사회의 쓴 맛을 톡톡히 본다.
자신도 뭔가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마침 잠행을 하는 백작의 사생활을 제멋대로 떠벌린 것이다.
그 결과는 자신이 가는 곳인 은인인 집사의 실직이었다. 
돈보다 명예를 훨씬 중요하는 백작의 입장에서 자신의 은밀한 치부가 그렇게 쉽사리 흘러 다닌다는 점을 용서하기 어려웠다. 마침 집사의 비리에 대한 밀고가 있었는데 여기에 불을 확 질러버리는 것이다.

한숨 짓는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다음 카드를 쓰러 간다.
집안의 친척 한분에게 부탁해서 한국으로 치면 변호사 사무실에 보조요원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착실하게 잘 하면 차곡차곡 한자리씩 올라가게 된다.
여기서 꽤 열심히 했는데 사무소 신참의 환영 파티에서 유혹을 못 이기고 막장 까지 가버렸다. 술기운에 뛰어든 도박판은 사회의 쓴 맛을 톡톡히 지불하게 만들었다.
공금 횡령 덕분에 어렵게 쌓았던 신뢰를 잃어버리고 쫓겨나고 만다.

이 대목에서 뼈아픈 한마디 충고가 던져진다.
"가진 것 없는 자는 완벽해야 한다"
착실히 돈을 모으는 부르조아들의 처세학이다.
그리고 허영을 버려라.
괜히 가진 것을 넘어서는 오만이야말로 그에게 괴로움을 준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막장에 몰린 그는 군인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여기서 일대 반전을 가져온다.

발자크는 이렇게 소년의 성장사를 꽤 세밀하게 그려내 보여준다.

파리와 지방의 짧은 여행, 큰 실패

이어서 긴 법무보조원의 생활, 다시 큰 실패

군인으로서의 새 출발 그리고 성공

대략 이렇게 흘러가는 개인의 삶은 1815년 이후 프랑스의 사회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처음 도입부에서 백작은 집사의 횡령에 분노한다.

믿고 맡겼더니 집사라는 인물이 주변 농부들을 꼬드겨 더 많은 돈을 백작에게 타내고

이를 뒷주머니로 모으고 있었다.

집사의 부인은 마치 자신들이 백작인양 지방의 유지로서 행세한다. 

크고 작은 것 모두 고대로 흉내내는 어제의 촌닭의 모습이 작품에 잘 묘사되어 있다.

바로 화가의 시선에 의해. 그들은 화려한 옷 속의 손 모양을 보고 한 때 노동에 찌들었었다는 사회적 배경을 유추해낸다.

이런 꼴 사나움을 한번에 날려버린 것이 백작의 해고였다.

하지만 막판에 오면 집사는 차분히 돈을 모아 백작 옆에 커다랗게 자신의 영토를 만들어 낸다

마치 체홉의 벚꽃 농장에서 처럼 말이다.


작품을 읽어가면 프랑스 사회의 변모하지 않은 고유의 성격과 함께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변해가는 사회상이 같이 나타난다.

가족을 넘어 친족간의 끈끈한 유대, 여성의 우위, 청원 등을 통해 움직이는 사회 등이 고유의 성격이라면.

처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귀족의 시대가 새롭게 부상하는 부르조아에 의해 평평해지는 흐름이 사회상으로 드러난다.


원래 사회는 주인과 노예로 구성된다.

주인은 행세하지만 일은 못한다. 노예는 직접 일을 다루면서 근근히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노예는 일을 통해 자기 실현을 해나간다. 기술을 익혀가면서 사회를 변해시키고 자신의 삶을 더 충실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기회가 주어지면 노예들이 자신의 재주를 뽐내며 큰 성취를 만들어낸다. 

혁명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작품속에서 어제의 집사는 실물을 다루고 돈을 제대로 굴려 빠르게 신분을 올려 놓는다. 반면 귀족은 점점 사회적 입지가 좁아진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주인과 노예의 삶은 평평해진다.


발자크가 뛰어난 점은 이런 변화를 포착해 문학 속에 고대로 녹여내 오래 오래 통찰을 준다는 점이다.

주인과 노예의 반전은 프랑스혁명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일제시대에서 양반과 중인, 해방후의 지주와 농민들 사이에서 같은 패턴은 똑 같이 반복되었다.

그런점에서 이 책을 포함한 발자크의 인간희곡은 한 시대를 넘어 인류 보편적인 사회 교과서로 씌여질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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