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를 알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통치자를 보는 것이다.

그가 어떤 철학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보면 

국가를 끌고 가려던 모습과 방향이 드러난다.

정조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화성이었다. 이는 정약용의 작품이고

그의 손에 의해 유익한 여러가지 실험이 이루어졌다.

또 다른 작품으로 서얼허통이 떠오른다.

박제가,유득공,이덕무 등  쟁쟁한 실학자들이 실은 서얼이었다.

한 끗 차이로 금은수저를 못 물고 태어난 덕분에 동수저에 감사해야 했다.

그것도 못 먹는 바깥의 무지한 백성과 비교하면 천운이었다.ㅏ.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있었다.

시로 표현되는 문장에는 이백과 두보를 닮은 재주가 있었고

의식은 벌써 조선을 뛰어 넘어 세계를 누빈다.

이들 대부분이 연행, 중국에 가는 사신의 대열에 끼어 더 큰 문물을 보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불만 많고 -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개혁 의지가 강하고, 현실에 고정된 사고를 하지 않는다

능력 있기에 이들은 갈증을 느꼈고 갈망이 많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천지가 열리면서 기회가 열렸다.

그리고 그들은 국왕의 직속 기관에서 서고 책임자들로 일하게 된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정약용의 길을 가지는 못 했다.

아마 능력이라면, 혹 기회를 주었다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되었으리라.

그럼에도 역시 그들의 수저의 색깔은 동색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바깥 세상이었다.

중국에 가서 관리들과 교류하는데 거인이라는 제법 높은 지위의 문화인들이

나이와 신분을 떠나 이들의 작품을 인정해준다.

만국공용어인(당시로는 한자가) 시문으로 마음껏 내공을 펼쳐보인다.

이를 높이산 여러 중국의 고관들이 귀한 평을 해주고

이것이 조선에 반향을 일으킨다.

덕분에 그들은 수시로 연행을 하고 갈 때마다 환영을 받고 때로

중요한 임무도 수월하게 수행한다.

이른바 지한파를 만든 것으로 오래 동안 남는 기여들이 이루어졌다.

이 방식으로는 나중에 김정희가 그러했다.


인연으로,신분으로 촘촘히 짜여져서 

재주 많은 외인들이 들어갈 곳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온 

서얼들에게 청은 기회의 땅이었다.

박제가의 경우 심지어 예부상서, 오늘날로 치면 장관과 교류를 한다.

한국의 무명의 학자(시간강사 자리도 달랑달랑하는)가

미국에 가서는 클린턴 장관과 밥을 먹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실력을 실력대로 평가하는 오픈된 사회는 강하다.

과거의 청, 오늘의 미국 모두 그런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너는 누구냐고 묻지 않고 너는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실학파들은 실제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귀족들은 대체로 이념과 형식에 치우친다.

즉 있어야 할 것에 한정짓고 자신들의 틀을 고집한다.

사회의 불만세력은 늘 존재하고 심지어 필요도 하다.

다른 시각이 있어야 논쟁이 있고 여기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박제가로 대표되는 불만세력의 눈에는

조선 것이라고는 하나도 이쁘게 보이지 않았다.

벽돌,배,음식점의 운영 등 수도 없는 현상에서 그는 왜를 묻고 또 물어

이유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저것 가져다가 자기힘으로 할 수 있는 실험을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종두법이었다고 한다

제대로 퍼져나갔으면 수 많은 이를 구원했을 이런 귀한 기술이

그의 정치적 몰락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참 안타깝다.


조선은 왜 이러했나?

재주 많은 사람, 왕의 총애를 받아 그렇찮아도 없는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원래 정치의 본질은 밥그릇 빼앗기 싸움이고 이는 특히 

세력을 만들어 신분만을 무기로 삼는 이들이 강하다.


결국 정조의 죽음과 함께 신데렐라의 무도회는 끝나버렸다.

땡 하면서.. 

죽음과 동시에 이어진 대비의 정치는 세도정치의 꼭두각시 놀음이 되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재주 많은 이들의 목숨을 날려버린다.

박제가도 지방 수령 몇 번 하고 재주 보인 덕분에

졸지에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이것이 고비를 간신히 넘긴 뒤에 저 멀리 함경도 끝자락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어떤 이들은 말도 안되는 

남은 유리구두는 무엇일까?

바로 저작이다.


상처 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만든다는 말은

바로 이 시대 정조가 아꼈던 여러 지식인들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들은 각기 흩어졌는데

정약용은 그래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처가의 도움을 받아

평생 저작을 해내어 지금도 우리에게 큰 인물로 기억된다.

반면 저 추운 지방에서 간신히 목숨 부지한 박제가에게는

그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돈도 조교도 없이 고군분투하고 심지어

대비의 석방명령도 무시하면서 그의 앞날을 끊으려는 이들의 손에 의해

그는 고난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 먼 훗날 후배들에게 그의 모습은 

시대의 질곡을 넘어서 자존감으로 버티며 재주를 뽐내었던

이단아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책들과 달리 임용한님의 이 책은 입체적이다.

시대상을 왕의 생각,사회상,집단 등으로 잘 나누어 보여주면서

이들이 서로 엮여져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매우 작은 듯이 보이는 각종 물건 값, 관료들의 월급, 거기서 드러나는 심리 등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태도는 박제가 등 실학자들의 관찰태도와도 비슷하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이제 봉건화가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신분이라는 질곡이 사람들을 옥죈다. 해도 안되는 구나 하는 자포상태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잉여인간이라는 섬뜻한 용어가 나타난다.

이건 옆나라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잃을 때 나타난 현상인데 

이게 슬금슬금 오늘의 한국에 까지 옮겨 왔다.


다시 박제가와 같은 인물들의 활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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