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흐름이 주는 진행이 아름다운 영화였다. 제목이 그대로 상징하듯 영화의 주제는 사랑과 관련된 편지다. 하지만 통상 연인들이 서로 밀어를 담아 주고받는 그런 편지와는 좀 다른 모습이다. 영화에 나오는 남녀는 모두 세명이다. 훌쩍 저세상으로 떠나가버린 연인을 못 잊고 있는 여인,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며 이름이 같다는 인연으로 서로 연결된 또 하나의 여인이 나온다. 한여인의 연인이고 다른 여인의 중학교 동창이었던 주인공 남자는 중학생 시절의 모습만으로 나타난다.
남자 주인공은 벌써 죽어버렸다. 그래서 허탈감에 빠진 와타나베라는 곱상하고 예쁜 여인은 그냥 한번 편지를 띄워보았다. 옛날 옛적 지금은 없어진 주소로 말이다. 한데 이 편지는 우연찮게 같은 이름을 한 다른 후지이라는 여인 집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다가 놀라서 와타나베는 직접 오타로 시를 방문하게 된다. 집까지 찾아갔지만 머쓱해서 돌아오다가 전철역앞에서 조금전에 만나려던 후지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크게 불러보았다. 이름을 듣고 잠시 멈춰섰던 후지이의 모습은 잠깐 동안은 홀로 서 있는 특별한 아주 특별한 존재였지만 곧 사방에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의 물결속에 잠겨버린다.
이어졌다 끊어지는 통화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나에게는 회자정리라는 고색창연한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이 두 여인 사이에는 꽤 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우연찮은 사고로 급작스럽게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후지이는 아버지를 폐렴으로 와타나베는 등산 사고로 또 다른 후지이를 잃었다. 흔히들 병으로 오래 누워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갑작스레 사고로 떠난 사람에게는 한참동안을 미안한 감정을 갖고 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와타나베는 후지이에게 추억을 나누어 달라고 한다.
감기를 몸에 달고 사는 여린 고립된 섬으로서의 삶으로 묘사되던 후지이가 한사람과의 인연을 줄기로 해서 하나씩 과거의 실타래를 따라간다. 대부분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학창시절의 장면들에서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의 모습도 점점 새롭게 새롭게 다가오게된다.
이름이 똑같다는 우연으로 시작해서 같은반 학생들의 짖굳은 장난거리를 함께 받다보니 한편으로는 같이 맞서야 할때도 있었고 왜 내가 저친구 때문에 이런 환경에 놓였나 하는 원망도 생기고 하는 그런 기억들이다. 그러고보니 상대방도 짖굳은 장난을 한두번 시도하기도 했고 100미터 경주에 나가 망신당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가끔 마음에 예사롭지 않았다는 기억도 되살아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읽지도 않는 책을 무작정 빌려가는 습관 덕분에 대출카드들에만 잔뜩 이름이 남는 것이다. 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빌렸을까? 궁금하지만 답은 다음으로 미뤄지게 된다.
어쨌든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실은 첫사랑의 모습과 무척 닮은 이미지 덕분이었다면 꽤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인들은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말에 너무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첫눈에 반할 정도라면 아마 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측정하기도 어렵고 조건이 주어지지도 않은 그런 사랑이 내게 다가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말에 뿍빠져서 감동했던 여인이 사실은 자신 이전에 존재했던 또 다른 존재와의 유사성 때문에 발생한 착시현상이었다고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들이댄다면 어떤 기분이들까? 웃어야 할까 말아야할까? 갑자기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어느 경전의 구절이 떠오른다.
어쨌든 누군가가 내게 물어온다면 이미지의 파편으로 남아 몽상 속에서 흐릿하게 보여지는 사랑보다는 호흡과 시선이 교차하는 그런 현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뿌듯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후지이가 다시 찾아간 학교에서 자기 임무에 너무나도 너무나도 충실했던 어느 여선생님을 고리로 도서실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 아마 여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그냥 혼자 도서실로 걸어들어가 후배들을 만난다는 설정이 좀 부자유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십수년을 떨어져서 만나게된 후배들에게서 자신의 흔적에 대한 질문을 받게된다. 왜 수많은 도서카드들에 후지이라는 이름이 남아있을까요? 아무도 읽지 않아서 오직 한명만 적혀있게되는 이런 묘한일을 누가하신 것입니까?
잠시 머쓱해있다가 그러면서 마지막 만남을 기억해낸다. 후지이가 후지이를 만나러와서 두터운 책을 대신 반납해달라고 한 것이다. 책이라는 두텁게 보이는 속에 무엇인가 메시지가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한다. 그것이 꽤 난해해보이는 제목에 담겨있을까 아니면 책반납 심부름을 대신해달라는 노력봉사 부탁에 담겨있을까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긴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도 내용에 사랑에 얽힌 스토리가 담겨있기는 하다.
와타나베는 이쯤에서 눈덮인 산으로 가서 주검도 찾지못하는 연인을 향해 목소리를 한컷 높여 불러본다. “잘 있었어요 나는 잘 있어요”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그런 반복을 한참 하게된다. 감독은 이 대목에서 친절하게 옆사람의 말을 빌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라고 코멘트를 달아준다.
눈속의 산은 무겁게 느껴진다. 저 눈속에 나의 연인이 갖혀있구나 나와 그 사이에는 이렇게 두터운 눈이 있구나 하는 절망감이 들게된다. 하지만 눈은 또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 장벽이었다. 갑자기 독감이 폐렴으로 발전해 위급해진 후지이가 병원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눈은 분명 장벽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그 눈 때문에 응급조치가 늦어져서 죽고만 경험은 더더욱 무거운 기억이다. 하지만 70이 넘은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게 달음질을 친다. 결국 병원까지는 생각보다 빨리 도달했지만 둘다 응급실 신세를 지게된다. 그렇게 누은 후지이의 입에서 조금전 와타나베가 외치던 소리가 반복되어 나온다. 신비롭게 느껴지는 묘한 교감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그리고 후지이는 깨어난다. 와타나베는 자신을 누르던 중압감에서 벗어난다. 좀 더 살펴보자면 후지이의 가족 특히 할아버지가 가졌던 무거운 느낌도 이번에 확 벗게되고 만다. 얼마나 아름다운 거듭남들인가?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우리의 추정을 확실히 매듭지워주는 증거를 나타내보여준다. 집앞에 찾아온 후배들의 성화에 열어본 대출카드의 뒷면에 정성껏 그려진 데생이 하나 보였다. 물론 후지이의 싱그러운 모습이 세월을 넘어서서 웃음으로 다가온다. 결국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에 이름을 넣는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 너만을 먼저 놓겠다는 순수한 의도였다. 첫사랑을 확인한 순간 얼마나 뿌듯한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자신이 받은 사랑을 굳이 남에게 과시하려는 허영은 없다. 그래서 마지막 편지에 이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 배려를 한다.
사람과 사람은 의사소통을 위해 매우 다양한 전달방법들을 개발해왔다. 손짓 발짓에서부터 편지, 인터넷 시대의 이메일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버스와 지하철 외부에 굵게 쓰여졌던 “선영아 사랑해”라는 메시지가 화제가 되었듯이 정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끔은 이런 메시지에 담긴 상업성이 사람을 씁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메시지들은 모두 똑 같은 무게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하나의 메시지는 다른 메시지를 포함하기도 하고 다른 메시지에 연결되는 관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사롭게 보이던 대출카드 였지만 이를 살짝 뒤집는 행위가 이어져 발생했다면 서로들 또 다른 형태의 인연으로 몰고가는 고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우연들을 뒤로하면서 가끔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우연들을 우리는 인연이라 부르고 또 운명이라고 까지 거듭 주장하고 자위하면서 오늘 여기까지 끌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