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만 쇼>와 비슷한 사회비판물인데 흥행은 앞서 보다 더 참패로 끝났다. 짐 캐리가 여기서는 헐리우드 영화판에서 세속적 의미로 잘 나갈 수 있었던 극작가로 나온다. 2차 대전이 막 끝났지만 미국 사회는 새로운 냉전으로 돌입해간다. 매카시의 선동에서 시작한 빨갱이 사냥은 곳곳에 청문회라는 새로운 마녀재판 공간을 만들었고 마구잡이로 삐딱한 사람들을 끌어내 죄인으로 만들었다.
이런 냉냉한 분위기는 영화에도 반영되어 마제스틱에서 상영되는 B급 영화 속에서 우주선에서 내린 화성인에게 총질을 하는 미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나에게 낯선 것은 적이고 그들에게 총질 할 수 밖에 없다는 자기 방어적인 논리다.
어제까지 영화사의 차기 유망주였던 짐 캐리 였지만 오늘은 동료도 상사도 기피하고 애인마저 떠나버린 홀몸이 되고 만다. 청문회를 피해 무작정 떠난 짐 캐리가 도달한 곳은 로슨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곳은 헐리우드의 몰인정과 대비하기 위한 설정이다. 그래도 이 마을에는 깊은 아픔은 있다. 2차 대전에서 희생된 숫자가 인구에 비해서 매우 많아서 젊은이들을 약 20여명이나 잃고 말았다. 사족 같지만 비율적으로 보아 미국이 2차대전에서 보인 희생보다는 너무 많은 편이다.
어쨌든 어둡게 깔린 이 마을의 공기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에게 꿈이 필요하다. 영화는 바로 그런 꿈을 제공하는 도구고 극장은 꿈의 공간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마제스틱이라는 극장이 있고 이 극장을 복원하는 작업을 짐 캐리가 주도하게 된다.
잠시 찾아온 행복이었지만 결국 매카시주의자들에게 발견이되고 그들에 의해 청문회장에 세워졌다가 용기 있는 자기 변론을 하고 로슨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남은 스토리 전부이다.

여자주인공이 에밀 졸라에 대해서 몇차례 이야기한다. 여러 작가를 놔두고 왜 굳이 졸라일까? 결국 드뤠피스 사건을 언급하려는 것이고 나아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카시즘이 그런 광기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잘 이해하려면 시간을 두고 발생한 두 사건을 잘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1900년 전후를 통해 발생했던 드뤠피스 사건과 1950년대 초 미국에서 발생한 매카시 사건이다. 여기서 두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인용해보겠다. 먼저 드뤠피스의 기록을 보자.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대인 사관(士官)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군부에서는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는데도 군 수뇌부는 진상 발표를 거부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믿어 재심(再審)을 요구해 오던 가족도 진상을 탐지하고, 97년 11월 진범인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을 고발했지만, 군부는 형식적인 신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하였다. 그러나 재판결과가 발표된 직후 소설가인 E.졸라가 공개한 ‘나는 탄핵한다’라는 제목의 논설로 사건은 재연되었다. 졸라는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98년 1월 13일자 《오롤》지에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회여론이 비등하여 프랑스 전체가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 또는 재심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분열되었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비롯하여 사회당·급진당이 가담하여 인권동맹을 조직하였고, 후자는 국수주의파·교회·군부가 결집하여 프랑스 조국동맹을 결성하였다. 마침내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석방문제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면서 제3공화정을 극도의 위기에 빠뜨렸다. 98년 여름 군부는 어떤 새로운 증거서류에 의거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언하였으나, 그것이 날조로 판명되고, 체포된 증거서류 제출자는 자살함으로써 반(反)드레퓌스파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에 정부도 재심을 결정했으며, 또 이 때 반드레퓌스파에 대항하면서 공화정 옹호를 내세운 발데크 루소내각이 성립되어, 사태는 재심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99년 9월에 열린 재심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재차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무죄 확인을 위한 법정 투쟁을 계속한 끝에 그는 1906년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복직 그 후 승진도 하였으며, 프랑스군부도 95년 9월 사건 드레퓌스의 무죄도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자유주의적 재심파의 승리로 끝난 이 사건은 프랑스 공화정의 기반을 다지고, 좌파 세력의 결속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http://my.dreamwiz.com/mydefect/year172.htm에서 인용

매카시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이다. 1949년 이래 수년에 걸쳐 매카시가 상원의 비미(非美)활동특별조사위원회를 무대로 하여 행한, 공산주의자 적발 추방의 선풍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의 공산화와 잇달아 발생한 한국의 6 ·25전쟁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국민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매카시즘이 먼저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중국정책에 영향력이 컸던 외교관, 국무성 및 중국통 정치학자 오언 래티모어, 국제법학자 제삽 등이었는데, 대통령 H.S.트루먼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국무장관 J.F.덜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카시는 육군에 도전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서 마침내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査問決議)에 의하여 실각하였다. 매카시는 히틀러와는 달리 아무런 비전도 가지지 못하였으나, 보기 드문 선동가였다. 그가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나 지적(知的)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멀리 프랑스에서 한참전에 발생했던 드레퓌스 사건이 50년대 초의 미국에서 반복된다면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을 우리 주변에서 찾지 못한다는 법도 없을 것이다.
바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한국판 드레퓌스, 매카시 사건이었다. MBC 특집 추적 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마지막 편은 바로 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다룬 것이다. 1991년 여름 동안 치열했던 공방을 벌였던 이 사건의 핵심적인 증거로 제시되었던 강기훈씨의 필적에 대해서 다시 감정을 해본 결론은 무엇일까? 일본, 미국, 한국 세 곳의 전문가 모두 강기훈씨의 필적이 아니라고 했고 검찰이 내세운 가장 강력한 증거인 가족의 증언도 진실이 부정되었다고 한다. 진실은 도대체 어디에 있고 정의는 또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일은 그 다음에 있다. 바로 이 사건의 주임검사가 김대중의 지명에 의해 지금 대법원 판사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김대중 개인에게 본격적으로 실망하게 된 주요한 계기 중의 하나다. 의회의 동의과정에서도 추미애 의원을 비롯해서 여러명에게 질문공세를 받았지만 당시 강 대법원 판사 지명자는 상황논리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명은 통과되었다.
한마디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법철학 부재, 한국 사회의 법에 대한 관념의 저열성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물론 보수에서 진보까지 두루 안배해야하는 정황을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마제스틱>에서 나오듯 법이란 계약의 한 종류에 불과하고 상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운용될 수 있다는 궤변론의 반복일 따름이다. 그 보다 짐 캐리가 청문회 마지막에 이야기 했듯이 하늘은 인간에게 준 고유한 권리가 있다는 천부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을까하는 의문이다.

미국은 우리와 경우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누리는 가장 강력한 특권의 하나가 대법원 판사의 임명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는 종신제로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고 그 하나 하나의 판결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영화 <펠리칸 브리프>를 보면 개발사업자들이 친환경적인 두 명의 대법원 판사를 암살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사회에서 대법관의 위치가 중요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그렇게 사법제도와 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마제스틱>에서 짐 캐리는 로슨으로 돌아오지만 대한민국의 강기훈은 감옥으로 가야만 했다. 내가 왜 없던 죄를 인정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양심의 주장을 끝내 형벌로 가두려고 했던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아직도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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