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긴 영화다. 그만큼 여운도 길었고 감동도 길었다.
스토리를 아주 짤막하게 요약한다면 귀족 출신의 젊은 여자가 하류층 출신의 젊은 남자에게 눈이 맞아 매우 돈이 많은 약혼남과 가족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면 주제라면 무척 흔하게 보던 이야기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 것도 얼마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똑 같은 대상이라도 만들어내는 솜씨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감독은 여러가지 우려를 떨쳐버리고 정말 멋진 솜씨로 대작을 만들어간다.

배가 처녀 출항을 하다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았고 많은 사람들이 구출되지 못해 죽었다는 것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이야기다. 모두 다 아는 것을 생각하던 그대로 보여준다면 보는 사람도 고역이고 더더욱 만드는 사람에게도 의미 없는 행위일 것이다. 감독은 이 배를 당대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으로 그려내었다.  
처음 배가 출항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장관이라고 느끼게 된다. 선장이 출항을 명령하자 조타수가 키를 잡고 명령이 전화를 통해 다시 기관실로 전달되고 이들의 지시를 따라 수 많은 화부들이 석탄을 집어넣자 증기기관이 움직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배의 외부에서는 보기 어려운 많은 인간들의 움직임들을 드러낸다. 각각의 층에는 거기에 맞는 역할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 조직해낸 사회와 유사한 연관성이 있다.
물론 배의 맨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선장과 더운 기관실에서 석탄을 부어넣어야 하는 일꾼들과의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이 배는 손님들을 위해서도 서로 다른 계층을 만들어 놓았다. 일등, 이등, 삼등이라는 엄격한 구분은 손님들의 신분과 그대로 연결되고 승무원들은 여기에 맞추어 서비스를 차별화한다. 일등석에는 봉사를 삼등석에는 통제와 감시를 하는 것이다.
당시 배가 만들어진 아일랜드에서는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해 있었다. 이들을 대거 고용해서 배가 만들어졌는데 다 만들고 나서는 다시 이들을 실어다가 꿈 많은 신대륙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남자주인공 도슨이었다.
배를 타기 위해 포커판에서 그가 보여준 배짱과 운은 결코 범상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여주인공은 유럽의 명문귀족 집안 출신의 규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도전적인 성격도 얼굴에 드러난다. 그녀의 어머니와 약혼남이 함께 여행하게 되는데 그들을 위한 짐은 엄청난 분량이다.
물론 이 둘이 배안에서 머무는 공간 또한 높이와 부피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다.

여기까지 있는 배와 등장인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도입부를 마친 감독은 서서히 주제를 드러낸다. 영화가 대상으로 삼는 시기는 첫번째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얼마전이다. 한편에서 근대화를 통한 평등과 자유에 대한 욕구가 활발히 일어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귀족들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특권고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1830년대에 쓰여진 스탕달의 <적과 흑>을 보아도 귀족들과 신생 부르주아들의 밀고 당기는 갈등들이 많이 드러난다.
이렇게 두 계급은 서로를 경멸하거나 무시하려 들면서도 상대방을 종종 인정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국의 신흥 부르주아들은 손에 잡히는 부로 자기 만족을 하면서도 항상 가슴 한구석에는 유럽사회의 귀족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를 부러워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거금을 들여 엄청난 규모의 미술품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이 뉴욕의 프릭 컬렉션이나 카네기의 휴이트 하우스다.
미술품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역시 혈연일 것이다. 그래서 거액을 들여 명문귀족들과 결혼을 해서 혈통 좋은 가문으로 격을 높이려는 야심찬 시도를 했다. 당시 미국사회의 밴더빌트 (그 이름을 딴 대학이 아직도 명문의 대열에 있다)를 비롯한 몇몇 도둑 재벌들이 아주 야비한 수단으로 번 돈을 그렇게 고상한 목적을 위해 소비하였다.
여주인공의 가족은 유럽의 이름있는 귀족 집안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거의 파탄에 이르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면 여주인공의 약혼남은 미국에서 철강산업으로 큰 부를 거머쥔 신흥 부르주아다.
영화의 여주인공과 약혼남은 그렇게 맺어지려는 관계였고 정략결혼을 마무리짓기 위해 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결혼의 한쪽 파트너인 여주인공은 자신이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놓여진 복잡한 사회관계에 눌려 사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배 뒤편으로 가 막 물위에 뛰어들어 세상을 하직해볼까 하는 순간 누군가가 나서서 막아준다. 물론 남자주인공의 등장이다.
이 소년은 아까 배표를 구하기 위해 과감한 배팅을 하는 결단력과 기회 포착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관객은 그가 한 소녀의 삶에 대한 회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논리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저쪽을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언변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무척 깊은 벽이 있다. 3등석 손님의 목숨을 건 행위도 처음에는 강도로 오해 받았고 조금 뒤에는 기껏해야 지폐 몇 장으로 처리될 정도였다. 잠시 시비가 있다가 그는 1등석의 저녁식사까지 초대 받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엔젤이 하나 등장한다. 장사를 통해 새롭게 졸부가 된 남편을 둔덕에 1등석에 올라탄 부인이었는데 주변의 전통 귀족분들은 결코 그녀를 동류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출신이 귀족적이지 못해서 천박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무척 뚱뚱한 모습의 그녀에게 우리는 교양을 별로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남자주인공을 여러모로 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미는 발견하게 된다.
어쨌든 이런 구도속의 남녀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온갖 난관을 뚫고 서로에게 접근하게 된다. 물론 처음 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나뉘어진 층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내면에 담긴 거리감이다. 도슨은 여주인공이 비록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변화를 추구했음에도 여전히 마음 속을 굳게 차지하고 있는 허영에 대해서 야유를 보인다. 한발씩 가까워지던 두 사람은 3등실 손님들의 정말 자유로운 춤무대에 와서는 거의 하나가 된다. 마지막 단계는 물론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 나눔이다.
약혼자와 그의 보디가드가 총을 들고 쫓아오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했지만 이제 배 자체가 빙산에 부딪히는 대형사고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이다. 밤에 무리하게도 질주해서 신문의 1면을 장식하려던 선주와 선장의 오만함은 이 때가 빙산이 내려오는 시기라는 것을 너무 쉽게 무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말로 비참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구명보트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바다로 내던지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인간의 오만에 대한 비판과 속물근성에 대한 야유를 가득 담은 메시지들이 서서히 모습을 내보인다.
가라앉는 배 위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은 정말 다양하다. 선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대로 배위에서 운명을 같이한다. 선주는 자본주답게 조심스럽게 구조보트 위에 몸을 숨긴다. 아직 모든 돈을 다 잃은 것은 아니니까 그도 이 위기만 넘기면 된다. 선원들이 경보신호를 전하는 방식도 아직 계급간의 차이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아직 상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던 1등석 손님들은 여전히 파티를 즐기고 그녀의 하인들에게 주문을 하고 있다. 이때도 여전히 3등석 손님들에게는 밖으로 나와 구명보트를 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배밑창에 남아있던 어린아이와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말이 안통하는 관계로 제대로 경고를 듣지도 못했고 물건을 챙기느라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정말 자신에게 선의를 베풀려던 도슨의 노력을 거부하였고 결국 물살에 휩싸이고 만다. 말 못하고 기록에도 없던 무수한 민초들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난파선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솔직하게 그려진다. 선원들이 배려해주어서 구명보트에 타고 있었지만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는 목소리에 대해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다. 평소에 그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던 혈통과 행동의 고상함 절도 있고 우아하던 예절들도 그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도 구명보트에 자리가 충분해서 다음 차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여자나 노약자를 배려했다고 하지만 자기 것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자 갖은 수단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한다. 이들에 비해서 항상 출신이 천하다고 경멸당하던 뚱뚱하고 우아하지 못하던 평민 출신의 여인만이 참된 의미의 ‘바람직한’ 인간성을 보일 따름이다.

예전에 타이타닉의 침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위기 속에서도 절도 있게 행동해서 노약자를 먼저 구명보트에 태웠고 바다에 빠져 자신들이 추워 죽을 처지에 놓여있었어도 결코 구명보트에 타서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서 이 이야기와 비교해보자. 사실과 인식, 그리고 인식이 변해서 만들어진 신화와는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고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가끔 스스로의 욕망을 극복한 척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고상하다고 밖으로 내세웠을 따름이다.

원래 노블리즈 오블리제라는 말은 용감한 사람들이 그만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배에서도 몇몇은 그런 용감함을 보낸다. 배를 지휘했던 선장, 만든 사람 노귀족들은 전통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어차피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정말 감독이 보이고 싶어했던 것은 몇몇 용감한 귀족들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체면이고 인간성이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다수의 귀족들이었다. 이들의 몰염치한 행태들을 통해 카메론은 가라앉는 배와 함께 위선과 고집으로 가득찬 한 시대의 소멸을 드러내려고 한다.
경멸의 대상이 되는 그런 존재들이 행세하려고 하는 사회에 대한 야유를 담고 있다. 혈통 자체만으로 대접을 받으려는 그런 시대는 이런식으로 끝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그런 흐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로 남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겠냐 하는 것을 다시 드러내려고 한다. 도슨과 여주인공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서로를 위해 여러 차례 보여주었던 헌신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모여살았던 사회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역시 예술이다. 1700년대 후반을 살았던 하이든은 늘 하인의 복장으로 하인의 신분에서 귀족의 식사시간을 위해 연주를 해야만 했다. 모짜르트는 그런 꼬락서니가 싫어서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독립의 길을 걸으려 했다. 그래서 정말로 고생스럽게 살았다. 하지만 벌써 베토벤의 시대에 와서는 후원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거꾸로 후원자들에게 큰 소리를 칠 정도로 입장이 변하게 되었다. 귀족들의 초상화를 번듯한 모습으로 그려주면서 밥벌이를 해야 했던 예술가들이 이제 자기 식대로 자기가 본대로 사람을 그리려고 했다. 농부를 대상으로 했던 밀레는 공산주의자로 취급되었고 감자먹는 사람이나 창녀까지도 그렸던 고흐는 전혀 이해되지 못했다.
당연히 수입은 형편없었지만 그들은 결코 고집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인상파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받게되는 감동은 이런 도전과 노력의 산물이다.

타이타닉은 결국 그러한 거대한 전환점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또한 그것이 주인공 도슨이 화가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중간에 보면 그림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을 차별하면 안되겠다라는 메시지를 담는다고 해도 주인공이 정말로 지위도 없고 재능도 없고 성격도 않좋다면 그건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설정하는 것이 도슨이 신분이 주는 제약만 빼고는 모든 점에서 훌륭하다는 것이다. 우선 처음 단계에 용기와 재치를 보여주었다. 다음으로는 화가로서 너무나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보는 여주인 또한 그림에 대한 너무나 훌륭한 안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앞부분에서 여주인공의 미술 소장품들로 피카소, 모네 등의 걸작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관객들도 알만한 작품들인데 대부분 주요 박물관에 걸려있는 것들이다. 정말로 여주인공이 이런 안목이 있었다면 그녀는 빈손에서 출발했어도 그림 거래만으로 정말 대단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감독의 트릭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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