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전쟁 - 야만과 문명이 맞선 인류 최초의 게릴라전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 - 스파르타쿠스 전쟁

죽어서 영원히 살게된 혁명의 아이콘

로마 역사는 도전자들에 대한 기록도 충실하게 남겼다. 덕분에 밖에서 쳐들어온 한니발과 안에서 반기를 든 스파르타쿠스에 대해서 잘 알게 해준다. 로마의 체제 내부를 흔들어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은 여운이 짙었다. 먼 훗날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는 아이콘으로 부활했다.
"피억압자들아 떨치고 일어나라, 죽음을 두려워 말고 싸우면 영원히 살 것이다."는 메시지와 함께.

최근 또 한번의 스파르타쿠스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케이블 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폭팔적인 인기를 끌었다. 케이블이라는 특성에 맞게 19금의 조건을 걸고 난 다음 무서울 정도로 잔인한 검투사의 세계를 묘사해간다. 리얼리티를 넘어 극단적 과장까지 더해져서 만들어진 장면들은 안방을 콜로세움으로 만들어버렸다.
삶과 죽음의 대립은 인간을 가장 극적으로 만든다. 전쟁이란 그런 공간이었고 스페인의 투우도 유사한 형태다.
관객으로서 나의 안전을 담보한채 치열한 대립의 장면을 보는 행위는 고대인들에게 대단한 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는 비슷한 정신적 오르가즘을 현대인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너무나 잔인하지만 한번 눈에 담으면 떼기 어려운 쾌감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잠시 뒤에 드라마의 즐거움은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뀐다. 정말 그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될까? 실제는 어떠했을까 등 이어지는 질문이 만들어진다.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너무 좋은 해법이 된다.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사회 상황에 대해 소상한 배경 설명을 해준다. 경험 많은 군대는 외부의 정복전쟁에 나가 있었고 오히려 이탈리아 내부는 진공상태였다는 점을 알려준다. 
처음 스파르타쿠스의 항쟁은 소규모 노예 저항으로 취급되어 좀도둑 사냥 수준의 대응을 가져온다. 사실 출발은 매우 미약했다. 74명의 무장도 단단하지 않은 검투사 탈주자 집단이 초기 멤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세력은 점점 커져간다. 후일 폼페이를 재로 덮어버리는 베스비우스 화산에 은거하면서 주변의 불만세력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하나의 기적을 일으킨다. 로마 정규군을 격파해낸다. 그리고 항쟁군은 급속히 세를 불려서 수만명에 이르게 된다.

원래 비정규군은 숫자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훈련과 무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약간만 밀려도 금방 초토화된다. 이 대목에서 스파르타쿠스의 지도력이 평가 받는다. 그는 싸울 곳, 싸울 시간을 잘 골랐고 자기편과 상대편을 모두 잘 알았다. 
그는 원래 트라키아라고 그리스 약간 위의 거센 민족 출신이었다. 노예가 된 경로는 모호한대 아마 그 전에 로마의 협력자로서 군대에 기병으로 복무했다고 추정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후일 보여주는 군사적 위업을 만들어내는 리더십을 이해할 수 없다. 속주 보조병이었던 그가 어느새 검투사가 되고 나중에 다시 거대한 항쟁군을 이끈다는 스토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면 장군이 검투사가 되고 다시 황제를 죽이는데 비슷한 패턴이다.
어쨌든 스파르타쿠스는 새로 받아들여진 세력들을 매우 잘 조직화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가 이끈 초기 멤버들은 싸움의 달인들이다. 출신도 다르고 민족,종교 모두 다른 여러 유형의 인간들을 모아 수만명을 만들었다. 이들을 이탈리아 위 아래로 끌고 다니면서 약탈, 파괴 그리고 전쟁을 자유롭게 한다.
지도자로서 그는 여느 반란자와는 안목이 달랐다. 로마 군대와 전면전은 되도록 피했고 혹 승리를 거두더라도 자만하지 않았다. 비정규군으로 정규군과 전면전을 꾀하는 건 잠시 영광스럽게 보이지만 무모한 행위라는 걸 매우 잘 알았다. 얼마뒤 캐사르에 맞선 갈리아의 지도자들 보다 훨씬 현명한 인물이었다.
대군을 움직이는 가장 큰 어려움은 먹는 일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가면서 그는 1년반 이상을 이탈리아를 내전 수준으로 끌고 갔다.
매번 보내는 로마군을 훌륭하게 격파해내면서 말이다.
그러다 드디어 그에게 최후의 전투의 날이 오게 된다. 가장 부자인 크라수스가 사재를 털어 경험 많은 병사들을 모아 본격적인 도전을 한다. 그리고 그는 경제를 알기 때문에 전술을 바꾼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청야전을 전개한 것 같다. 보급이 끊겨 전체를 제대로 통솔하기 어려워진 덕분인지 스파르타쿠스는 불리한 조건에서 전면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최후의 싸움터에서 그는 말을 버리고 몸소 가장 앞에서 크라수스 하나를 향해 덤벼들어간다. 힘써 싸웠지만 그로서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전투를 끝낸 로마는 6000명의 포로를 십자가에 매달아서 본보기를 삼았다. 

승자인 로마 또한 이렇게 큰 싸움을 만든 상대방을 보통 폭도로 대우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스파르타쿠스의 지도력, 영웅적 행위, 공정함 등등이 기록으로 남았다. 
노예로서 살기를 거부한 그의 용기는 오랜 시간 억압당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영원히 팡테옹에 안치된 것이다. 승자들이 안치된 로마 시내의 그것이 아니라 역사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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