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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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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감상문
적은 돈으로 만든 흔치 않은 소재의 영화가 이토록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시대 사람들 속에 있던 궁금증을 확 까발렸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상당히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초반부에서 부터 그런 느낌을 확 받았다. 편집의 자연스러움이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
아주 재미있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소재도 법.
장소도 법정과 감옥이 많이 나온다.
나머지 지역도 특별히 로케 된 곳이 없는 듯 하다.
여기까지 보면 확실히 예산이 안 들어간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다.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포인트는 이런 요소가 아니었다.
참여한 배우가 꽤 훌륭하다,
안성기와 문성근.
한국을 대표하는 명 배우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아주 작은 개런티로 영화 촬영장에 불러 오게 되었을까?
주연은 법이 아닐까?
법의 여신은 한손에 칼 다른 손에 저울을 그리고 눈은 천으로 가리고 있다. 여신이 다루는 칼은 때로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우한다. 그래서 더욱 공정해야 하고 이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없기에 더욱 진실에 이르도록 매진해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의 법의 전통은 그러했을까?
매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랜 군사독재 전통을 가진 한국 사회에서 법은 때때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도 보였다.
한국의 대통령 중에서 사형수 출신의 숫자는 하고 퀴즈를 내보자.
몇 명이 맞출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시고,.
답은 무려 다섯명이다.
전두환,노태우,김대중
더해서 박정희 마지막 한명은 이승만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법의 역할이 지독히도 넓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질문이다.
옛날일은 옛날일이고
작금에 와서.
현정부의 출발에는 촛불이 있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파생물로 촛불 경찰총장과 촛불 대법원 판사가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직전까지 대법원은 촛불 판사 사퇴 논란으로 게시판이 뜨거웠다.
촛불로 잡혀들어온 피고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말라고 예하 판사님들에게 압박을 가하셨고 이 문제가 한참 논란이 되었다.
사퇴 직전까지 몰렸지만 마침 발생한 거대한 폭풍 덕에 관심이 옮겨가자 지금도 잘 버티고 계신다.
법의 최후의 심판자로서 말이다.
물론 법이 항상 옳게만 유지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도 문제가 많은 판결들이 있어서 사후에 사과를 받기도 한다. 특히 흑인에 대한 재판은 그렇다.
멀리 유럽에서도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커다란 오점으로 남았다.
이 영화는 사건에 대해 너무 좁게 보았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상당히 타당한 지적이다.
위험 무기를 들고 사적 공간으로 찾아가 위협한 것은 분명 죄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죄는 죄다.
그런데 영화는 죄의 크기를 놓고 더욱 억을 하다는 주장과, 죄로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았냐는 주장 이 두가지를 같이 보아달라고 한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상황부터 살펴보자.
문제의 출발점은 대학입시가 있었다.
이 때 수학과에서 출제된 문제에 오류가 있었다는 논란이 생겼다.
당시는 학교들이 경쟁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이를 학교간 순위 매김으로 간주할 때 였다.
덕분에 작은 흠결이 학교의 커다란 명예훼손으로 이어지리라 우려했을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자는 현실론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김교수는 이를 한사코 에스컬레이션 시켰다. 아마 학교도 상당히 곤혹 스러웠을 것이다. 잘못해서 기준을 바꾸면 탈락한 학부모에게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력이 재임용 등 일련의 불이익으로 이어졌다고 김교수가 생각한 점도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다.
당시 김교수가 제기한 입시 문제의 오류에 대해서 외국의 수학자들까지 동조했다는 점에서 더욱 국제적 망신까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개되면 공개될 수록 더 큰 자존심 싸움이 되어 버린다.
이기는 방법은 적당히 숙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실리를 챙겨야 하는데 그런 주변 머리는 김교수에게 없었다.
부연해서 하나 더 하자면 세상은 수학처럼 돌아가지는 않는다. 노벨상을 받은 대 수학자인 뷰티풀마인드의 주인공 내쉬가 나중에 정신분열을 일으켰다. 수학자는 때로 아주 심한 괴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법과 수학 모두 옳게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죄송스럽지만 교수님이 과도하게 순수한 탓이다.
사회의 기본 원리는 무리를 지어야 쉽게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같은 편을 비난 하면 안된다. 어느 순간에 외톨이가 되기 때문이다. 집단에는 더욱 중요한 체면이 있는데 이를 함부로 건드리면 집단의 보복을 당하게 된다.
어쨌든 이래서 영화의 재판은 시작되었다. 몇 차례의 복직 소송이 거절당하자 김교수 입장에서는 몸 버리고 돈 버리고 정말 힘든 상황이 되었다. 자신이 분명 옳은 지적에서 시작했는데 법은 거대함과 한 편이라는 피해의식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부분으로 집중한다.
이제 싸움은 김교수와 학교가 아니고 사법부 전체와 함께로 커져버렸다.
영화가 픽션이니 팩션이니 하는 논란이 있는 부분이 이곳이다.
좁게 보면 유죄이고. 기껏해야 죄의 대가에 대한 범위가 논란이 될 수 있는데 이를 그렇게 정의투사화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나온다.
참고로 영화를 통해 정치와 사회에 강한 영향을 주었던 선례는 미국의 명 감독 올리버 스톤의 제이에프케이가 있다. 케네디 암살에 대해 이 영화가 보여준 해석 덕분에 역사학자들은 매우 피곤한 논쟁을 벌려야 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젊은 관객들은 스톤의 해석에 확 빨려들어갔다.
이 영화도 아마 마찬가지 효과를 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지금 사회가 본 것을 믿고 또 그런 분위기로 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법의 수호자들이 억울한 면도 나타날 것 같다.
절차적으로 보아 죄는 죄대로 심판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묘한 측면이 있다.
진실이 헷갈리고 이를 가려내는 사법부의 권위는 더욱 의심 받는 시대라 그렇다.
최근 사법부 판결에서 가장 논란이 된 인물은 바로 정봉주 전 의원이다. 금년에 그가 보여준 활약은 지대했고 정치적 파장 또한 매우 컸다. 덕분인지 그의 재판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더니 실형이 되어버렸다.
그의 지지자들은 아 세상이 정말 꼼수구나 하는 불쾌한 꺠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나온 이 영화에서 아마 지지자들은 자기 들이 보고 싶었던 정봉주를 보았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봉주를 잡아 넣는 공정이 의심스러운 바로 그 사법부를 보았을 것이다.
아니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진실은 쉽지 않다. 정말 부러진 화살이 어디 얼마나 역할을 한 것인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것이다.
좁게 본다면 죄는 분명히 죄다.
이를 무조건 크게 보아야 한다고 해도 얼마간의 무리는 따른다.
하지만 크게 보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구도 얼마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정권말 수 많은 권력의 핵심부들이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형, 국회의장 측근, 관료의 핵심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의 혐의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대사라는 사람이 수백억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이 되질 안나.
그러면서도 별 죄는 없는 듯 하다.
법이 이들에게도 같은 수준의 공정함이란 기준을 대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의 가장 중요한 최후의 보루인 대법관에 대해서 적절히 임명권을 행사했는지 까지 말이다.
진실은 모호할 수 있지만
사회는 분명 새로운 요구를 강하게 하고 있다.
영화은 하나의 계기이고 설혹 틀렸거나 과장이 있거나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도구로서 이 영화를 선택했고 그들의 요구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동의 하든 동의 하든 영화는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 되어버렸다. 김교수는 학교에서의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은 못하였지만 아마 한국사회의 사법 및 교정 기관의 행태 변호와 시민의 법의식 제고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기여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태어나서 사회를 조금 이라도 낫게 만든다면 그것도 보람 있는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방법을 다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는 그 방향 쪽으로 간다고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