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신 리자청
홍하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이 말의 값어치가 많이 느껴진다.

사물을 보고 감탄했으면서 그 속을 분해해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매니아라 할 수 없다는 말을 어느 분이 하셨다.
나도 백번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나라 한 곳을 방문할 때 마다 먼저 그 나라가 성취한 위업에 놀라움을 가진다. 이어서 누가 이 일의 주역이었을까 라고 질문 하게 된다.

오늘날 홍콩이 보여준 위업의 주역은 바로 리카싱이라는 상인이다.
그는 가난한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상재를 키워 지금의 거부를 이루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조화 사업에서 기반을 닦았지만 발빠르게 변신했고 시류를 정확히 읽으며 사업을 부동산으로 다각화했다. 그는 한참 어려울 때도 먼 미래를 보았고 잠재력을 믿으며 과감한 투자를 해냈기에 오늘에 부를 이룰 수 있었다.

자딘 메디슨, 허치슨 암포아 등 오래된 홍콩 기업은 멀리 아편장사까지 맥이 닿는다. 그런 기업들의 권리를 하나 하나 사들일 때 중국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아편 전쟁의 상흔이 이제야 치유되는 듯한 모습이다.
덕분에 홍콩에서의 리카싱의 위상은 상신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다.
참고로 싱가폴에 리콴유 수상의 독재가 성립하는 것처럼 중국인에게도 황제를 만들고 이를 섬기는 기질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홍콩 공항을 가보면 PCCW라는 회사의 인터넷 서비스가 눈에 띄고 길에 가보면 왓슨이라는 드럭스토어가 많은데 이 모두가 리카싱계열이다. 그뿐인가 하버 호텔이라는 명품 숙소와 더불어 공공사업인 전력 등 각종 서비스에 리카싱의 자본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사업은 멀리 해외에도 뻗쳐있다. 캐나다의 에어캐나다와 자원회사, 영국에서는 오렌지라는 통신사 등 다양하다.
이런 면들을 보게 되자 그의 사업에 대해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미천하게 시작해서 당대에 자신의 부를 이룬 것은 한국의 정주영 회장과 비슷하고 M&A를 주업으로 한 것은 김우중 회장과 비슷하다. 부동산 개발에 대한 안목은 트럼프와도 비견할 만 하다.

그의 사업에는 중요한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자딘을 비롯한 식민 자본들이 중국 지배권을 두려워하며 홍콩에서 발을 뺄 때 리카싱은 거꾸로 등소평을 만났다. 개방의 진정성을 확인한 그는 남들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아 싼 값에 철수하려는 자산을 인수하였고 중국에 적극 투자했다.

최근 역M&A라고 해서 이머징 마켓 자본의 선진국 기업 M&A를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백인은 자본 비백인은 노동을 제공하던 근대식민지 사회의 논리가 반대가 되는 현상이다.
인도의 타타가 그런 역M&A의 대표자인데 리카싱의 위업을 보니 훨씬 선구자로서 여러가지 영역에서 성과를 보였다.
깊이 연구해볼만한 주제로 보인다.
왜냐면 최근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신성장 동력을 해외사업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사업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러니 더욱 동양인으로 해외사업에서 성과를 거둔 리카싱의 면모에 호기심이 간다.

그의 인간적 면모도 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작가는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리카싱이 만든 호텔에 묵는다.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며 리카싱이 키워낸 종업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깊이 느껴본다.
결론은 매우 만족스럽다였다. 제대로 교육이 되어 정말 마음으로 고객을 섬긴다는 평이다.
리카싱 같은 귀인을 직접 만나기는 어렵지만 그가 진정한 경영자라면 종업원을 잘 섬겼을 것이고 그들이 주인의 마음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그 기업은 훌륭하다는 논리가 작가의 주장이다.
나도 깊게 공감한다. 내가 느끼는 서비스가 떨어지는 기업, 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이건 남의 일이야 하고 느끼는 기업은 결국 몰락하게 된다.

홍콩을 벗어나 리카싱의 고향인 조주를 오가며 느끼는 중국의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불친절한 모습은 최근과는 무척 다를 것이다. 북경에서 리카싱이 만들어 기증한 도서관과 광장을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홍콩에 가면 나도 꼭 비싼 돈을 내서라도 하버 호텔에 묵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거인의 삶이 피워내는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면 무엇이 그리 아까우랴.

나에게 이런 동기와 호기심을 만들어 준 저자의 노력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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