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는 뿌리가 잘린 인물들이다. 둘 다 어려서 부모와 의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덴고는 어머니가 일찍 가출했고 아버지는 NHK 수금원이다. 아버지는 고된 작업을 거들도록 강제화했고 덴고는 깊은 상처를 받으며 어느 순간 아버지를 떠났다. 아오마메의 부모는 특별한 종교집단인데 이들의 자신의 교리를 주변에 전파하는 선교작업에 열중이었다. 늘 부모를 따라다니다 지친 그녀는 어느날 부모 곁을 떠났다. 이렇게 이들은 뿌리가 잘려나갔다. 참고로 말하면 일본의 가족관계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의절이 종종 발생한다. 꽤 유명한 만화 <맛의 달인>의 주인공은 바로 의절한 부자다. <하얀거탑>에서 보면 주인공은 데릴사위로 남의 집으로 사위로 갔지만 거기서 그 집안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두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의 문제는 뿌리가 없다는 점을 넘어 이들이 모두 목표를 가지지 못하다는 점이다. 덴고는 나름 재능있었지만 수학이라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학원의 강사로 연명한다. 이것도 주업은 아니고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소설쓰기다. 이 모든 일의 문제는 그가 어디에도 깊은 열정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뚜렷한 목표 없이 세월을 보내다보니 그의 삶에는 진지함이 부족해진다. 뿌리가 없다는 점은 제대로 서기 힘들다는 점이고 그러다 보니 결국 위로도 높이 가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아오마메도 마찬가지로 주업은 스포츠 트레이너이지만 이 보다는 살인청부업에 더 가깝다. 이 또한 목표 있는 젊은 여자가 매진할만한 일은 아니다. 이 둘이 빠져들어간 세상은 1Q 84다. 매우 특이한 세상으로 기존 세계와 약간 틀어져 있는데 어디가 현실인지 어디가 환상인지 잘 모른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조지 오웰의 84년에 대한 패러디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오웰의 1984년 이라는 소설을 환기해보면 사회주의가 만연해진 먼 훗날 84년 쯤에는 빅 브라더가 세상을 매우 세밀하게 지배한다는 내용을 그려내었다. 작가는 여기에 반해 지금의 세계에 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에 잘 찾아보면 어디엔가 리틀 피플이라는 존재는 있다고 한다. 이들이 신인지에 대해서 작가는 애매하게 표현한다. 리틀한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자세를 낮추고 귀를 기울여야만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묘사한 서양 심리학자가 있다. 현대인들은 오만에 가득차 종교를 잃어버렸는데 정말 원한다면 먼저 겸손해지고 자세를 낮추어서 작은 소리를 들으라고 프로이드의 제자 융이 이야기했었다. 어쨌든 덴고도 아오마메도 리틀 피플과 엮이게 된다. 그것도 아주 대척점으로 서게 되고 결과적으로 둘 다 매우 위태로운 상황으로 놓인다. 이들을 구조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우선 덴고에게 집중해보자. 덴고는 자기가 어려움에 빠지자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버지는 지금 도쿄에서 좀 떨어진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가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 답은 씁쓸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버지라고 믿었던 존재는 진짜 아버지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더욱 자신의 뿌리 없음을 확인 한 덴고지만 생각을 바꾸어보기로 했다. 혈연으로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돌봐준 사실상의 아버지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사실 아버지의 삶은 그리 유쾌한 것이 못 되었다. NHK수금원의 일은 여러가지 혜택을 주었다. 정해진 급료는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주었다. 더해서 은퇴후의 노후를 보장해줄 정도의 복지까지 주어져 사고무친이었던 아버지에게는 정말 좋은 직업이었다. 반면 그 일은 무척 고된 것이다. 요리조리 피해가는 주민들에게서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버지는 꽤나 못되게 굴어야만 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소설이 잘 묘사하고 있으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에서 나온 주인공과 비슷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조직체들. 그 속에서 부품으로서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일해야만 했던 존재인 아버지들. 그들의 삶에서 큰 존재의의는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 사실 의무감이었다. 아버지의 비밀금고에 들어있던 내용물의 중요한 부분은 덴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었다. 이런 아버지와의 화해는 덴고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축복이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고스란히 안고 있던 아버지였지만 덴고의 부탁을 받고 그는 미련을 거둔다. 아버지를 화장시키는 모습은 무척 쓸쓸했다. 그리고 나서야 그에게는 작은 실마리가 열린다. 지금의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1Q84에서의 탈출구가 말이다. 결국 그와 아오마메는 기묘하게 서로 만나게 되고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리틀 피플이 만든 공기번데기가 여기서 큰 역할을 한다. 그렇게 보면 작품속의 피플들은 선인지 악인지도 불투명하다. 그들의 메시지를 직접 작품에서 묘사된 것도 없다. 그냥 모호함 속에 남는다. 일본의 84년이라면 어떠한 시대일까? 70년대의 전공투가 허무함을 남기고 끝나갔다. 세계적으로 좌파는 몰락해간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상사회의 기대감은 무너져간다. 마지막 적군파는 비행기를 납치해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이상사회주의 사회로 떠나간다. 중국도 타락했고 소련도 타락한 당시에 남은 이상사회는 바로 북한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 마지막 로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묘사된 전공투의 끝자락은 산장에서 벌어진 총격전이다. 여기서 리틀 피플을 맞이하는 종교화된 분파는 이념의 시대를 살아간 치열한 이들과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작품속의 두 주인공을 구원하게 만드는 힘은 사랑이다. 그리고 생산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나타남과 그와의 생산활동(자녀만들기)은 뿌리도 방향도 없던 두 존재에게 갈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위험하고 묘한 공간 1Q에서 스스로를 구원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