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를 다녀왔습니다.
3박4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꽤 인상이 깊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도시라 많이 알려지기도 하고 덕분에 기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대를 안고 직접 눈으로 보니 결코 기대 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황포강의 크기는 한강보다 약간 작은 듯 하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컸습니다.
그 오른쪽인 금융중심가의 마천루나 왼쪽인 외이탄의 조계시절 유적 모두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둘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국 땅 안에 들어온 서양입니다. 외이탄이라는 강제로 빼앗은 지역에 자기 식대로 멋을 잔뜩 부려 만들어 놓은 건물들이 있습니다. 무려 15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키워진 이곳들은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강 건너를 보고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외이탄 보다 훨씬 높은 정말 마천루라는 느낌이 확 다는 건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나라 마다 하나씩 가장 높게 세우는 방송탑이 이곳 상해에서는 동방명주라고 이름지워져 있습니다. 진주 구술이 중간 중간에 달린 듯한 뭔가 키취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물입니다. 그 옆에 있는 건물들도 다양한 모습을 하면서 엇비슷한 높이로 세워져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들은 미학적으로 이들 건물이 훌륭하다는 점입니다.
최근 공자라는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영화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하면 느려터지고 색깔 없으면서 시간만 길게 늘려놓는 중국의 문화수준을 알기에 건물의 외형은 놀라운 결과물이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물어보니 이들 건물은 다 전세계 최고의 명작가들의 솜씨라고 합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작품이 몇 들어왔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제대로 솜씨 발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청와대 경호문제로 만들어진 고도제한 그리고 옥상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공군 시설 등등에 의해 서울의 고층건물가는 마천루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높이도 상대되기 어렵지만 실제 건물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도시의 모습 또한 상해의 푸동에는 꽤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전에 북경을 가보았을 때는 달랐습니다. 서양식 4각 몸뚱이 위에 갑자기 왠 중국식 건물 지붕을 씌워놓은 통에 이건 왠 양복에 삿갓 하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푸동의 모습은 여느 서구적 도시 보다 못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현대적이죠.

중국이 커다란 조계지를 내어 주고도 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땅이 크고,사람이 많고 자원도 많않겠지만 무엇보다 인내심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참고 또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배울점을 찾아보았습니다. 물론 침탈에 대한 1차적 반응은 보수였습니다. 내 것이 훌륭하단 말야 하면서 청조의 위정자들은 굳게 문을 잠그고 현실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상해는 무척이나 먼 도시였죠. 반면 이곳에서는 마구잡이로 들어온 양인들에게서 배울점을 하나 하나 찾아보자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처음에야 무기,외모 등에 관심이 가지만 점차 그들의 힘의 원천에 대해 궁금해지고 그 가장 근저에 있는 근대의 정신세계에 호기심을 집중합니다.
덕분에 상해는 손문,장개석을 중심으로 한 국민당의 발원지가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아예 한 단계를 뛰어 넘어 가장 모던한 사상으로 갑시다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이상주의자도 살림을 차립니다. 지금 신천지라고 불리는 모던 카페 거리의 뒤편에는 공산당 1차 대회가 열린 장소가 있습니다. 하긴 이상을 쫓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죠. 거기서 다시 조금 더 발을 움직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다양하게 움직이며 각자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다는 매력이 상해에는 있었습니다.
중국이 외부에 수출한 주요 품목이 종이,화약,나침반에 더해서 도자기,비단이라면 반대로 수입했던 두 가지 주요 품목은 바로 불교와 공산주의였습니다. 둘 다 논리적 엄밀함에서 중국에 급속한 충격을 주었고 중국인들은 이 옷을 자기식에 맞게 바꾸어 입게 됩니다.
공간적으로 넓고 시간적으로 길게 보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의 열광에 깊은 사색을 더해 결국은 내 방식은 이거야 하고 내어 놓게 됩니다. 중국식 공산당이 소련식 도시 중심의 혁명에서 전환한 점이나 일찍 추진한 개혁개방으로의 방향 전환 등 모두 이러한 사고 방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물론 그들의 실험이 모두 깔끔하게 진행되는 건 아닙니다. 한 편에서는 마천루가 보이지만 약간 시선을 낮추면 아주 아주 낡은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100년은 넘은 듯한 인상을 주는 주거용 싼 건물들도 꽤 있었습니다.
마천루, 조계지역, 모던한 카페거리 그리고 예원을 중심으로 보존된 전통거리 등이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약간 발을 움직이면 아파트 촌이 나타납니다. 그 공간은 저에게 꽤 충격이었습니다. 40층은 넘을 듯한 높이도 높이지만 규모가 한국의 가장 큰 아파트 단지 중 하나였던 압구정 현대의 몇 배가 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아파트들은 아직 그렇게 고급스럽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건축양식은 멋 부린 흔적이 있습니다. 분당 정자동 주상복합 단지를 보면 상떼빌 등 건축물들이 서구적 스타일로 만들어졌는데 이곳 아파트들은 보다 오래되었지만 이런 모양새를 자연스럽게 이미 오래전에 취하고 있습니다. 역시 조계지의 서양건축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길러진 미적 안목은 무시하기 어려운 가 봅니다.

그 한 귀퉁이에는 카르푸가 턱 하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 이거 역시 규모가 다르구나. 북경 자금성,이화원을 볼 때 느낌과 똑 같은 느낌이 확 밀려옵니다. 신세계 정말 제대로 사업하는거야, 여긴 게임의 양적 규모가 달라지는데 말이야 하는 식의 물음이 스쳤습니다. 한국보다 더 큰 규모가 작용하는 공간이고 외국의 문물에 적극 개방적이라면 토종 고객에 특화전략 하나 개발해 월마트 밀어냈다고 자랑하지만 여기 중국에서의 싸움을 다를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대규모의 자본이 일시에 필요하고 더해서 세계에서 가장 모던 한 것을 원하는 중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는 점은 역으로 쉽지 않은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신세계의 중국 사업은 아직 고전중이라고 합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황푸강의 야경을 잘 보여준다는 유람선으로 갑니다. 전기가 남지는 않을 터인데 정말 아낌없이 쏟아부어 건물 외벽을 현란할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오가는 1시간 가량 양쪽을 번갈아 보는데 눈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낮에만 보았다면 느낌이 또 달랐겠죠. 더 약했을 겁니다.
상해의 야경을 잘 다룬 영화 중 하나는 최근 톰 크루즈가 주연한 <미션 임파서블3>였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와 하는 느낌을 가지면서 상해를 꼭 가보자고 했는데 정작 이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금지였습니다. 이유는 화려한 건물 다음의 장면이 아주 아주 낡은 촌동네가 나옵니다. 좁은 뱃길 주위에 늘어져 있는 작은 집들이 무척이나 낡아보였죠. 덕분에 앞의 장면과는 완전히 대조되었기에 인상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한데 이 대목에서 중국 공산당이 발끈했다고 합니다. 상해의 모던한 발전상을 보여주어 위신을 높이고자 특별 허가도 해주었는데 왠 촌동네냐고 화를 냈죠. 일면 타당한 분노입니다. 이 촌동네 장면은 영화에서는 상해 지역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몇시간 가야되는 서당이라는 지역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그 서당에서도 가장 전통 보존된 낡은 구역입니다.
그런데 이곳 또한 지금은 영화 덕분에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한쪽에서는 상영금지 다른 한쪽에서는 관광상품화하는 걸 보니 예전 조계지를 둘러싼 중앙과 지방, 보수와 진보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저런 지역을 포함해서 무려 15곳의 관광지를 3일만에 돌아보니 몸은 꽤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무척 자극을 주는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2003년 북경에서 보던 모습하고도 또 달랐고 남과 북의 차이도 얼마간은 느껴졌습니다.
항주로 가는 고속도로는 정말 커브 하나 찾기 어려운 일직선의 도로였습니다. 이런 개활지에서는 아무래도 권력의 중앙화가 가능해졌겠죠. 반기를 들어도 숨을 공간이 마땅치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 전체를 합친 것 보다 훨씬 큰 나라들을 이루고 사는 게 가능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을 가도 저곳을 가도 거리를 메우는 건 무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다 한방향으로 몰아가는 건 중국공산당 정부입니다. 과거 박정희 때 다른 잡념은 사치이니 우선 생계부터 해결해보자는 드라이브가 이곳에서도 그대로 작용합니다.
물론 이 방식도 효율성이 높습니다. 아까 언급한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는 도시계획과 땅의 강제 몰수 및 재분배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규모입니다. 쪼개진 권리를 하나 하나 설득하고 매수하고 재건축 한다고 하면 도시는 아주 작고 색이 다양한 천조각을 이어 만들어지는 누더기 옷이 됩니다. 한국에 돌아와 남산을 순환하면서 내려다 본 모습이 그렇습니다. 반면 중국은 일거에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단일한 목표로 성큼 건너뛰어 갑니다. 그러한 체제의 효율성은 놀라운 결과물들을 단기간에 만들어내게 됩니다. 도시계획 하나에서만도 보여지는 개방성,효율성,속도 등이 사회 전반에 작용할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요? 지금 보여주는 8% 성장율을 10-20년 반복하게 되면 일본도 미국도 따라잡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 입장에서는 최대의 무역 파트너가 중국으로 변해버린지 여러해가 지났습니다. 그 중국의 물건을 사줄 곳은 물론 미국입니다. 미국,중국,한국,일본 등 여러나라가 서로 얽힌 이 그물 같은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월가의 기침이 상해의 도시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 이 두 거인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얼어 붙어버립니다.
08년 말 전세계 위기를 이기는데 중국의 부양책이 정말 정말 커다란 역할을 하였고 거기에 따라 발언권도 쎄졌죠.
그런 세상속에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중국공부를 더해야 하겠구나 하는 감상을 가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게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숙제로 한자 자격시험을 합격하면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숙제를 냈죠. 중국 공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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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0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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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