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샨보이
아사다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슈산보이>

땅바닥에 엎드려 일하는 건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남자라면 일어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봐야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잖아.

그건 세상 사람들이 그냥 하는 소리야. 요즘 학교에서는 제대로 가르치지를 않는군. 귀한 직업인지 천한 직업인지, 그런 건 이 꼴을 보면 잘 알 거 아니냐.

어차피 주워 얻은 목숨이니까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지. 뭔가 하나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나서 죽지 않고는 먼저 간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어.

세상 탓을 하지 마라. 남 탓도 하지 마라. 부모 탓도 하지마라.

하지만 내 탓도 아니에요.

아니 네 탓이야. 남자라면 모든 게 자기 탓이야.

<해후>

고민하는 일이 있소?

아니요, 이런 모습이지만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고민하는 일은 없습니다.

가족은 있소?
그런 게 없기 때문에 고민할 거리도 없습니다.

헤어진 연인의 나이를 헤아리면서 밤마다 이루어지지도 않을 해후를 꿈꿔왔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야 하는 착각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다. 그만큼 실망도 커졌다.

<망향>

군인의 처자가 나라에서 돈을 받는 것은 전쟁의 재난으로 집도 부모도 잃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기부를 하는 게 아니고 지불해야 할 곳에 지불하는 것이라고. 나라는 잘못하고 있지만 이걸로 용서하라고..

할머니는 아무리 고생을 해도 고아들은 더 험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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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는 사람의 감정을 한쪽으로 잘 몰고 간다.

삶에는 종종 눈물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남의 아픔에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아픔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수용하게 된다. 저렇게 나보다 훌륭한 사람도 아파하게 되는구나 혹은 나보다 더 힘든 고통을 느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등의 생각 전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여기 작은 단편집의 주인공들은 골고루 여러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구두 닦는 노인, 전쟁미망인, 시골에서 어렵게 올라온 고학생(갑자기 MB가 생각났지만…), 시각장애인, 몸 파는 아가씨(게이샤의 추억과 비슷한). 다양한 주인공들은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지만 대부분 마지막에 짙은 여운을 독자에게 남긴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남자라면 다 자기 탓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까 MB 비슷하다고 느낀 고학생의 다음 정도가 되는 슈산보이의 성공한 사장의 모습이다. 회사에서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보면 둘로 나뉜다. 책임을 지는 사람,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 이렇게 된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조직에서 나이가 들수록 필요가 없어져간다. 그런 사람들은 더욱 더 눈치를 보고 부족한 능력을 아부로 대체하면서 살아간다.
반면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1번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책임을 지고 일을 끌어오는 자세를 보임이다.

어렵지만 혼자 어려운 것이 아니니 더 약한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공감하고 베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쟁미망인이라는 신세는 무척 억울함이 많았겠지만 이를 역으로 더 어려운 고아들과 함께 가면서 풀어가는 <망향>의 주인공도 훌륭하다.
덕분에 이 글의 또 하나의 고민이던 해부학 실험이 안되던 초급 의사수련생의 고민이 한번에 해결된다.

전반적으로 살아 남은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유대라는 인생관도 잘 나타난다. 전쟁 이후의 일본은 무척 비참했다. 특히 아시아 제1번이라는 영광에서 순간적으로 폭락했기 때문에 더 더욱 그렇다.

난세를, 곤란함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사람의 성장에 큰 작용을 한다.
작가 아사다 지로 자체가 몰락한 집안에서 나온 인물 아닌가?
결국 메시지는 집약되어 간다.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정규 과정에서 이탈해 많은 인생을 유전했고 수많은 삶을 보았지만 결국 메시지 하나를 가슴에 안게 된다.

인생은 그만큼 살만한 가치가 있고 또 살아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가 보여준 “그래도 살아”라는 철학과도 맥이 통한다.

그래서 인생에는 최루제가 필요하다.
힘들지 그래도 쏟아내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라.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최루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책을 다 덮고 일어나면 우리 가슴에는 좀 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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