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선조의 삶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역시 임진왜란이다.
조선을 건국이래 가장 큰 고난으로 빠뜨렸던 이 전쟁과 관련해서 최고 책임을 맡았던
임금으로서 그의 행동과 사고가 궁금했다.
일본에 사신을 보내서 의견차이가 있음 까지 확인한 상태에서 방치했는지
이순신을 괴롭혀서 죄주려고 하다가 백의종군 시키고 나중에는 원균은 왜 이순신과
같은 수준의 공으로 평했는지 이런 질문들이 어려서부터 일어났다.

박시백의 이 책을 읽으면서 실록이 꽤 훌륭하게 당대의 거울 역할을 해주는구나
하는 감탄사를 가지게 했다.
기록관이 왕의 여러 말을 충실히 담다보니 나중에 말이 편의에 의해
바뀌는 경로가 다 드러나게 된다. 주변의 정황도 세세하게 담아서 정말 판단이 옳았는지
아니면 깊게 생각함이 없었는지 등도 잘 파악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전쟁에 임해 아군의 장수들이나 관료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가 아주
잘 드러난다. 적이 오자 잽싸게 피해놓고서는 다른 장수를 모함하는 이일의 뻔뻔함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신립 장군이 굳은 책임감으로 적과 맞선 것은 좋지만 자신의 용맹을 믿고
아군의 약함을 질타만 하다가 배수진을 쳐서 결국 자멸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반면 이순신의 치밀한 준비와 그가 하나하나의 싸움에서 이겨나가는 장면을 통쾌하다.
이를 세세하게 살펴보면 그는 오히려 적을 어려워했고 무조건 덤벼 상대를 꺽는 것이 아니라
함정을 쳐놓고 이곳으로 적을 끌어내서 아군의 강점으로 적을 물리치는 정말 위대한
전략가였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한산대첩에서 패한 왜군의 장수는 1주일을 굶으며 패전의 원인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이순신에 대한 모략전술이었고 최후는 칠천량 전투에서 나타난다.

이 대목에서 하나 따지고 싶은 점은 왜군은 조선의 장점을 인정하고 파고들어 자신을
더 강하게 하는데 활용하는데 조선군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키가하라 전투라는 책을 읽다보면 1만명의 군대로 명군을 대파시켜 무려 3만명 이상의
코를 베어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백과사전을 열심히 검색해보니 이것이 사천전투라고 하는데
우리는 순신이 해전에서 이긴 또 다른 사천전투만 열심히 부각시킨다.
아니면 가토 기요사마를 궁지에 몰아넣은 울산성 전투를 TV에서 역사스페셜로 열심히 다룬다.

그런 자세로는 결코 균형잡힌 역사가 나오지 않는다.
적이 싫지만 싫을수록 더욱 적의 강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만 한다.

이후의 역사에서 조선이 통신사를 보내면서도 상대의 무지만 강조했다고 하는데
후일 정약용은 이를 크게 걱정했다고 한다. 이런식의 일방주의적 통행의 결과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가 된다.

전쟁의 끝 이후에 내려진 선조의 논공행상은 정말 화가 나게 만든다.
가장 앞세운 부분은 명의 구원을 청한 자신이니 서울을 빼앗기고서 끝까지 자신을
호종한 내시까지 공을 내려준다.
반면 대부분의 의병은 제외시켜 버렸고 심지어 역모의 기운이 있다고 해서
처형하는 사태도 있었다.
칼의 노래를 보면 쉬지 않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삼엄한 시선이 두려웠다고 순신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하나의 원인 무능한 지도자가 무책임하기까지 할 때에
이렇게 공이 있고 용기 있는자까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쟁 이후에 그 후유증으로 일본, 명 모두 정권이 바뀌게 된다. 하지만 조선은 제대로 바뀌지 않았고 당쟁은 계속 되고 백성을 착취하는 정치체제는 계속 간다.
이 모두를 담고 있는 이번 실록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부분은 국난을 당해 자신을 바친 진정한 위인들이 역사의 기록에 남겨져 남아 후일을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빛난다는 점이다.

실록의 가치는 당대의 패자를 영원히 패자로 남기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 있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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