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행성이 있었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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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고 있으면 머지않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대로, 역사의 교훈도 있고, 사람들이 아무리 비이성에 함몰되는 시대라 하더라도, 최후의 선을 넘지는 않을 판단력 정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는 희망 아닌 희망 때문에, 또 어느샌가 눈에 보이는 전쟁은 끝나고 총성 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그런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인류에게 작가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큰 행운이다. 왜냐하면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 나아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이야기라는 형태로 인류에게 보여주는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하고,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조금은 덜 나쁘도록, 운이 좋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시대로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번역 출간된 프랑수아 를로르의 『푸른 행성이 있었다』는 기후 재앙과 경제 붕괴, 자원 쟁탈과 핵전쟁, 이후 핵겨울로 황폐해져버린 지구,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상상력을 고루 갖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 멸망의 원인은 우리가 실제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위험 요소이고, 다행히 연구를 위해 미리 파견된 화성에 거주하는 인류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인류의 화성 진출이라는 프로젝트를 미디어에서 자주 접한 탓에 지나치게 낯설지 않은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가독성을 높인다.

황폐해져버린 지구와 지구를 떠난 인류 공동체라는 소재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들 수 있다. 이 소설과 베르베르의 소설을 굳이 비교해보자면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인공지능의 존재 혹은 영향력이다. 『파피용』에서의 인류 공동체는 지구에서 탈출 후 초기에는 자체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것 같았지만 결국 변질된 사랑인 ‘애증’ 문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갈등과 대립이 촉발, 결국 좁디좁은 우주선 안에서 인류의 어리석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운명을 보여준다.

반대로 『푸른 행성이 있었다』에서 이주한 인류 공동체는 인공지능의 도움과 관리, 나아가 지배를 통해 매우 안정적인 사회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반대로 화성에서의 눈부신 기술 발전을 토대로, 황폐해진 지구 혹은 오래전 떠났던 고향 지구로 다시 귀환하려는 프로젝트까지 준비하고 실천하는 집단으로 묘사된다.

앞서 파견된 유능한 지구 탐사 대원들의 실종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단독으로 지구에 보내지는 임무를 맡게 된 주인공 ‘로뱅 노르망디’의 화성에서 지구로, 다시 지구에서 화성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는 이 이야기에서, 오히려 가장 주목되는 포인트는 이 모든 일을 관리, 감시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다. 인공지능에게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인류와의 관계는 어떻게 재설정될까? 이 소설은 이런 주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이야기 중에서 가장 주목받을 작품 중 하나로 거론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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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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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흐름, 계절의 이동, 꽃의 이미지들이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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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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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읽는다. 일반 산문과는 달리 단어 하나에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단 하나의 응집된 개념을 철저히 설명하기 위한 작업에 지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 시의 특징인 것 같다. 그래서 시는 한 번 읽을 때 다르고 두 번 읽을 때 다르다. 모든 글들이 그렇게지만 시는 특히 더 그렇다.

루이즈 글릭의 시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영미권 시가 우리말로 번역된 경우라 또 다른 어려움이 몰려온다. 예컨대 원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불안감, 혹은 번역된 시 자체가 이미 원 작품과는 다른 새롭게 창작된 형태의 시처럼 느껴지는 데서 오는 낯섦. 그냥 읽는 시도 감이 안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영어에 우리의 정서를 싫은 시는 이중삼중으로 수수께끼를 깔아놓은 지뢰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선 ‘야생 붓꽃’이란 제목부터 단순성과 복합성이라는 이중적 느낌을 준다. 순수한 자연의 느낌을 노래한 것인지, 자연물을 빗대어 작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섞어 놓은 것인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선은 호감이 인다.

여러 색채를 띤 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조명하는 느낌이 드는 몇몇의 시가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물러가는 바람」이라는 시에서는, 이미 사람을 만들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모두 다 주었는데,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더 엄청난 존재가 되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인간들에 대한 신의 심정을 노래한 듯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필수적이라 할 만한 것, 그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봄날 아침의 푸르름”, “시간” 등. 사용법만 충분히, 제대로 알았더라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분명히 느끼게 되었을 선물, 인간은 그렇게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게 어쩌면 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사월」이라는 시에서도 그런 신의 한탄의 변주가 느껴진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상황이 작가 특유의 표현으로 재해석된 느낌이다. 쫓겨난 아담은 거친 땅을 일구느라 정신이 없고, 여자는 에덴의 찬란했던 시절을 잊지 못해 현실을 부정한다. 신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실수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신은 말한다. “그 누구의 절망도 나의 절망과 같지는 않다”

시집의 전반적은 흐름은 두 개의 큰 맥락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감이다. 그 사이에 피어나는 꽃들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루이즈 글릭의 시들은, 언젠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소망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의 근원이 되어주리라 생각되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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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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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넘어서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굴레였음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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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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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게르버의 대척점에서, 그를 망가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괴팍하다 할 수 있는 그의 선생인 쿠퍼조차도 지금 이 시대에 어디서나 존재할 것만 같은 캐릭터를 보여준다. 1930년 전후에 쓰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더라면,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한 청년의, 그리고 중년의 흔적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쿠르트 게르버는 마지막 학년, 졸업반 진급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다. 그런데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쿠퍼라는 선생이 담임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게르버의 존재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게르버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다.

아르투어 쿠퍼, 그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자주 강조해 학생들 사이에서 ‘쿠퍼 신’으로 불린다. 하지만 ‘권능이 유한한 신’, 또 ‘착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그의 심리 묘사를 통해 그의 일그러진 자아상 혹은 가엾은 모습을 보여준다. ‘엄격한 무질서’라는 표현은 그의 모순된 사고방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삶의 모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실 내에서 여러 학생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오는 것이 일상에서 특별한 풍경은 아니겠으나, 소설 속에서 굳이 그런 장면이 묘사된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말을 누가 하는지 알 수 없게 저마다의 목소리가 순서 없이 마구 뒤섞여 나오는 장면은 자주 반복된다. 특정한 주제를 놓고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인물을 둘러싸며 마구 쏟아지는 인사의 형태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 소설에서 졸업시험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험의 통과 여부가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내기라도 하듯, 8학년 제도의 학교에서 그 이전 7년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모습을 선생들로부터 이끌어낼 만큼 소설에서 가장 큰 긴장을 형성해간다.

저마다의 인생이 다 그렇겠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자기만의 개성이나 고집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고유의 특성들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듯, 또는 이루어야만 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겉돌기만 할 뿐이다. 상대를 매우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혹은 시대는 나와 너가 엄격히 구분되고 또 그 구분을 의식하면서 이해관계를 통해 조율되는 세상이 아니라, 나와 너가 공유하고 있는 것, 그리고 다름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협력이 가장 큰 삶의 즐거움임을 늘 일깨워주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답답하고 비극적인 현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유토피아를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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