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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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읽는다. 일반 산문과는 달리 단어 하나에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단 하나의 응집된 개념을 철저히 설명하기 위한 작업에 지나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 시의 특징인 것 같다. 그래서 시는 한 번 읽을 때 다르고 두 번 읽을 때 다르다. 모든 글들이 그렇게지만 시는 특히 더 그렇다.

루이즈 글릭의 시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영미권 시가 우리말로 번역된 경우라 또 다른 어려움이 몰려온다. 예컨대 원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불안감, 혹은 번역된 시 자체가 이미 원 작품과는 다른 새롭게 창작된 형태의 시처럼 느껴지는 데서 오는 낯섦. 그냥 읽는 시도 감이 안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영어에 우리의 정서를 싫은 시는 이중삼중으로 수수께끼를 깔아놓은 지뢰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선 ‘야생 붓꽃’이란 제목부터 단순성과 복합성이라는 이중적 느낌을 준다. 순수한 자연의 느낌을 노래한 것인지, 자연물을 빗대어 작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섞어 놓은 것인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선은 호감이 인다.

여러 색채를 띤 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조명하는 느낌이 드는 몇몇의 시가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물러가는 바람」이라는 시에서는, 이미 사람을 만들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모두 다 주었는데,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더 엄청난 존재가 되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인간들에 대한 신의 심정을 노래한 듯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필수적이라 할 만한 것, 그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봄날 아침의 푸르름”, “시간” 등. 사용법만 충분히, 제대로 알았더라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분명히 느끼게 되었을 선물, 인간은 그렇게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게 어쩌면 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사월」이라는 시에서도 그런 신의 한탄의 변주가 느껴진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상황이 작가 특유의 표현으로 재해석된 느낌이다. 쫓겨난 아담은 거친 땅을 일구느라 정신이 없고, 여자는 에덴의 찬란했던 시절을 잊지 못해 현실을 부정한다. 신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실수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신은 말한다. “그 누구의 절망도 나의 절망과 같지는 않다”

시집의 전반적은 흐름은 두 개의 큰 맥락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겨울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감이다. 그 사이에 피어나는 꽃들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루이즈 글릭의 시들은, 언젠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소망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의 근원이 되어주리라 생각되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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