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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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게르버의 대척점에서, 그를 망가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괴팍하다 할 수 있는 그의 선생인 쿠퍼조차도 지금 이 시대에 어디서나 존재할 것만 같은 캐릭터를 보여준다. 1930년 전후에 쓰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더라면,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한 청년의, 그리고 중년의 흔적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쿠르트 게르버는 마지막 학년, 졸업반 진급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다. 그런데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쿠퍼라는 선생이 담임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게르버의 존재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게르버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다.

아르투어 쿠퍼, 그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자주 강조해 학생들 사이에서 ‘쿠퍼 신’으로 불린다. 하지만 ‘권능이 유한한 신’, 또 ‘착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그의 심리 묘사를 통해 그의 일그러진 자아상 혹은 가엾은 모습을 보여준다. ‘엄격한 무질서’라는 표현은 그의 모순된 사고방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삶의 모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실 내에서 여러 학생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흘러나오는 것이 일상에서 특별한 풍경은 아니겠으나, 소설 속에서 굳이 그런 장면이 묘사된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말을 누가 하는지 알 수 없게 저마다의 목소리가 순서 없이 마구 뒤섞여 나오는 장면은 자주 반복된다. 특정한 주제를 놓고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인물을 둘러싸며 마구 쏟아지는 인사의 형태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 소설에서 졸업시험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험의 통과 여부가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내기라도 하듯, 8학년 제도의 학교에서 그 이전 7년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모습을 선생들로부터 이끌어낼 만큼 소설에서 가장 큰 긴장을 형성해간다.

저마다의 인생이 다 그렇겠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자기만의 개성이나 고집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고유의 특성들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듯, 또는 이루어야만 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겉돌기만 할 뿐이다. 상대를 매우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혹은 시대는 나와 너가 엄격히 구분되고 또 그 구분을 의식하면서 이해관계를 통해 조율되는 세상이 아니라, 나와 너가 공유하고 있는 것, 그리고 다름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협력이 가장 큰 삶의 즐거움임을 늘 일깨워주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답답하고 비극적인 현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유토피아를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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