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4
호메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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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처음 든 느낌은 ‘뭐, 이런...?’이었다. 이 거대한 서사시의 발단이 ‘헬레네’라는 한 여인 때문이라는 사실에 약간 맥이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한 납치 문제 이상의 정치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한 여인을 되찾겠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영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며, 신들까지 나서서 인간사를 흔드는 이야기다. 이게 과연 합당한 이유인가? 정말 이 정도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일리아스』를 계속 읽다 보면 이 질문은 점점 더 깊어진다. 아킬레우스는 전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전장에 복귀해 복수에 나선다. 그의 분노는 정당하고, 슬픔은 진실하다. 하지만 이 모든 시작이 '명예를 빼앗겼다'는 자존심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 허탈해진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다툼도, 트로이와 그리스 간의 전쟁도, 그 끝없는 죽음도 어쩌면 ‘별것도 아닌 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 대목에서 문득 『삼국지』가 떠올랐다. 조조는 동탁의 권력을 몰아내겠다는 명분으로 거병했고, 유비는 한 왕실의 적통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싸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야망, 분노, 오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일리아스』와 『삼국지』 모두에서, 인간은 대의와 명분을 입에 담지만, 그 이면에는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들-질투, 욕망, 자존심-이 꿈틀댄다. 그리고 그 감정 하나가 수천의 목숨을 앗아간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해부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기보다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자존심에 스친 작은 상처 하나, 혹은 상대의 무시로 느껴진 눈빛 하나가 전쟁의 불씨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 감정의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한 명이 죽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복수를 다짐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슬픔의 연쇄 속에서 독자는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일리아스』가 단지 인간의 비극성과 허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그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이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그를 찾아와 애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는 전쟁 너머의 인간, 적과 아군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같은 인간’의 얼굴을 본다. 이 장면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나 별것도 아닌 이유로 서로를 죽이고, 또 그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가?”

『일리아스』는 신들조차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전쟁의 신 아레스나 여신 아테나조차 각자의 편을 들어 싸움에 개입한다. 인간은 신들의 장난감 같고,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죽음을 애도하고,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을 가장 숭고하게 묘사한다. 신의 영역을 넘는 인간의 고통과 용서는, 비록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그 전쟁 속에서 빛나는 인간성의 조각으로 남는다.

결국 우리는 『일리아스』를 통해 ‘전쟁’보다는 ‘사람’을 보게 된다. 싸움보다는 고통을, 영웅보다는 아들의 시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바로 그 나약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삼국지』에서 수많은 전투 장면보다 관우의 의리나 유비의 울음이 오래 기억에 남듯, 『일리아스』에서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그 죽음을 둘러싼 감정과 연민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인간은 사랑하고, 슬퍼하고, 후회한다. 그것이 『일리아스』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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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의 기술 - 최소 노력으로 삶에 윤기를 더하는
이노우에 신파치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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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신파치의 『꾸준함의 기술』은 원서의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전부 할 수 있어! 이어지는 사고"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꾸준히 이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와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실용적인 가이드다. 저자는 북디자이너로서 20년 넘게 실천해 온 일상적인 루틴을 바탕으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꾸준함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큰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강한 의지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지가 약해지거나 지루함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의지나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습관을 구조화하여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매일 글을 쓰거나 춤을 추는 등의 루틴을 실천해왔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작은 행동을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압박감을 줄이고, 작은 행동을 습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는 목표를 설정할 때 작은 단위로 나누어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큰 목표를 한 번에 이루려고 하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신 작은 목표부터 시작해 그것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고, 더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중첩되고 확장되면 궁극적으로 꾸준함의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하루를 구조화하는 법'이다. 저자는 하루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낼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다. 각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자신만의 루틴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그리고 기록의 중요성을 말한다. 매일 하는 것이 꾸준함을 쉽게 하는 방법이라면, 기록은 그 꾸준함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는, 예를 들어,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겠다고 설정하는 대신,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만 책을 읽는 방식으로 습관을 만든다. 이렇게 루틴을 세우면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 또 작은 행동과 작은 행동을 세트로 묶는 방법, 약간 어려운 일을 하기 전에 간단한 일을 앞에 끼워 넣어 스위치처럼 활용하는 등의 창의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꾸준함의 기술』은 꾸준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누구나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의지와 노력을 넘어서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기계발서나 습관 형성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독자에게도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꾸준함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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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
톰 행크스 지음, 홍지로 옮김 / 리드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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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대표 배우이자 오랜 시간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서 있었던 톰 행크스가 이번에는 작가로 독자들 앞에 섰다. 『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는 그의 첫 장편소설로(2017년에 단편집을 출간한 바 있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걸작”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영화 제작의 기술적 과정을 나열하거나, 대스타의 자전적 경험담을 풀어놓는 책이 아니다. 이 소설은 영화라는 거대한 산업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결과물 뒤에 존재하는 무수한 이름 없는 노력들, 보이지 않는 땀방울과 그 안에 깃든 인간 군상의 이야기다.

소설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층적 구조를 지닌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의 한 병사 밥 폴스, 그를 기억하는 어린 조카 로비, 이후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로 성장하는 로비의 이야기, 그리고 수십 년 후 로비의 만화를 발견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는 감독 빌 존슨의 현재 이야기까지. 이들 각기 다른 시대와 삶이 하나의 영화로 응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영화’라는 형식 안에 과거와 현재, 기억과 예술, 개인의 서사와 대중문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톰 행크스가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그려내는가이다. 스타 배우나 감독만이 아니라, 조명팀, 분장사, 현장 매니저, 운전기사까지—하나의 장면이 촬영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동이 맞물려야 하는지를 이 소설은 집요하리만큼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결코 냉소적이지 않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따뜻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수고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톤을 유지한다. 실제로 톰 행크스는 영화 현장에서 오랜 시간 몸으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세계의 복잡성과 매력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야기의 플롯은 느리게 전개되며, 인물의 수가 많은 만큼 초반에는 집중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만큼 읽는 이에게 다양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채로운 창을 제공한다. 어떤 인물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바꾸고, 어떤 인물은 영화라는 이름 아래에서 상처를 회복한다. 이 소설의 진짜 감동은 그렇게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는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물리적 과정만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걸작’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누군가의 꿈과 기억, 상처와 회복, 열정과 실패가 어떻게 녹아드는지를 조용하고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영화가 그저 스크린 위의 오락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시간을 담아내는 복합적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스타 배우가 작가가 된다는 것은 때때로 대중의 호기심에만 기댄 결과물로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톰 행크스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유명인의 외도에 그치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한 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진심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창작과 예술의 세계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영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은 따뜻한 카메라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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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경제학 수업 - 기회비용부터 비트코인까지, 뉴스가 들리고 투자가 보이는 61가지 경제 지식 드디어 시리즈 5
미셸 케이건.앨프리드 밀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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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수식과 그래프, 그리고 낯선 용어들이 넘쳐나는 교과서 앞에서 많은 이들이 첫 장을 넘기지 못한다. 이론은 어렵고, 현실은 복잡하며, 도대체 이게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드디어 만나는 경제학 수업』은 그런 진입 장벽을 과감히 허문다. 이 책은 경제학의 복잡한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도, 그 핵심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경제학이 처음인 독자도, 그동안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독자도 누구나 이 책과 함께라면 ‘이해’라는 즐거운 성취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책은 처음 경제학을 배우는 사람을 위한 맞춤 안내서다. 하지만 단순한 초보자용 요약본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 앨프리드 밀과 미셸 케이건은 ‘쉽게 설명하는 것’과 ‘피상적으로 가르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핵심 개념을 생활 속 사례로 끌어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훈련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폭넓다. 수요와 공급, 한계효용, 시장 균형 같은 미시경제학의 기본부터 시작해, 독점과 과점, 게임 이론, 정보의 비대칭성 등 현대 경제학의 중요한 이슈들도 함께 다룬다. 거시경제 파트에서는 실업, 인플레이션, 금리, GDP, 통화 정책, 재정 정책 등을 설명하며, 뉴스에서 자주 접하지만 정확히는 몰랐던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준다. 예를 들어, ‘양적 완화’라는 낯선 개념도 이 책에서는 돈이 실제로 어떻게 풀리고,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일상 언어로 풀어준다.

또한 이 책은 경제학이 단지 돈과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학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원이 한정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항상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에는 반드시 기회비용이 따른다. 이 단순한 진리가 경제학의 시작점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이 기업의 전략, 국가의 정책뿐만 아니라 개인의 소비 습관, 시간 관리,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 어떤 제품의 가격은 내려가지 않을까?’, ‘왜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도 오를까?’, ‘정부가 세금을 줄이면 정말 경기가 살아날까?’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롭기까지 하다.

저자의 설명 방식도 인상 깊다. 어려운 이론을 억지로 외우게 하지 않고, 생활 밀착형 예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개념을 체화시킨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나 ‘인플레이션’ 같은 개념도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친절한 과외 선생님처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이야기하듯 풀어간다. 덕분에 독자는 경제학을 ‘배운다’기보다 ‘이해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다. 진지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친절하면서도 결코 얕지 않다. 정보는 풍부하지만, 읽는 이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복잡한 그래프나 수학 공식 없이도 경제를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책이다. 페이지마다 담긴 간결한 정리와 유용한 요약은 독자가 복습하기에도 좋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기에도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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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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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은 독서가들에게 꿈의 영역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은 한 시대를 관통했던 위대한 지식인의 통찰이 무엇인지를 오롯이 보여준다. 나 역시 그런 점에 이끌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들을 몇 권 사놓긴 했으나 아직 제대로 접해보지 못하고 있어 아쉬워하던 차에, 어쩌면 그의 사상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입문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 책, 『고독의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1892년에 태어난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예이론가, 문화비평가로, 마르크스주의와 유대 신비주의, 문학과 예술, 역사철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로 현대 비판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는 예술의 아우라(aura) 개념을 통해 전통 예술이 지닌 독특함과 권위가 대중매체의 발달로 사라지는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대중문화, 사진, 영화, 도시경험 등을 날카롭게 통찰하며 예술과 인간 경험의 변화에 주목했고, 역사를 단절과 충돌의 연속으로 보는 비판적 역사관을 제시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 중이던 그는 자신의 뜻을 더 이상 이룰 수 없다는 절망감을 이길 수 없었던 나머지, 194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그의 이름 아래 묶인 유일한 문학작품집이라고 한다. 이 책은 크게 1부 꿈과 몽상, 2부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 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서 느낀 것은 모두가 꿈 이야기 같다는 것이었다. 어떤 특정한 스토리나 사상,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 벤야민이 당시 경험했던 시대의 분위기나 사회적, 문화적 흐름에서 얻은 인상을 몇몇 압축적인 단어와 표현으로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술 작품의 크로키 기법 같은 느낌이다.

책 후반부에는 김창완 씨의 노래인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연상시키는 언어유희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문장 놀이의 원형이 발터 벤야민이었던가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도 나온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지난 장갑에 가을을 잃어버렸어’, ‘사람 하나에 세 의자가 앉아 있었어’, ‘얼른 안녕을 벗고 “모자하세요”라고 말했지’, ‘안부가 아버지 전해달라더라’ 등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발터 벤야민 사상 이해를 위한 입문서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서구 유럽의 주요 문학가, 사상가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그의 자유로운 발상과 문체, 이야기 전달 방식이 더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의 형편이 그러할 터인데, 그렇다면 이 책은 또 하나의 숙제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독의 경험을 남겼기에, 다음번에는 조금은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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