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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김욱 지음 / 서교책방 / 2024년 11월
평점 :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무게와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 말조차 너무나 많이 사용되어 상투적이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김욱 선생만큼의 연세와 연륜, 경험의 폭과 질을 감안하면 이 말은 더 이상 진부하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
인생의 고난은 보통 젊은 시절에 많이 경험하게 마련이고, 그것을 극복하며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통해 격언은 만들어진다. 그런데 저자는 일반적인 인생 경험과 교훈 생성의 프로세스가 이중으로 프로그램된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편안한 여생을 바라는 은퇴 이후의 삶이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이처럼 잘 들어맞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기에 복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문학, 글쓰기를 위한 삶이 구현된 것이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인생 후반부의 숨겨진 그 이후였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될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보통 사람들이 남은 생을 정리하고 끝을 준비하는 시기에 오히려 본인의 재능을 살려, 비록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고는 하나, 수많은 외국 원서를 번역하고, 본인이 깨달은 바를 아포리즘의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국내에 쇼펜하우어 열풍을 일으킨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뚜렷하게 깨닫게 한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이루어내는 것이 청년에서 중장년에 이르는 시기만의 특권이 아님을 저자는 보여준다. 오히려 생의 마지막 호흡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생 여정 중에서도 창조성과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기와 동력이 충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대와 평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이유, 그러면서도 인생의 의미는 홀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긴 인생 속에서 고독과 타인과의 공존의 중요성과 기쁨을 함께 품을 수 있는 지혜 같은 문장들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당연하기 때문에 곧장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진리들이 다양한 포물선을 그리며 삶을 더욱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