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미인 -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무식한 일이지만 나는 텔레비전 보는 취미가 없어서 여지껏 MBC에 김지은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 여자가 유명한 지도 몰랐고 ‘즐거운 문화 읽기’라는 괜찮은 프로그램의 존재는 알았지만 교양이 없어서 그런지 리모콘을 돌리면서 한번이라도 지나쳐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아나운서나 PD, 방송작가라는 직업군이 만드는 책은 대부분 실망한 일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저자의 만만치 않은 예술적 식견에 탄복을 했다.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은 이 책을 선전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지 이미 미술을 교양차원에서 허투루 좋아하는 수준 정도는 뛰어넘은 것이다. 암튼 이 책은 일반 감상자로서 미술을 정말 좋아하고 직접 작품도 소장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끝에 나온 꽤 괜찮은 국내 현대미술의 대중적인 안내서다.


이 안에는 현대미술의 정점에 선 스물한 명의 화가가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그 유명한 아토마우스의 이동기와 각종 스캔들로 이름이 알려진 낸시 랭,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종이인형 그림의 홍인숙 밖에는 없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사실 피카소 이후 현대미술에 대해 평론가 말고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화가의 대표작과 함께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지은씨가 여기 있으니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처럼 미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사람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더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장 중간중간 밑줄을 그어놓은 것은 자유로운 감상에 적잖히 방해가 된다.


그 사소한 사실만 빼면 직접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감상하지 않은 이상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려웠던 젊은 화가들을 한꺼번에 스물한 명이나 만나고 편하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이 어찌 친절한 지은씨가 아니리요.


사실 무심결에 지나쳐서 그렇지 현대미술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이 책은 일깨워준다. 이너넷에서 그토록 자주 보았던 ‘조는 하트’가 원피스를 입은 남자 강영민의 그림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 언젠가 우연히 본 뭉크처럼 우울한 사람들의 초상이 이태경의 그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연필지우개 지꺼기로 그림을 그린 황혜선을 좋아하게 되었고, 도발적인 낸시 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 미친 세상에 홀연히 그림을 그리는 여인 이유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와, 함진이다’ 라고 외치며 함진 팬클럽에 들고 싶은 것은 물론이요, 하늘 높이 배성미가 만든 꿈의 간판을 달아놓고 싶었다. 그리고 권소원의 그림을 통해 ‘우리 여자들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비극적이어서 더 아름다운 김정욱의 초상과 고통스러워서 더 숭고한 이태경의 초상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 안에는 고통이 있어요. 'schmerzen' 이요. 슈메르첸. 고통은 독일어로 발음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느껴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인더스트리얼 뮤지션 나인 인치 네일스에 대해 화가 이누리가 말하는 부분을 바꿔서 말해본다면 나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림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진실한 예술적 아름다움이요.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림으로 보여질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나는 이 책에서 그 미인들을 만나고 왔어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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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8-0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서늘한 미인>이 누구죠? 설마 저자는 아닐테고... 작품이름인가요?

히나 2005-08-1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강영민이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의 제목이래요.. ^^;

LAYLA 2005-08-0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의 정점에 진정 낸시 랭이 있단 말입니까??? 아 정말 인정하기 힘들어요. 길거리 스트립쇼같은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스트립쇼란 표현이 맞는지...)

히나 2005-08-0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정점이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네요 저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어떤 한 점을 말하려고 했어요. 위의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도발적인 낸시 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게 중요한데.. ^^

저도 스캔들 일으키기 딱 좋은 퍼포먼스나 하는 행위예술가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트립쇼(라는 말 말고 뭐라고 해야 되죠?) 말고도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쳤더라구요. 그리고 그 행위는 뭐랄까, 마돈나 언니처럼 여성의 성이 권력을 쟁취하는 한 방식처럼 느껴졌어요. 보면서 통쾌했어요. 왜 그럴까요..

그리고 '터부 요기니' 시리즈라는 일련의 미술작업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누구도 할 수 없는 작업으로 그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난 평가하고 싶어요. 모르죠 전 미술엔 문외한이니까요.

여기 www.nancylang.com 이라는 개인홈페이지로 들어가 보세요. 안 들어가봐서 모르겠지만 스캔들 메이커 말고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미인은 미워하기 힘들어요 ^^;

LAYLA 2005-08-0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홈페이지를 보니 저도 painting 작품들은 처음 보는거라 낸시랭이 새롭게 보이긴하네요. 뱀파이어 흉내(?)내는거라든지 도심속에서 비키니만 걸치고 돌아다니기 등등만이 전부인줄 알았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데 그걸 왜 예술로 봐야 하는지 전 이해가 안갔거든요. 자기만의 놀이일뿐인데 왜 예술을 갖다붙이고 그래? 하는 맘이요. 그녀 작품에 대한 평가보단 그녀의 애교술과 과감한 노출등에 초점을 맞춘 기사만 접한 탓이겠죠....(저도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구요)아직도 책을 안읽어봐서 낸시랭에 대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snowdrop님 말씀뜻은 잘 알겠어요 ^^

하루(春) 2005-08-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살까 말까하고 있답니다. ^^; 이 리뷰를 보니까 더욱 그 갈등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히나 2005-08-09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지르세요 흐흐흐..

marine 2005-08-2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 님, 저도 낸시 랭 부분에서는 솔직히 동의하기 힘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예술의 지평을 넓히다 보면 이거고 저거고 행위자가 예술이라고 우기면 다 예술 아니냐, 이런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하긴 뒤샹이 변기 갖다 놓고 샘이라고 했을 때, 당시 사람들도 어처구니가 없었겠죠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그렸을 때도 왠 외설인가 했겠죠 대낮에 풀밭에서 여자가 벌거벗고 피크닉을 즐기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포르노였겠죠 결국 진짜와 가짜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가 평가해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현대 예술은 아직은 평가를 유보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고...
어쨌든 이 책 내공이 상당합니다 저자 약력을 보니까 대학원 전공을 이 쪽으로 한 것 같더라구요 정말 쉽고 재밌고 또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는 것 같아요

히나 2005-08-23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을 가지기는 참 어렵겠죠 저도 낸시 랭에 대한 반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사실 저조차 마음 편히 즐기지는 못 하니까요..
 
만화 호텔 캘리포니아
김진태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박상우의 '호텔 캘리포니아'와 김미진의 '우리는 호텔 캘리포니아에 간다' 에 이어 우리는 또 하나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가지게 되었다. 바로 김진태의 만화 '호텔 캘리포니아' !!! 단 배경은 무시무시한 교도소란 걸 유념할 것. 그러나 호텔 캘리포니아란 별명답게 콜린 교도소는 '정성껏 보살피며 따뜻하게 교정한다' 는 모토 아래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아~~ 정녕 따라 들어가고 싶지 않은가~~

오늘 하릴없이 서재질을 하다 우연히 집사님이란 분이 올린 리뷰를 읽고 맛보기로 찔끔찔끔 보다 궁금증을 못 참고 씨티문고로 달려가서 가지고 왔다. 오래전 순정만화 월간지에 연재된 '체리체리 고고' 를 시작으로 김진태를 꽤 좋아라 하고는 있지만, 이 깜찍한 감옥 만화에 이끌린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만화 전편에 흐르고 있는 음악 때문이다.

당시 그 잡지에 실린 김진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기가 죽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시디를 소장하고 있는 음악 애호가시더라. 그리고 그 수많은 장르 중에서 독특하게도 레게와 글램락 매니아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만해도 그런 이상한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암튼 12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만화는 각각 주옥같은 컨트리 송과 올드팝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1장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 부터 2장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 Take Me Home Country Road 그리고 6장 테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등등.. 누구나 알고 있는 명곡부터 조금 생소한 노래까지 음악 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충분히 즐겁게 해준다.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존 덴버의 노래를 흘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To The Place.. I' Will Be Long..

자, 오래 기다렸다. 이제 주인공을 소개하겠다. 그 이름도 의미심장한 달라스 웨스트코스트!!! 손가락으로 누르면 3초 안에 뇌가 파열되는 2000년 전통의 북두관자 찌르기 전승자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다 엉뚱한 사람을 실수로 죽이고 감옥 '호텔 캘리포니아'에 들어온다. 그러나 만화가 시작되면 아버지의 원수 어쩌구 저쩌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조인공으로 전락한다. 이 인간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내가 아주 이뻐라하는 콜린 교도소 소장 알버트 하우스만. 감옥의 사내방송을 직접 담당하는데 백인의 상징 컨트리 음악만을 줄기차게 틀어댄다. 

그러다 달라스 웨스트코스트가 소장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이들의 관계는????

그리고 달라스 웨스트코스트의 룸메이트 스티브. 얼굴을 보면서 내내 스티브 부세미를 닮았다 생각했는데 역시 이름하여 스티브 수세미다. 아주 성질이 그지같은 인간이다.

그리고 감옥 영화를 보면 나오는 여러 유형의 인물등이 등장하는데 홉킨스 박사 역시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뒤마 소설에 나오는 '철가면'이 연상되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 흑흑..

그리고 역시 감옥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애완동물 애호가. 이 밖에도 도서관 마니아, 사이비 종교 지도자 등 양념같은 인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데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는..

바로 투팍, 나스, DMX와 같은 레벨로 비트박스를 하며 흑인의 프라이드를 지키고자 고군부투하는 두 명의 힙합퍼다. 힙합에 죽고 힙합에 사는 이 두 인간의 정치적인 구호가 어찌나 웃긴지.. 뭐 이런 식이다. '라스파타리어니즘 만세! 아파르트헤이트 타도!' 역시 단순지식과격하다는 이유로 내가 이뻐라 하는 인간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캐릭터가 하나 있다면 콜린 교도소 부소장이신 제이슨 도너번 박사로, 교도소 내의 보건과 죄수들의 심리 상담은 물론, 죄수들을 신약개발 연구를 위한 실험대상으로 이용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나는 너무 똑똑해서 인간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를 아주 좋아라 하는데 (실생활에서는 재수없다고 생각한다) 이 만화에선 너무 쪼금 나와서 섭섭하다. 사진도 흐릿하게 나왔구나 잇힝~~

그리고 마지막 뽀너스!!! 만화를 다 본 다음 알버트 하우스만 소장이 직접 선곡한 '컨트리 러브 송 컴필레이션 선곡표'를 참고하여 주옥같은 컨트리 명곡들을 들으며 만화가 남긴 애틋한(?) 여운을 만끽해보자. 그런데 몰라서 묻는 건데 만화는 포토리뷰를 올리면 안 되는 건가요?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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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0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태, 저도 좋아하는 만화가!
추천추천!^^
(일산에 가니 호텔 캘리포니아가 있더구만요.^^)

히나 2005-08-0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땡큐~~ 저도 거기 함 가보고 싶네요 이년 전에 일산 살았는데 나는 왜 그걸 몰랐지? ^^;
 
핑거포스트, 1663 1 - 네 개의 우상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모 추리소설 클럽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TV 책을 말하다' 방청을 하러가서 이언 피어스의 '핑거 포스트 1663'과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을 얻어왔다. 지난 1993년 개역판 12쇄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은 이래 대부분의 역사추리 소설들은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게 사실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쪽 장르는 이제 좀 시시한 감이 없지 않다.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역사 미스터리라는 찬사는 다시 말하면 '장미의 이름'을 따라갈 만한 역사 미스터리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그 자체만으로는 아주 괜찮은 역사추리소설이다. 때는 17세기, 크롬웰의 유혈통치가 끝나고 찰스 2세가 복귀한 영국을 배경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4명의 인물이 나와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는다. 그리하여 2권에 이르면 범인찾기는 온데간데 없고 다음과 같은 질문만이 남는다. 과연 누가 거짓을 말하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그러나 그 팽팽한 극적 긴장감이 마지막 인물인 앤소니 우드까지 오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유감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 다 콜라의 '영국인 놀려대기'는 사건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재미있고, 아버지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청년 잭 프레스콧의 동분서주도 젊은이다운 집착과 광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세 번째 인물인 존 윌리스의 증언에 이르러선 흥미가 상당히 떨어져 그 수(手)가 훤히 보이는 작가와의 두뇌게임을 포기하고 마지막 장을 열어 범인을 확인했을 정도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는 범인이 안 나온다!)

그러니 네 명의 인물 중 가장 개성이 모자란(비겁하기까지 한) 앤소니 우드의 마지막 증언은 사족에 가까울 수 밖에. 말하자면 앞에 리쥬를 너무 많이 깔았다고 할까. 물론 나름대로 지금까지의 증언을 뒤엎고 이야기를 전복시키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 어이없는 죽음의 전모라니! 마음 단단히 먹고 태풍의 눈을 기대했는데 소나기만 한차례 지나갔다고 해야하나. 마지막 부분에 밝혀지는 사랑, 살인, 예언, 종교, 부활까지, 일방적으로 퍼부어 대는 정보의 홍수가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는 걸 밝혀둔다.

오히려 내가 주목했던 건 정보를 가진 자 vs 정보를 가지지 못한 자로, 고급정보를 가진 자와 쓸데없는 정보를 가진 자의 비교였다. 알다시피 게임에서는 누가 좋은 패를 가지고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직통전화번호를 가진 자와 중간에 안내원을 거쳐야 하는 자는 미안하지만 출발부터 다른 것이다.

네 명의 목소리가 서로 다른 진실을 말하는 이 소설에서 고급정보(좋은패)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은 크롬웰의 오른팔로 찰스 2세가 복귀한 후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던 존 설로라는 은퇴한 거물이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은둔자의 삶을 살면서도 그 모든 상황을 한순간에 꿰뚫고 눈치채지 못 하게 조종하고 마지막엔 결론까지 내려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에 정보를 가지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로 잭 프레스콧이라는 젊은이가 있다. 그는 왜 아버지가 반역죄로 망명지에서 외롭게 죽어 극빈자의 무덤에 묻혔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 한다. 청년다운 혈기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며 정보를 가진 자를 하나하나 찾아다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잘못된 진실 뿐이다.

그는 계속해서 안 좋은 패만 뽑았고 핵심정보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한 채 결국 주저앉고 만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자기가 믿고있는 진실이 권력자에 의해 조작된 진실인 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최후는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통절하기 짝이 없다. 모든 진실을 자신의 수하에 두고 있던 찰스 2세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의 제단 위에서 원하던대로 행복한 내세의 안식을 얻은 것과 달리 말이다.

일반 대중은 TV나 신문을 볼 때 자신이 진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진실은 PD나 기자에 의해 여과된 진실에 불과하다. 매스컴에서 연일 계속 'MBC 엑스파일'을 보도하고 있지만 우리는 진실 그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다. 발표당일 테잎과 법전, 변호사를 옆에 두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쓸 부분과 쓰지 않을 부분을 골라내느라 골머리를 썩은 보도국 국장도 가장 고급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최고의 정보가 어디에 있겠는가!

핵심정보에 가까이 접근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힘이 얼마나 막강한 지 알 것이다. 권력이 부패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 고급정보를 혼자만 간직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힘이다.

그건 추리소설도 마찬가지로 이안 피어스의 역사추리소설 '핑거포스트 1663'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지도 모르는 편지의 암호를 둘러싸고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가지려고 하는 자와 놓치지 않으려는 자의 파워게임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캐릭터 구축과 극적 긴장감 유지에서는 조금 아쉬웠다는 걸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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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3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계속 신문에 광고나오던데... 관심이 가더라구요.

히나 2005-07-3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재미있어요 끝으로 갈 수록 점점 더 지루한 게 흠이지만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흠,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이란 말이지, 그래 말이야 다 옳은 소리지 그렇고 말고. 하지만 이왕이면 대중에게도 인기 있는 존재가 되는 게 좋지 않겠어? 제 아무리 지성미로 커버한다고 해도 소크라테스처럼 못 생긴 남자라는 소리를 듣고싶지는 않겠지? 이렇게 나부터 21세기 우리 인류에게 최대 사회악이라는 '루키즘'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으니,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 그 첫 장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부터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미안하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대머리 씨.

그런데 잠깐,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읽던 어느 한 순간, 몽테뉴가 말하는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외람된 말이지만 분명 나와 '같은 영혼을 가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한 외로운 철학자의 위안에 나는 그만 속수무책 빠져들고 말았다. 그건 인기가 없어 몇 년 째 연애도 못 한다고, 조만간 봉쇄 수녀원에나 들어가는 수 밖에 없겠다고 투덜거리는 나를 강도 4의 지진처럼 흔들어 놓았다.

이미 다른 분들이 친절한 리뷰를 잔뜩 올려놨으니 여기서는 내 맘대로 몽테뉴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될까. 우리가 '수상록'의 저자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는 철학자 몽테뉴. 그에게는 에티엔 드 라 보에티라는 친구가 있다.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불과 4년 남짓. 그러나 그 관계는 평생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단다. 나는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고 심지어 질투까지 났다.

'만약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았더라면, 예컨대 몽테뉴의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많은 것을 숨길 필요가 없었더라면 우정이 그토록 소중하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몽테뉴가 라 보에티를 향해 품었던 애착의 깊이를 뒤집어본다면, 그가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상대방의 의심이나 불쾌감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가공한 이미지를 보여주느라 얼마나 강박관념에 시달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몇 년 뒤, 몽테뉴는 라 보에티에 대한 자신의 애착의 근원을 분석했다. '그만이 나의 진정한 초상을 들여다볼 특권을 누렸다.'  ---- 책 중에서

아, 나는 '진정한 초상을 들여다볼 특권'을 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 지 너무도 잘 알 거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라 보에티 같은 친구를, 혹은 연인을 만나기를 바래왔는 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그 시도는 실패했다. 친구가 없을 때는 외로웠고 친구가 생겼을 때는 정작 내가 바라던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다음 사랑이고 우정이고 뭐고 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진정한 인간관계라는 게 그토록 어려운 거라면 굳이 힘들게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냥 암 생각 없이 즐겁게 살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아닌 상냥한 타인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이 넘의 한국사회에는 '부적절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의든 타의든 겉돌 바에는 인구밀도가 희박한 나라에 가서 외롭게 죽고싶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과연 우정이란 존재하는 걸까? 만일 존재한다면 어떤 질량과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을까? 사춘기 소녀처럼 유치한 질문이지만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면 우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인간관계를 헌신짝 차버리듯이 내버리면서 한편으로는 사랑(이나 우정)없이는 못 산다고 돌려내라고 징징대는 걸까?

몽테뉴에 관한 장을 읽으면서 내내 질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만 그 부적절한 질문은 알랭 드 보통 선에서 적당하게 끝을 맺는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남자가 슬쩍 건드려 논 '철학의 위안'은 퍼도퍼도 샘솟는 바다가 아니라 조금만 퍼내면 바닥이 훤히 보이는 외딴 우물이다. 어쩌면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바다는 위안이 아니라 오히려 근심을 안겨주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리고 목 마른 자에게 우물만큼 반가운 존재도 어디 있는가!

말하자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몽테뉴에게 바라는 위안은 그가 가진 사상의 전부도 핵심도 아니라는 얘기다. 이 책은 부엌의 상비약처럼 얄미울 만큼 딱 그만큼의 위안만을 우리에게 준다.

그러나 태생부터 자본주의적 삶과 가부장적 사랑에 부적절한 존재로서 감히 바라건대, 몽테뉴와 라 보에티의 우정을 본받아 이 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한 초상을 들여다 볼 특권'을 누려보고 죽고 싶다. 그렇다면 그 추억만으로도 우리는 외로운 밤 불씨를 지피고 따뜻한 온기를 홀로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만일 철학적인 모든 것, 예를 들어 감동적인 책이나 오래 사귄 친구,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 같은 '생은 저 너머에 있다'고 믿는 고상한 위안이라면 말이다.

언젠가 광고에서 크리넥스로도 닦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철학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슬픔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지든 손등으로든 적어도 흐르는 눈물 정도는 닦을 수 있지 않은가.

현실이라는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는 이상 철학적인 위안은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젋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완고한 나를 미약하나마 흔들어 놓고 갔다. 더 이상 이 땅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도 않고 나는 강한 자도 아니며 위안을 바라는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선사하는 달콤한 위안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이 소개하는 몽테뉴는 나에게 그런 위안을 안겨다 주고 갔다. 그 처방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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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3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정도의 처방에 감사한다니 스노드롭님은 겸손하시군요.
전 이런 심정적인 리뷰가 재밌고 좋아요.^^

어룸 2005-07-3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너무 잘 쓰셨어요!!

히나 2005-07-3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심정적으로 의지할 이를 찾는 불안한 영혼이라그래요 어흑.. 부디 생각의 나무측에서 이 겸손한 리뷰를 읽고 선물 하나쯤 보내왔음 좋겠네요. ^^;

투풀님, 고마워요 책하고는 한참 거리가 있는 리뷰긴 하지만요. ^^;

마늘빵 2005-07-30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보셨군요. 보통씨 인기도 많아라.

인터라겐 2005-07-3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스노우드롭님..부디 생각의 나무측에서 이 겸손한 리뷰를 읽고 선물 하나쯤 보내왔음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이거 꼭 봐야 하는데... 그쵸?

히나 2005-07-3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티는 안 내고 있지만 저도 보통씨의 팬이랍니다. 양가의 감정이 있는 팬이지만요..

인터라겐님, 그쵸? 저도 로드무비님처럼..... ㅎㅎ

깍두기 2005-07-3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리뷰 잘 안 읽는데 읽고 말았어요^^
너무 멋지게 잘 쓰셨고 저도 비슷한 생각을 종종 하는터라 반가운 마음입니다^^

히나 2005-07-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고마워요 전 원래 내용보다는 길이로 승부하거든요 헤헤.. ^^

poptrash 2005-07-31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글이네요. 멋져요.

히나 2005-07-3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고마워요 ^^

marine 2005-08-0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제목이 딱 마음에 와 닿아요 이 책, 구판으로 읽었는데 원서로 살까 고민 중이랍니다 정말 상비약으로 쓰면 딱일 책이죠 ^^

히나 2005-08-0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알랭 드 보통의 언어로.. 원서로 볼 수 있다니 부러워요.. ^^b
 
일상 예찬 -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다시 보기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이은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안마당에서 담배피우는 남자와 술 마시는 여자
피데르 드 호흐, 1960

구조주의 철학자 츠베탕 토도로프가 쓴 17세기 네델란드 장르화에 관한 책으로, 가로세로 210 판형이 마치 액자처럼 수록된 그림들을 빛내준다.

17세기 어느 한순간 네델란드에서 갑자기 놀랄만한 그림들이 나타난다. 그 전까지의 종교화나 역사화와 달리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 인생의 교훈을 담은 그림들이 갑자기 그려지기 시작한 것. 훗날 사람들은 16세기 르네상스 미술, 19세기 프랑스 미술과 더불어 17세기 네델란드 미술을 미술사에서 세계 3대 사건으로 꼽게 된다.

유럽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역을 장려한 네델란드. 전세계를 돌아다니다보니 똘레랑스(관용)정신이 널리 퍼져 공식적으로 청교도 국가(칼뱅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유태교, 카톨릭 등 다양한 종교가 인정되었다.

무역으로 재화가 널리 퍼져 시민들은 부유해지고 수준이 높아졌다.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도 어느 나라보다 당당했다. 그리고 화가들은 시민들의 삶과 거리와 집과 술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내이자 어머니이고 딸인 여성의 미덕을 화폭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상적인 모습들 속에 도덕과 교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17세기 네델란드 장르화의 시작으로 정확히는 프란스 할스와 오르테르벨트 사이에 그려진 그림을 말한다.

1582년 프란스 할스가 네델란드에서 본격적으로 장르화를 열었고 유디트 레이스테르와 몰레나르 등의 제자를 두었다. 유디트 레이스테르는 동료 화가 할스가 결혼하기 전까지 여성의 시선으로 생기 넘치는 아이들과 여성들을 그렸다.

그리고 장르화의 최고대가로 얀 스텐과 가브리엘 메추가 있고, 술집과 매춘부, 부덕한 남성 등을 즐겨 그렸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지만 가브리엘 메추에게는 얀 스텐이 갖춘 우스꽝스러움과 코믹한 특성, 즉 천재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피데르 드 호흐와 헤라르트 테르보르흐라는 두 거장이 있다.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와 딸과 미덕을 즐겨 그렸다. 피데르 드 호흐의 그림 속 인물들은 그 특유의 표정으로 장르화에 놀랄만한 엄숙함과 종교적인 신비함까지 부여한다. 헤라르트 테르보르흐는 비단옷을 입은 부유한 여성을 즐겨 그렸다.

그런데, 왜 네델란드의 두 거장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는 나오지 않는걸까. 두 사람은 17세기 네델란드 장르화에 속한 그림들을 그렸지만 그 천재성으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통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얀 베르메르는 그림 속에 이야기를 담지 않고 단지 그림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오히려 200년 후 19세기 화가들과 닮아있다.

17세기 네델란드 그림들 속에 개, 고양이, 새, 빈 새장, 굴, 술, 첼로 등이 나오면 99% 성적인 메시지를 담고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도덕적인 설교를 하면서도 일상적인 부도덕함을 감싸않는다고 할까. 대부분 남성은 부덕한 존재로 여성은 미덕의 존재로 그려져있다. 여성은 여전히 집안에 속해있지만 그 어디에서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에 받고 환하게 빛나는 존재다. 더 특별한 건 아이들이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눈빛을 하고 엄마 옆에 얌전하게 서 있는 여자아이들.

17세기 네델란드 화가들은 단순히 직업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어느 한순간 축복받은 시대가 그러하듯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빛나는 그림을 쏟아내다 후대로 이어지지 않은 채 쥬라기시대 공룡처럼 '일상예찬'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림에 관해서는 리뷰를 할만한 수준이 안 되므로 츠베탕 토도로프의 '일상예찬'을 요약정리해봤다. 어젯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열었는데,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명화들 때문에 마지막까지 다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앞 표지 그림 피데르 드 호흐의 '어머니와 아이들'이 너무 아름답게 다가왔다.

정말이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나의 고민들이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명작들 앞에선 한낱 부질없는 일로 여겨졌다. 우주의 신비나 진리, 인생의 비의(秘意)를 깨닫는 축복받은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건 시시한 연애나 부질없는 야망에 비할 바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 이 리뷰 역시 작년에 써둔 것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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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7-0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즐겁게 읽은 책이에요. ^^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어룸 2005-07-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 추천~!!

플레져 2005-07-0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세기에 여성으로 태어났었더라면 괜찮았겠다...싶은 생각이 드네요 ^^;;;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담아있는 책인데... 더 간절해지는군요. 추천해요!

히나 2005-07-04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저도 아주 좋아하는 책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네델란드 회화전을 갔던 날이 생각나는군요..
투풀님, 추천 고맙습니다 ^^
플레저님, 17세기에 여성으로 태어났었더라면.. (화가의 모델이 되지 않는 이상) 집안에 쳐박혀 일생을 보냈을 거예요

로드무비 2005-07-0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오래도록 처박혀 있는 책인데 당장 사보고 싶네요.
추천하고 가요.^^

marine 2005-07-0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그림이 아주 시원시원 하게 실려서 참 마음에 들었어요 전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소장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에단 호크 사진, 넘 멋진 거 아니예요??^^ 비포선라이즈의 치기어린 젊은 에단 호크도 멋지지만, 비포선셋의 30대의 지적인 에단 호크도 넘넘 멋진 것 같아요 !!

히나 2005-07-0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며칠 안 보이더니 다시 돌아오셨네요 반가워요~

나나님, 에단 호크는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이자 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