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 현실문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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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김상경은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 한마디를 우리에게 던지고 간 바 있다. 만일 그 말이 이 책의 저자이자 사진작가인 최민식 입에서 나온다면 이렇게 달라지지 않을까. 바로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 그런 자신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일흔일곱의 작가는 지난 1957년부터 인간을,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만을 찍으면서 그 어떤 연출 없이 스냅숏으로 일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사진은 ‘리얼하다, 메시지가 있다는 평을 듣지만 기록성과 예술성이 어떻게 부합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거나 원근감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충고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찍는가’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따위 서류는 하나의 종이조각에 불과하다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한 주인공도 기억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정성시’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의 현실은 우리의 믿음과 신념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배반한다. 믿을 수 없지만 (서류 뿐만 아니라) 사진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다. 여기 인터넷만 봐도 연출된 상황에 따라 각종 설정모드를 거친 사진들이 ‘실제보다 더 예쁘게’ 뽀샵 처리를 마친 다음 활개를 치고 다니지 않는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듯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사진이 진짜 사진이 아닐 수 있다. 필카도 아니고 디카에 입문한 지 겨우 2년 남짓, 음식점에서 각종 요리나 찍어대는 내가 사진에 대해 뭘 알겠는가. 하지만 나도 가짜인 지 진짜인 지는 안다. 최민식의 사진은 ‘날 것 그대로’ 그야말로 드문 진짜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진짜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는가? 물론 그 비결에 대해 형사 콜롬보처럼 시시콜콜 알려주는 책은 무진장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본 작가, 그들과 방법론부터 달리 한다. 바로 무엇을 찍어야 할 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서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비싼 카메라 장비도 어려운 기술도 필요 없다. 진짜는 찍기도 쉬운 것이다. 솔직히 말해 가난한 사람들은 카메라만 들이밀면 바로 그림이 나온다. 꾸미고 뭐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패션화보를 생각해보자. 그럴듯한 배경을 세우고 그럴듯한 옷을 입힌 다음 그럴듯한 포즈를 만들어줘야 한다. 아무리 세계최고의 슈퍼모델이 나온다 한들 상황 연출은 필수고 그래야 사진이 나온다. 왜냐고? 그들은 카메라에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잘난 카메라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첨할 이유도 없다. 굳이 우리처럼 진실을 알기 위해 퓰리처 수상 사진전을 찾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들의 삶 자체가 진실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뷰 파인더이기 때문이다.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때서야 놀라고 감탄하는 우리와 달리 이미 일상 자체가 전쟁이고 하루하루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싸움밭이다. 그러니 사진빨 잘 받겠다는 이유로 콧잔등에 콤팩트나 두드리고 앉아있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사진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인간과 인간이 벌이는 순간의 싸움이다. 싸움은 우선 상대를 잘 고르는 게 중요하고 반칙 없이 페어플레이를 펼쳐야 ‘지대로’ 한 팥 붙을 맛도 생겨난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부산 자갈치 시장의 아지매들부터 논주름처럼 이마주름이 자글자글한 우리네 어머니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버리지 않는 어린 아이들까지, 그들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부유한 우리 시대가 한번 맞붙어 싸워볼 만한 가난한 상대들이 아닌가.


이 책을 통해 작가 최민식은 카메라를 들고 한번 정정당당 승부를 펼쳐보자고 말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그들의 눈을 바라보자. 싸움의 시작은 바로 눈싸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예술가가 그 시대의 무엇을 섬겼고 무엇과 투쟁하였고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곧 힘의 예술이어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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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5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나 2005-08-2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발견 감사합니다 덕분에 고쳤습니다. 회사에서 몰래 쓰면 이런 실수가 호호호 망신빨이 뻗치는군.. 무슨 일인 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진 연.. 계속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피터래빗 저격사건 랜덤 시선 5
유형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생달 언니, 며칠 전 언니의 처녀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잉크냄새도 마르지 않은 ‘피터래빗 저격사건’을 사서 우리가 사랑하는 ‘건전한 부르주아의 도시’로 데려 왔어요. 요즘 들어 하늘은 상한 우유처럼 흐리고 마음은 온통 소금밭을 헤매고 다니느라 몹쓸 열병에라도 걸린 아이처럼 들떠있어요.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언니의 싯구처럼 이 편지를 ‘흘러가는 빗물 편에’ 띄우고 싶지만 날씨는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안타깝지만 우리네 생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예요.


저 높은 하늘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안테나를 세우고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추며 가슴에 시 한 웅큼이라도 더 품으려고 노력했던 때를 기억합니다. 세상의 모든 시인들을 질투하던 어리석은 날들이었죠. 그러나 나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쓴다는 게 어떤 건지 끝끝내 알지 못한 채 서투른 문학소녀시절을 졸업했어요. 그리고 시집하고도 오랫동안 안녕.. 안녕..


그러다 이제는 되려 시인들을 불쌍하게(?) 여길 때 쯤 생달언니를 만났어요. 많이도 보고 싶었지만 몇 번 안 되는 우리의 만남은 늘 어색했죠. 아마도 나는 마음 한켠에서 아직도(!) 열심히 시를 쓰는 언니를 질투했는지도 몰라요. 그래요. 얼마나 질투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시집을 펼치자마자 내가 모르는 낯선 얼굴의 시인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어요. ‘캔디바를 물고 있는 폭풍 속의 하록선장’과 ‘고전적인 펑키 스타일의 겨울’을 부르는 어여쁜 여인이 내가 아는 생달언니가 맞나요? 그동안 언니의 시들을 블로그를 통해 종종 훔쳐봐 왔지만 이렇게 예쁜 모습을 하고 있을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다알리아 꽃을 머리에 인 소녀들과 살구나무 아래 시들어가는 얼굴들, 17세기 스페인 항구를 지나 눈부신 범선의 돛대에 펄럭이는 바람, 오래전 헤어진 애인의 푸른 안구와 감나무 잎으로 손몫을 긋고 싶은 가을 햇살..


생달언니, 예전의 나라면 죽음과 섹스와 길을 잃은 방황에 매혹되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언니의 ‘말랑하고 따뜻한 느낌, 달콤하고 옅은 바나나 향이’ 더 마음에 들어요. 촌스럽지만 ‘분홍 과꽃의 씨방’에 사람의 거처를 마련해 놓을 줄 아는 당신처럼 착한 사람이 말예요.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 난 아픈 게 아니고 생이 조금 모자랄 뿐’이라는 말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연히 유통기한이 지난 파일을 지우다 지난 달 쓰다 만 이 러브레터를 발견하고 부끄럽지만 더 늦기 전에 띄웁니다. 지금은 언니 말처럼 ‘감각으로 사유하는 종(種)들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예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 글은 리뷰가 아닌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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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8-1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으로 사유하는 種의 인간, 사람의 거처를 마련해놓은 씨방에 앉아 엄지공주가 된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갑니다.

hanicare 2005-08-1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으로 사유하다보면 생이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 되는 걸까요. 감각의 끝은 공허나 파멸이 아닐까 종종 생각해요. 빛나던 감성의 작가 김 승옥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풍문처럼요.아 그리고 왜 자주 끄적거리지 않는가하면 독자가 언제가 즐거운 일 아닌가요?후훗, 하고 싶은 이야기도 별로 없구요.

히나 2005-08-1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엄지공주가 되면 우리는 좀더 낮은 곳에서 작은 것들을 어여삐 바라볼 수 있을까요.. 소나기가 내리다 그쳤네요 그래서 후덥지근해요.. 지금 마시고 있는 녹차 프라푸치노가 너무 달아서 얼굴을 찡그리는 중.. ^^


hanicare님, 저는 김승옥이 절필한 시대에 사춘기를 보내서 빛나는 그 감수성을 늦게 접한 게 아쉬워요. 감각의 끝까지 가다 보면 종종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죠. 극과 극은 통하는 거 같습니다. 저도 조만간 극에 달하면 하록선장처럼 이 생의 키를 확 돌릴지도 몰라요.. 흐흐..
 
여행자의 로망 백서
박사.이명석 지음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생은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낭만주의자로 여행에 관한 작은 로망이 있다. 평소 시간은 남아돌지만 돈이 없는 관계로 낯선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을 때 종종 가짜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베텔스만 북클럽에서 받은 빨간색 여행용 가방에 옷과 책과 엠피삼 등을 챙기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다음 인터넷으로 기차 시간표를 알아본 후 신촌역을 출발해 백마역까지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임진각역까지 가거나 아니면 대부분 백마역에 내려 커피숍에서 뭐 좀 마셔준 다음 마을버스를 타고 언니네 아파트로 간다. 별 거 없다고? 그럼 이건 어떤가?


알라딘 사람들이 질색하는 배수아 소설 ‘동물원 킨트’를 보면 외국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이방인 놀이’란 게 있다. 작가의 말을 옮겨보자. 이것은 반드시 혼자서 해야 하며 놀이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모국어를 외국어처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 놀이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말해두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일단 이방인이 되면, 자신에게 피부처럼 익숙했던 사물이나 현상들이 좀 다른 각도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리멸렬한 삶에서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를 떠나 구름 너머 낯선 세계로 공간이동하는 것, 그것이 붙박이 생활인이 꿈꾸는 여행에 대한 로망이다. 사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장소나 계절, 음식, 테마에 따라 객관적인 정보와 여행자의 감상을 종합해서 한데 묶는데 이 책은 여행을 꿈꾸는 사람의 로망에만 집중 올인한다. 그래서 (외국여행을 몇 번 못 떠난 나와 달리) 이 이야기들에 코웃음을 치는 경험 많은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로 유명한 이명석과 박사 두 사람이 말하는 ‘여행자의 로망백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여기서는 취향별로 여섯 가지 코스로 갈아탈 수 있는데, 엔터테인 라인, 서바이벌 라인, 센티멘털 라인, 배가본드 라인, 메모리얼 라인, 판타지아 라인이 있다.


예를 들어 폭풍의 로망이 있다. 산토리니 섬에서 폭풍으로 꼼짝달싹을 못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폭풍으로 섬에 갇히다니 로맨틱하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 그리고 직항의 로망 대신 환승 비행장의 로망이 있다. 탑승 안내 모니터에 점멸하는 수많은 도시와 나라의 이름을 맞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연으로 소설을 쓰는 것.

 

위와 같이 1부터 100까지의 로망 중에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로망 Best 10을 꼽으라면 렌탈 바이크의 로망, 프티 부티크 호텔의 로망, 나침반 혹은 GPS의 로망, 도시락의 로망, 폭풍의 로망, 시간보존 상자의 로망, 귀국보고회의 로망, 변장여행객의 로망, 사설 숙소 스와핑의 로망, 미스터리 호텔의 로망이 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당장이라도 여권에 이국의 스템프를 찍고 그 로망을 손에 넣고 싶어 근질근질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던져보자. 당신이 이 여행에 대해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 만일 그 어떤 골치 아픈 사유도 섞이지 않고 순도 100%의 안전한 환상만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을 고르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 꿈만 가지고 살 수 없듯이 로망만 가지고도 살 수 없는 법. 당신이 환상이 아닌 현실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 여행 가이드는 피하는 게 좋다. 그건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체험으로 바뀌기 전까지 ‘여행자의 로망백서’는 단지 낭만적인 여행의 기술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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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8-1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재밌는 리뷰네요. 추천 한방!

로드무비 2005-08-16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석이 사탕발림의 그 이명석인가요?
저도 아줌마의 여행 로망 베스트 10을 뽑아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네요.
모기한테 물린 건가?^^;;;
저도 추천 한 방... 대박 예감 리뷰!

히나 2005-08-1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책도 아주 재미있어요.. 그러니 땡스투 한방 하셔도 무방합니다! ^^

로드무비님, 사탕발림의 이명석 맞아요. 그리고 '아줌마의 여행 로망 베스트 10' 아주 색다를 거 같아요 뽑아주셔도 무방합니다!

hanicare 2005-08-16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이 오를대로 오른 리뷰군요.눈길만 줘도 독특한 글맛이 재미있게 톡톡 벌어집니다.

히나 2005-08-1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님, 고마워요 ^^

비로그인 2005-08-1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수아 소설을 사랑해주세요..;;
여튼, 리뷰 재밌게 봤어요^^

히나 2005-08-16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알라딘에서 배수아는 인기가 없더라구요. 저도 '붉은손클럽' 때 싸인까지 받은 팬의 한 사람인데.. 호불호가 분명한 작가죠. 암튼 언젠가 시간이 되면 알라딘 초기에 쓴 배수아 리뷰들을 다시 고치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

인터라겐 2005-08-16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사려고 하는데 카드가 도착을 안해요.. 흑 그래네선 3만원이상만 사면 2천원할인 된다고 하는데 4만원 맞춰 그래 적립금타고 할인받고 할려고 하는데 벌써 보름넘게 안오네요.. 처음 만들땐 1주일이면 된다고 했는데... 언능 사고 파요..

히나 2005-08-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언능 카드가 와서 언능 주문해서 언능 로망을 가지길 바래요.. ^^

하루(春) 2005-08-1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제가 모르는 책을 주로 보시는군요. ^^

히나 2005-08-17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하고 맞아서 그런지 생뚱맞은 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

줄리 2005-08-17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때문에 이 책이 통통 튀는 느낌이 나네요. 마지막 조언도 아주 맘에 들고요!

검둥개 2005-08-1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재밌습니다. ^^ 흠 근데 도시락의 로망은 뭘까나요?

히나 2005-08-1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 이 책 읽고나니까 여행가고 싶어 미치겠어요.. 일하기 정말 싫다 점심 먹기도 귀찮아요.. ㅜ.ㅜ

검정개님, 취사가 되는 숙소라면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들을 구입해 맛난 도시락을 싸서 현지인들처럼 먹는 식단되겠습니다.. ^^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미셸 갈 지음, 김도연 옮김 / 다우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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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갈의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 요리사의 전기이고 나오는 음식마다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호텔요리라는 점에서,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소박한 아저씨 식당이 나오는 김형민의 ‘마음이 따뜻한 식당’하고는 정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공정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도 좋지만 먹는 행위의 진정한 즐거움은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예찬’에 더 가까이 있는 게 아닐까.


요리는 축복이고 주방은 성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조식을 제외하고) 호텔 레스토랑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모든 일류 요리사들의 아버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지금이라도 리츠칼튼 호텔에서 스테이크라도 썰어야 하지 않나 하는 조바심이 든다. 물론 그러기에는 지갑아 날 뜯어먹어라 하는 개털신세이니 책으로라도 그 화려한 만찬을 실컷 맛보도록 하자


주인공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는 평범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열 세 살 어린 나이에 호텔 레스토랑 견습생 시절을 거쳐 그랜드, 사보이, 리츠 칼튼 호텔 주방장을 역임하며 전 세계 셀레브들의 입맛을 손끝 하나로 좌지우지한 현대 호텔 요리의 거장이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영국, 프랑스, 모나코, 이탈리아 등지를 무대로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화려한 만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런 면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회상을 비춰주는 사진기 역할도 해준다. 우리는 화려한 정치와 예술의 세계에서 프랑스 요리가 때로는 외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음을 볼 수 있다’는 사뵈르의 추천사의 말을 옮기고 싶다.


이 책에는 하루 10번씩 풀코스의 만찬을 즐기느라 허리둘레가 48인치나 되는 영국의 배불뚝이왕 에드워드 프린스 7세를 비롯하여 앵그르의 ‘샘’에 나오는 무희처럼 아름다운 프랑스의 외제니 황후 같은 로열 패밀리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유명한 릴리 랭트리, 레이디 워릭, 카밀라 파커볼스의 증조모 엘리스 케필 등 한 세기 전의 유물같은 이름의 정부들이 줄줄이 불려 나와 왕실 스캔들을 좋아라하는 나로서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떤 이름들이 나올까 궁금할 따름이다.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수 있다)


그 뿐이랴. 예술과 음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 자신이 미식가였던 에밀 졸라와 스탕달을 비롯, 말년의 모네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제임스 맥닐 휘슬러, 사라 베르나르같은 세기의 이름들이 만찬을 함께 하고 풍성한 식탁을 빛내준다. 그리고 에스코피에가 만드는 창작요리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림으로서 후대에 영원히 남게 된다.


그러나 이 책에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나 오를만한 그런 즐거움 말고도 여러 가지 감동적인 일화가 가득하다. 어떻게 해서 에스코피에는 후대에 ‘모든 일류 요리사들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게 되었을까.


그는 피라미드처럼 쓸데없이 높이 올리기만 하는 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요리보다는 단순하지만 새롭고 현대적인 요리를 만드는데 일평생 노력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여행 중일 때 말고는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못하던 불평등한 시대에 남들보다 앞서 여성의 시대를 예감하고 그녀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었던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주방설비를 현대화하고 쓸데없는 동선을 줄임으로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요리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물론, 요리하고 남은 음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은퇴한 요리사들을 위한 양로원을 짓고 평생 후대 요리사들을 위해 요리 매뉴얼과 레시피를 정리하는데 힘썼다.


이런 이유로 그는 시민 자격으로는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요리사가 되었는데 한마디로 그는 요리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군요! 그동안 당신이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똑같았다. "깨달은 바라.. 그건 단순할 것, 옳지 못한 생각들과 옳지 못한 요리법들을 피할 것이지요."

 

다시 말해 진정한 요리는 어려운 데 있지 않다. 옳지 못한 생각들과 옳지 못한 요리법들을 피한 에스코피에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요리하지 않을 수 있었고, 여기에는 지나가버린 미식가의 시대가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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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5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나 2005-08-1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자기가 먹는 걸 좋아하느냐 안 하느냐 상류사회에 대한 환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유럽이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하죠. 땡길 때 한번 읽어보세요.. ^^

hanicare 2005-08-1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또하나의 캐릭터 탄생! (스노우드랍표) 재치있고 맛깔스럽네요. 무엇보다 쓰신 분의 개성을 고스란히 입고 있어요.

히나 2005-08-16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님, 스노우드랍표 리뷰가 타의 모범이 되도록 분발하겠싸와요 흐흐..
그런데 댓글만 달고 요즘은 왜 글을 안 쓰세요?
 
서늘한 미인 -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무식한 일이지만 나는 텔레비전 보는 취미가 없어서 여지껏 MBC에 김지은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 여자가 유명한 지도 몰랐고 ‘즐거운 문화 읽기’라는 괜찮은 프로그램의 존재는 알았지만 교양이 없어서 그런지 리모콘을 돌리면서 한번이라도 지나쳐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아나운서나 PD, 방송작가라는 직업군이 만드는 책은 대부분 실망한 일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저자의 만만치 않은 예술적 식견에 탄복을 했다.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은 이 책을 선전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지 이미 미술을 교양차원에서 허투루 좋아하는 수준 정도는 뛰어넘은 것이다. 암튼 이 책은 일반 감상자로서 미술을 정말 좋아하고 직접 작품도 소장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끝에 나온 꽤 괜찮은 국내 현대미술의 대중적인 안내서다.


이 안에는 현대미술의 정점에 선 스물한 명의 화가가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그 유명한 아토마우스의 이동기와 각종 스캔들로 이름이 알려진 낸시 랭,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종이인형 그림의 홍인숙 밖에는 없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사실 피카소 이후 현대미술에 대해 평론가 말고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화가의 대표작과 함께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지은씨가 여기 있으니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처럼 미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사람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더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장 중간중간 밑줄을 그어놓은 것은 자유로운 감상에 적잖히 방해가 된다.


그 사소한 사실만 빼면 직접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감상하지 않은 이상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려웠던 젊은 화가들을 한꺼번에 스물한 명이나 만나고 편하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이 어찌 친절한 지은씨가 아니리요.


사실 무심결에 지나쳐서 그렇지 현대미술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이 책은 일깨워준다. 이너넷에서 그토록 자주 보았던 ‘조는 하트’가 원피스를 입은 남자 강영민의 그림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 언젠가 우연히 본 뭉크처럼 우울한 사람들의 초상이 이태경의 그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연필지우개 지꺼기로 그림을 그린 황혜선을 좋아하게 되었고, 도발적인 낸시 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 미친 세상에 홀연히 그림을 그리는 여인 이유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와, 함진이다’ 라고 외치며 함진 팬클럽에 들고 싶은 것은 물론이요, 하늘 높이 배성미가 만든 꿈의 간판을 달아놓고 싶었다. 그리고 권소원의 그림을 통해 ‘우리 여자들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비극적이어서 더 아름다운 김정욱의 초상과 고통스러워서 더 숭고한 이태경의 초상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 안에는 고통이 있어요. 'schmerzen' 이요. 슈메르첸. 고통은 독일어로 발음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느껴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인더스트리얼 뮤지션 나인 인치 네일스에 대해 화가 이누리가 말하는 부분을 바꿔서 말해본다면 나 역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림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진실한 예술적 아름다움이요.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림으로 보여질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나는 이 책에서 그 미인들을 만나고 왔어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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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8-0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서늘한 미인>이 누구죠? 설마 저자는 아닐테고... 작품이름인가요?

히나 2005-08-1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강영민이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의 제목이래요.. ^^;

LAYLA 2005-08-0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의 정점에 진정 낸시 랭이 있단 말입니까??? 아 정말 인정하기 힘들어요. 길거리 스트립쇼같은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스트립쇼란 표현이 맞는지...)

히나 2005-08-0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정점이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네요 저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어떤 한 점을 말하려고 했어요. 위의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도발적인 낸시 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게 중요한데.. ^^

저도 스캔들 일으키기 딱 좋은 퍼포먼스나 하는 행위예술가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트립쇼(라는 말 말고 뭐라고 해야 되죠?) 말고도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쳤더라구요. 그리고 그 행위는 뭐랄까, 마돈나 언니처럼 여성의 성이 권력을 쟁취하는 한 방식처럼 느껴졌어요. 보면서 통쾌했어요. 왜 그럴까요..

그리고 '터부 요기니' 시리즈라는 일련의 미술작업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누구도 할 수 없는 작업으로 그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난 평가하고 싶어요. 모르죠 전 미술엔 문외한이니까요.

여기 www.nancylang.com 이라는 개인홈페이지로 들어가 보세요. 안 들어가봐서 모르겠지만 스캔들 메이커 말고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미인은 미워하기 힘들어요 ^^;

LAYLA 2005-08-0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홈페이지를 보니 저도 painting 작품들은 처음 보는거라 낸시랭이 새롭게 보이긴하네요. 뱀파이어 흉내(?)내는거라든지 도심속에서 비키니만 걸치고 돌아다니기 등등만이 전부인줄 알았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데 그걸 왜 예술로 봐야 하는지 전 이해가 안갔거든요. 자기만의 놀이일뿐인데 왜 예술을 갖다붙이고 그래? 하는 맘이요. 그녀 작품에 대한 평가보단 그녀의 애교술과 과감한 노출등에 초점을 맞춘 기사만 접한 탓이겠죠....(저도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구요)아직도 책을 안읽어봐서 낸시랭에 대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snowdrop님 말씀뜻은 잘 알겠어요 ^^

하루(春) 2005-08-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살까 말까하고 있답니다. ^^; 이 리뷰를 보니까 더욱 그 갈등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히나 2005-08-09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지르세요 흐흐흐..

marine 2005-08-2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 님, 저도 낸시 랭 부분에서는 솔직히 동의하기 힘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예술의 지평을 넓히다 보면 이거고 저거고 행위자가 예술이라고 우기면 다 예술 아니냐, 이런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하긴 뒤샹이 변기 갖다 놓고 샘이라고 했을 때, 당시 사람들도 어처구니가 없었겠죠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그렸을 때도 왠 외설인가 했겠죠 대낮에 풀밭에서 여자가 벌거벗고 피크닉을 즐기니, 당시 기준으로 보면 포르노였겠죠 결국 진짜와 가짜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가 평가해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현대 예술은 아직은 평가를 유보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고...
어쨌든 이 책 내공이 상당합니다 저자 약력을 보니까 대학원 전공을 이 쪽으로 한 것 같더라구요 정말 쉽고 재밌고 또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는 것 같아요

히나 2005-08-23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을 가지기는 참 어렵겠죠 저도 낸시 랭에 대한 반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사실 저조차 마음 편히 즐기지는 못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