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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 현실문화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김상경은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 한마디를 우리에게 던지고 간 바 있다. 만일 그 말이 이 책의 저자이자 사진작가인 최민식 입에서 나온다면 이렇게 달라지지 않을까. 바로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 그런 자신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일흔일곱의 작가는 지난 1957년부터 인간을,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만을 찍으면서 그 어떤 연출 없이 스냅숏으로 일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사진은 ‘리얼하다, 메시지가 있다는 평을 듣지만 기록성과 예술성이 어떻게 부합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거나 원근감이 잘 표현되지 않는다’는 충고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찍는가’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따위 서류는 하나의 종이조각에 불과하다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한 주인공도 기억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정성시’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의 현실은 우리의 믿음과 신념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배반한다. 믿을 수 없지만 (서류 뿐만 아니라) 사진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다. 여기 인터넷만 봐도 연출된 상황에 따라 각종 설정모드를 거친 사진들이 ‘실제보다 더 예쁘게’ 뽀샵 처리를 마친 다음 활개를 치고 다니지 않는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듯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사진이 진짜 사진이 아닐 수 있다. 필카도 아니고 디카에 입문한 지 겨우 2년 남짓, 음식점에서 각종 요리나 찍어대는 내가 사진에 대해 뭘 알겠는가. 하지만 나도 가짜인 지 진짜인 지는 안다. 최민식의 사진은 ‘날 것 그대로’ 그야말로 드문 진짜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진짜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는가? 물론 그 비결에 대해 형사 콜롬보처럼 시시콜콜 알려주는 책은 무진장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본 작가, 그들과 방법론부터 달리 한다. 바로 무엇을 찍어야 할 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서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비싼 카메라 장비도 어려운 기술도 필요 없다. 진짜는 찍기도 쉬운 것이다. 솔직히 말해 가난한 사람들은 카메라만 들이밀면 바로 그림이 나온다. 꾸미고 뭐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패션화보를 생각해보자. 그럴듯한 배경을 세우고 그럴듯한 옷을 입힌 다음 그럴듯한 포즈를 만들어줘야 한다. 아무리 세계최고의 슈퍼모델이 나온다 한들 상황 연출은 필수고 그래야 사진이 나온다. 왜냐고? 그들은 카메라에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잘난 카메라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첨할 이유도 없다. 굳이 우리처럼 진실을 알기 위해 퓰리처 수상 사진전을 찾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들의 삶 자체가 진실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뷰 파인더이기 때문이다.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때서야 놀라고 감탄하는 우리와 달리 이미 일상 자체가 전쟁이고 하루하루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싸움밭이다. 그러니 사진빨 잘 받겠다는 이유로 콧잔등에 콤팩트나 두드리고 앉아있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사진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인간과 인간이 벌이는 순간의 싸움이다. 싸움은 우선 상대를 잘 고르는 게 중요하고 반칙 없이 페어플레이를 펼쳐야 ‘지대로’ 한 팥 붙을 맛도 생겨난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부산 자갈치 시장의 아지매들부터 논주름처럼 이마주름이 자글자글한 우리네 어머니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버리지 않는 어린 아이들까지, 그들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부유한 우리 시대가 한번 맞붙어 싸워볼 만한 가난한 상대들이 아닌가.
이 책을 통해 작가 최민식은 카메라를 들고 한번 정정당당 승부를 펼쳐보자고 말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그들의 눈을 바라보자. 싸움의 시작은 바로 눈싸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예술가가 그 시대의 무엇을 섬겼고 무엇과 투쟁하였고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곧 힘의 예술이어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