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수요일, 

대한문 앞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남편에게 살해당한 이주여성들을 추모하는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2012년 올한해만 이주여성 3명이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언론에 알려진 죽음만 10명,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살 권리'가 아니라 "죽지 않을 권리"를 얘기해야 하는 지금 한국의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고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한 이주여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추모집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추모의 노래(고향의 노래)를 부르던 중국인 유학생들은 끝내 오열했고,

고향친구를 잃은 최설화씨는 추모사에게 이렇게 되묻습니다.

"다문화 가족을 위한다고 그렇게 많이 떠드는데, 왜 제 친구는 죽었을까요?"


보다 나은 삶, 행복을 꿈꾸며 떠나온 고향 땅.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온 그녀들.

안정적인 체류가 보장되지 않아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탈출하지 못하고,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나도 '위장결혼'일까 의심받고, '혼인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경제적 착취와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남편에게 맞아죽지 않을 권리, 칼에 찔려 죽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이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계속 이런 추모집회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집회에 참석한 이주여성들은 요구했습니다.

이주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이주 여성 스스로 체류권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 달라고.

가해 남편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신고할 경우, 안전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안내해 달라고.


그리고 이주여성을 이웃으로 둔 한국시민들에게도 호소했습니다.

주변에 이주여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폭력상황을 알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고 필요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그녀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성명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더 이상 결혼으로 와서 남편에게 죽는 여성은 없어져야 합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주여성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이주여성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와 시민 여러분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향의 구름



하늘에 고향의 구름이 두둥실 떠가네

끊임없이 나를 부르네

산들바람이 가볍게 나를 스칠 때

어떤 소리가 나를 부르네

돌아와라 돌아와

유랑하는 방랑자여

돌아와라 돌아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지 마라


무거운 발걸음을 딛고

귀향하는 길은 아주 멀구나

산들바람이 가볍게 나를 스칠 때

고향 땅의 향기가 불어온다

돌아와라 돌아와

유랑하는 방랑자여

돌아와라 돌아와

이제 유랑하는 것이 싫고


마음도 이제 많이 지친다

눈가엔 슬픈 눈물이

고향의 바람과 고향의 구름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네

예전의 난 호방한 감정이 높고 깊었지만

돌아온 건 텅 빈 행낭뿐이네

고향의 바람과 고향의 구름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네


돌아와라 돌아와

유랑하는 방랑자여

돌아와라 돌아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지 마라

몸도 이제 많이 지친다

눈가엔 슬픈 눈물이

고향의 바람과 고향의 구름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12-07-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아픈 소식이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이주민들이 수백만인 나라인데, 아직도 순혈주의적 사고로 그이들을 착취하려고만 하는 법이 한심하죠.

rosa 2012-07-20 15:50   좋아요 0 | URL
가정폭력을 신고하러 다녀간 사람의 남편에게 아내의 행방을 알려주는 한국 경찰들의 행태는 뭐라 말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찰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고,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안일함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카스피 2012-07-1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서글픈 일입니다.머나먼 타국에서 죽다니 말이죠ㅜ.ㅜ

rosa 2012-07-20 15:51   좋아요 0 | URL
우리를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는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ㅡㅡ;

nada 2012-07-1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결혼을 알선하는 중개업체들도 문제예요.
여자를 돈으로 사왔다고 생각하니, 남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근데 가해 남편을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니..
사람을 죽이고도 그에 마땅한 처벌을 안 받는단 말인가요?ㅠㅠㅠ

rosa 2012-07-20 16:00   좋아요 0 | URL
그래서 NGO들은 계속해서 상업적 결혼중개업에 반대해왔지만, 국제결혼은 계속 증가해왔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국제결혼비율이 전체 결혼의 9%로 줄어들었더군요. 행복하게 사는 분들도 많지만, 문제가 있는 경우에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이 문제입니다.

지난 2010년 입국한지 1주일만에 살해당한 탓티황옥씨의 경우, 살인자인 남편은 정신분열증을 이유로 겨우 12년 징역과 치료감호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판결에 많은 이주여성들이 분노했죠.
몇년전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이주여성의 경우,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살해당한 리선옥의 남편은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더군요. 그러면 또 이를 이유로 감형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