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생,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를 경찰관이 발견.

경찰관은 그를 홀트 고아원으로 데려간다.

그곳은 거대한 미국식 고아원. 2000명의 고아들과 함께 산다.

전정식은 그곳에서 2개월을 보낸 후, 벨기에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에 관한 서류 속에서 그가 발견한 문서 한 장.


  전정식
  출생년도 65/12/2
  피부색깔 = 꿀 색
  출생지 모름

  경찰이 아이를 발견해 데리고 옴.
  코와 눈 사이에 검고 푸르스름한 상처가 있음. 넘어졌음.
  ... 

  정이 많고 마른 편이다. 음식은 맛있게 먹는다. 뭐든 잘 소화한다. 배설 능력 완벽.
  말할 때는 짧은 문장으로 말하면서도 한 문장을 여러 번 끊어 말한다. 발음은 아직 명확하지
  않 다. 보행, 시각, 청각 정상.

  어떤 일을 시키면 열심히 한다. 방문자들이 고아원에 오면, 시를 암송해 보일 줄 안다. 장난감을
  주면 다른 친구한테 주고 그 친구도 즐겁게 만든다.
  아이는 2,000명의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는 고아원에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고아원이다. 
  순하고 친절하며 매우 착하고 귀엽다.
  입양에 추천한다.
  비서 Jin N.
                                                                                                                       (13쪽)


어른이 된 그는,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가족을 찾아준 홀트 할머니에 대해 감사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세계로 흩어져 입양된 한국 아이들이 20만명이나 넘으니까.

그는 입양된 첫날, 그만의 자전거를 가졌고, 그렇게 많은 장난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날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계속 그가 어린이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은가.


그는 자신의 얘기를 담담히 그려나간다.

만화로 그려지긴 했으나, 그래서 때론 가볍게 묘사되지만 그가 겪어야 했던 큰 아픔 - 버려졌다는 것, 그가 다른 형제 자매들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내면의 고통과 갈등은 어렸을 때는 종종 악몽과 저도 모르게 이불에 소변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는 거짓말을 하고 사고를 치면서 몸부림친다.

출혈성 위염으로 죽을 뻔한 경험을 한 후, 그는 깨닫는다.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죽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가 살았던 마을에만 그가 알고 지냈고, 한 학교를 다녔던 한국인 입양인들 가운데 4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그와 한 가정에 입양되었던 한국인 여동생 역시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들 가운데에는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이도 있었다.


입양아들에게 부모의 지지와 사랑은 필수적이지만 모든 이가 그런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부모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가 필요로 했던 체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가 사고를 칠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채찍으로 때리거나 언어폭력을 일삼았다. 

"넌 썩은 사과야! 양동이 속의 썩은 사과는 잘 자란 다른 사과도 썩게 만든다! 이제는 네가 '내 아이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86쪽)

"이 더러운 아시아놈!"(94쪽) 


나는 그가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남았고, 자신의 얘기를 만화로 글로 전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그가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그리고 오늘, 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인 정 트렌카, 전정식 같은 이들은 자전소설과 만화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온전히 드러내주고 있다. 그들의 책을 읽고 난 후, 한국에서 수십년간 해외로 입양보낸 20만 여명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2달만에 해외로 뚝딱 보내져 버렸던 그가 살아남아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그의 얘기를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처럼 해외로 보내졌던 입양인들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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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헷갈리는 대목은 아이들의 나이와 서열이다.

54쪽에서 이미 부모님과 맏딸 까뜨린느, 에릭, 전정식, 코랄리, 가엘, 이성숙 순으로 적어 놓았다.

그런데 75쪽에서는 에릭과 전정식이 동갑이라고 나오고,

116쪽에서는 전정식과 코랄리가 동갑인데다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이라고 한다.

(에릭과 전정식과 코랄리가 모두 동갑?)

126쪽에서는 앞서 맏딸로 설명되었던 카트린느가 여동생으로 바뀐다.

(이름도 까뜨린느가 카트린느가 되었다^^;) 


이 부분을 출판사에 문의한 결과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다.

...........

지적해주신 내용을 다음 쇄에 반영하고, 이후 출간될 다른 단행본들 역시 더 꼼꼼하게 검토하겠습니다. 

1. 에릭, 전정식, 코랄리는 나이는 동갑이나, 생일 순으로 형제 관계가 나뉘었으리라고만 파악하고, 독자를 고려한 해설을 따로 적지 못했습니다.

2. 표기상 카트린느가 되어야 합니다만 교정 과정에서 일치시키지 못했습니다.

3. 맏딸과 여동생의 캐릭터를 혼동한 원문 또는 번역의 오류입니다.


좋은 소식!

이 책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단다. 올해 6월,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영화가 개봉되었고, 어쩌면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소개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가 개봉될 때는 작가도 오실 예정이라니 그 날을 기다려볼 일이다. 서울에서 행사가 마련되겠지만 열 일 제쳐두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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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문제는 너무 어려워요.
제가 홍대 앞에서 10여년을 넘게 살아서 홀트 복지관 자주 봤는데
차마 고개 똑바로 들고 못 보겠더라구요. 하지만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그만 두자고 말도 못 하겠고......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rosa 2012-07-10 10:24   좋아요 0 | URL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보면, 인종간 입양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후, 해외입양의 새로운 윤곽이 잡히는데, 이주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서구 동맹국가들과 우의를 진작시키기 위해... 입양가능한 아동을 무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4대 입양기관들이 경쟁하는 체제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입양산업이 번영을 구가했고 10년 사이 전례가 없을 만큼 많은 아동들이 입양 보내졌는데 그 수가 무려 7만에 달했다고 합니다. 입양기관들은 이윤이 창출되는 사업과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고...(278쪽)
홀트협회에 대한 얘기도 나와요. 한국에서 홀트협회는 과장되고 미화된 측면이 있는 듯 합니다.재란 김의 글 흩뿌려진 씨앗들-기독교가 한국인 입양에 미친 영향(같은 책 285~307)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전 머리가 계속 복잡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프레이야 2012-07-1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사님, 지난 번 말씀하신 책 <할머니의사, 청진기를 놓다>에 이어
이 문제에 대해 저도 상당히 복잡해짐을 느껴요. 실상을 알아야겠어요.
할머니의사, 그 책은 일부 극히 일부의 좋은 쪽 이야기만 한 것 같아요.
해외입양된 아이의 경우에서도 좋은 쪽으로 살게 된 경우만 나와 있어요.
그 책은 그런 의도로 작정하고 만들어진 것이었어요. 그래요. ㅠㅠ
요즘 드라마 넝굴당 보면서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저는 세상의 반의 반의 반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피부색을 꿀색이라 표기했군요.

rosa 2012-07-10 14:42   좋아요 0 | URL
전정식씨가 나중에 찾아낸 그의 서류 가운데 그의 피부색을 그렇게 표현해 놓은 것을 찾았더군요. 이 책의 표지에 그 서류가 찍혀 있어요. 불어로 적혀 있지만.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에는 한국인 해외입양인들 뿐 아니라 불법적인 아동납치, 강제로 부모에게서 분리되어 백인에 의해 입양되어 양육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얘기 등 다양한 '뿌리 뽑혀 이식된' 사람들의 얘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또 한국인의 해외입양이 어떻게 확대되어 갔는지, 홀트협회의 실체에 대한 고발글도 함께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2-07-10 14:39   좋아요 0 | URL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읽어봐야겠어요. 꼭!!
고마워요, 로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