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수면 패턴이 너무 엉망이 되었다. 어제는 기진맥진해서 퇴근하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자정쯤에 잠이 깨어서 아직까지 자리를 뒤척이고 있음😢 책도 읽다가 유튜브도 좀 보다가, 이젠 대화할 친구도 없는 시간이 되어버려서 북플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는 이유로 sns 계정들을 다 정리했는데 잠 안오는 새벽에 혼자 주절거릴 공간이 없다는 단점이 생기기도 하는군...

지난 주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경조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고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모든 항목들에 ‘예‘를 답하는 나를 발견하고 무척 곤혹스러웠다. 그러니까...이게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분, 예컨데 갑자기 에너지가 넘친다던가 수면욕이 감소한다던가 한껴 고양된 자신감에 도취된다던가 씀씀이가 헤퍼지는 등등의 일들을 겪지 않고 지낸단 것인가? (친구들이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사실 나는 이게 병적이거나 위험한 증상이라고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는 십대 시절부터 이러한 경조증 삽화를 무수히 많이 겪어왔는데, 어린 시절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보니 경조증 상태의 자신을 우울증이 호전된 상태의 나, 병증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의 진정한 나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질병과 분리된 나‘라는게 존재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맘 한켠 어딘가에서는 ‘아프지 않을 때의 나는 쾌활하고 모험을 즐기며 친근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간이라고!‘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솔직히 아직도 경조증 증상들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와닿지 않는다(씀씀이가 헤퍼지는것만 뺀다면 말이다). 경조증hypomania이란 애매한 용어 자체가, 인간의 정신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핀셋으로 하나 하나 분류해가며 ˝이건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기질이니 병증이야!˝하고 선언하는 정신의학과 제약회사의 농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다. 경조증 삽화를 겪을 때의 나는 평소의 나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생산적이며 사교적인 인간이 되는데, 이런 기분을 마다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나는 지금도 경조증 삽화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분별한 소비가 늘었으며 새벽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이렇게 혼자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으니까. 내 증상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킨들에서 앤드루 솔로몬의 그 유명한 벽돌책, <한낮의 우울>을 구매해서 읽어보기로 결심했는데, 어마어마하게 사들이고 있는 각종 이북들과 지난 주 사들인 킨들 기기가 ‘무분별한 소비‘ 목록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긴 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으려다 번번히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으나, 이번에야말로 경조증의 힘을 빌려서 완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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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sp 2021-03-0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얄라알라북사랑 님☺️ 고양이의 호기심이라니...너무 귀여운 표현이에요! 제가 이 글에서 쓴 ‘삽화‘란 정신의학 용어로, 어떤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영어로는 episode라고 하는데, 저도 사실 딱딱하게 들리는 삽화 라는 표현보다는 에피소드 라는 표현이 더 와닿더라구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셔요 😀
 
Indignation (Paperback, Reprint)
Roth, Philip / Vintage Book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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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필립 로스의 소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다음과 선언할 수 있다. 필립 로스는 소설의 신들 중 하나고, 나는 그의 소설을 책장의 도스토예프스키 섹션 옆에 꽂아넣을 것이다.
앞으로 그의 모든 작품들을 읽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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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
주경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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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어떱게 세계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저자의 다른 책들과 대동소이한 내용임.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논하며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 운운하는 것은 넘 진부하고 손쉬운(성의없는?) 마무리처럼 느껴졌다. 뭐 무거운 학술서가 아니고 대중 강연을 지면으로 옮긴 책이지만. 쉽고 재밌게 읽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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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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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아주 간단하게라도 남기는 것이다. 과연 게으른 내가 언제까지 해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제임스 s. 게일은 19세기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이다. 그는 최초의 한영 사전을 편찬하는데 참여하기도 했고, 역으로 구운몽 등의 소설을 영역하여 서구에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선교사들의 이런 놀라운 어학 실력이 그저 감탄스럽기만하다...대체 그들의 비결은 무엇인것일까??) 이 책,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스물 다섯의 나이로 한반도에 도착한 그가 조선 왕조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한 것으로, 1898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영미권에 출간된 바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트위터에서 본 어떤 글 때문이었는데...조선인의 언어 습관에 대한 저자의 착각에 대한 내용으로, 친구들의 ˝Nail do orita(I will come again tomorrow)˝를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 실망했으나 나중엔 그것이 조선인들의 인사치례인것을 깨달았다는 에피소드였다. ㅋㅋㅋ 책에는 이 짧은 일화와 같은 흥미로운 체험들이 가득한데, 예를 들면 게일과 어느 지방 목사와의 만남이 그렇다. 게일의 생경한 외모와 ‘지구의 다른 쪽‘이라는 충격적인 출신지를 접한 이 가여운 목사는 몹시 혼란스러워하며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렸는데, 때마침 밥상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목사는 함께 음식을 들자고 권하면서도 내가 과연 음식을 먹는지 아니면 이 놋그릇과 젓가락을 먹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왜냐하면 조선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귀신들은 어떤 것은 쇠, 어떤 것은 나무, 어떤 것은 풀, 어떤 것은 공기 등 각각 다른 물질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사람은 쌀, 돼지고기, 생선 등을 먹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침내 내가 밥 한 술을 떠먹는 순간,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던 만리장성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 목사는 내가 사람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밥을 먹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인지한 이상 내가 우주만물을 좀 다르게 보고 있다는 작은 차이는 눈감아 주었다.> p.29

그렇다...식사 유무에 대한 질문이 인삿말이 되며, 어느 지역을 검색하든 근처 맛집에 대한 블로그 글들이 올라오는(지금 내 머릿속에 랜덤하게 떠오른 지역인 이르쿠츠크 맛집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봤는데,결과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인 이 한반도 거주민들의 유구한 밥 사랑은 저 때에도 유효하였던 것시다.

사실 음식을 나눠먹는 행위가 낯선 이들간의 ‘만리장성‘을 허무는 일은 만국공통이긴 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야 안젤루의 어느 책에서 읽은 일화가 생각났다... 안젤루가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을 무렵 프랑스에 공연을 하러 가게 됐는데, 거기서 그녀는 서남아시아인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방인지에서 온(내 기억력을 저주한다🙄)흑인 상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상인들은 안젤루를 무척 환대하며 그녀에게 음료 한 잔을 대접했는데, 음료 위에 바퀴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본 안젤루는 당연히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미국 남부 출신 할머니의 따스한 가르침(=내가 여기서 이들에게 무례한 짓을 한다면 관에 누워있는 우리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내 뺨을 후려갈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떠올린 안젤루는 짐짓 감사한 척하며 음료를 다 마셨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야 속을 다 게워냈다. 그 후 어느날 안젤루는 이 상인들이 준 음료 위에 둥둥 떠다니던 것이 바퀴벌레가 아닌, 긴 여정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한 건포도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몰이해를 반성하며 세계 어디를 가던 그 나라 사람들이 주는 음식은 아무리 고약해보여도 사양 없이 다 먹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이야기가 엄청 곁가지로 샜는데.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현대 한국인에게 얼마나 익숙하면서도 낯선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많은 풍습이 단절되거나 변형되었고 압축된 근대화의 과정을 지나면서 한국인의 생활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새로이 창조되었다. 예를 들어 게일은 조선인들의 게으름에 대하여 때로는 답답함을 담아, 때로는 애정 어린 유머를 담아 기술하는데, 이런 묘사는 워커홀릭으로 악명 높은 현대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생경하다. 청교도적 자본주의 노동 윤리가 정착되기 이전의 조선인들의 일에 대한 태도를, 우리는 게일과 마찬가지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온 거리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사람 머리통들이 뒹굴거리는, 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질성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게일과 비슷한 시선으로-즉 백인 남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게일의 개방성과 유머감각, 그리고 조선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19세기 북미 출신의 백인 남성 선교사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거꾸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 책 전반에서 보여주는 예리한 관찰력과 낯선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인내심이 놀랍다. 특히 게일이 남긴 양반 문화에 대한 강한 비판과 ‘상놈‘ 계급에 대한 애정 어린 서술은 그가 단순히 한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오만한 백인 선교사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만주 지역을 여행하며 비위생적이고 기름진 음식에 시달리던 그가 김치를 대접받고 기뻐하는 장면이라던가, 을미사변에 비분강개하며 일본에 대한 독설을 내뱉는 부분을 읽으면 게일이 얼마나 K-패치가 된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 어떻게 글을 끝맺어야 할 지 모르겠으므로 이렇게 얼렁뚱땅 용두사미로 끝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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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주제가 있는 미국사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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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 때 마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유쾌하고 영양가 있었다. 예컨데, 1961년 맥도널드의 레이 크록이 햄버거 대학(!)을 설립했다는 부분에서는 카페에서 큰 소리로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최초 졸업생 18명의 부전공은 프렌치프라이 였다고 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마치 심슨가족 에피소드같은 기이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신입사원 중 한 명은 강의를 듣다가 너흰 다 미치광이야!라고 고함을 치고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ㅋㅋㅋ큐ㅠㅠ 이 일화가 너무 웃기고 재밌었던 나머지 나는 그 날 저녁으로 프렌치프라이를 먹었다...찬송가를 부르고 성경 구절을 외우며 술집 문을 손도끼로 때려 부쉈다는 캐리 네이션의 일화(ㅋㅋㅋ미국 정말 골때리는 나라 아닌지ㅋㅋㅋ )는 또 어떤가? 키 백팔십의 거구였던 그녀는 도끼질 때문에 서른번 이상 경찰에 체포까지 당한, 불굴의 금주법 투사였다고 한다. 할렐루야...😌🙏

강준만 교수의 폭넓은 독서 범위와 책 쓰는 속도, 그리고 그 저작물들의 일정한 퀄리티(물론 나는 그가 쓴 책 대다수를 읽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그는 정녕 책 쓰는 기계인것일까?)는 늘 감탄이 나오게 만든다.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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