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지 꽤 된 책입니다만 간만의 북플 업데이트를 위해 엄지를 두드려보겠습니다.
짐시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요. 배경은 1950년대 후반의 미국, 뉴욕입니다. 그때도 뉴욕은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이 혼재되어 흘러넘치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만, 지금과 꼭 같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냉전을 경험하고 있었고 사회적.문화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었죠.
이야기는 이 텁텁한 시기, 뉴욕의 어느 레즈비언 바에서 시작됩니다. 펄프픽션 작가인 매리제인 미커는 어느 저녁, 자신이 평소 흠모해오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를 우연찮게 맞닥뜨리고는 2년간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Highsmith : A romance of the 1950`s>는 1959~61년 사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나누었던 사랑에 대한 미커의 회고록입니다.
알다시피 방랑벽과 알코홀릭에 시달리던 하이스미스는 사랑에 빠지기에 이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비슷하게 미커 본인도 썩 훌륭한 연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의심과 질투도 심했던데다가, 하이스미스의 바람대로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대신, 팬실베니아 교외에 집을 구입해 머물자고 고집스럽게 그를 설득하죠. 유럽을 사랑했던 하이스미스가 보수적인 분위기의 팬실베니아 교외에서 병든 식물처럼 생기를 잃고 술을 퍼마시게 되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요.
현실에서는 기피했을 것 같은 성격의 두 사람이지만-_-; , 책으로 읽기에는 이 둘의 전쟁같은 연애사가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당시의 시시콜콜한 일화들을 마치 수다떨듯 전달하는 미커의 서술 방식도 흡입력 있었구요. 미커와 하이스미스 둘 다 전업 작가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글쓰기에 자극을 주고 영향을 받은 과정에 대해서 책의 상당부분이 할애되어 있는데, 저 자신이 하이스미스의 팬이라 그런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의 동성애자 문화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어요. 서로 네트워킹을 할 만큼 하위문화가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면 위로 크게 떠오르지는 않았다는 점이 지금의 서울과 비슷하지 않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전반적으로 ˝Don`t ask, don` tell˝의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195~60년대 뉴욕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2010년대 중반의 서울의 분위기가 맞닿아 있다니 어쩐지 맥이 빠지죠.
말년의 하이스미스는 정말 불쾌한 종류의 인간이 되어버렸더군요. 미커와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캐쥬얼하던 흑인과 유태인에 대한 그의 혐오가 후에 망상 수준으로 강해진 걸 보고있자니 측은한 감정까지 들 정도였어요. 괴기스럽기까지 한 노년의 하이스미스 사진을 보고 있자면 젊었을 때 그가 이토록 매력적으로 생긴 여인이었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을 정도죠.
하이스미스 소설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저는 Scribd라는 어플을 다운받아 무료로 읽었어요.
책을 읽고 제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겠네요 : ˝예술가와 섹스를 하면 저주를 면치 못한다(이자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