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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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아주 간단하게라도 남기는 것이다. 과연 게으른 내가 언제까지 해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제임스 s. 게일은 19세기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이다. 그는 최초의 한영 사전을 편찬하는데 참여하기도 했고, 역으로 구운몽 등의 소설을 영역하여 서구에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선교사들의 이런 놀라운 어학 실력이 그저 감탄스럽기만하다...대체 그들의 비결은 무엇인것일까??) 이 책,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스물 다섯의 나이로 한반도에 도착한 그가 조선 왕조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한 것으로, 1898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영미권에 출간된 바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트위터에서 본 어떤 글 때문이었는데...조선인의 언어 습관에 대한 저자의 착각에 대한 내용으로, 친구들의 ˝Nail do orita(I will come again tomorrow)˝를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 실망했으나 나중엔 그것이 조선인들의 인사치례인것을 깨달았다는 에피소드였다. ㅋㅋㅋ 책에는 이 짧은 일화와 같은 흥미로운 체험들이 가득한데, 예를 들면 게일과 어느 지방 목사와의 만남이 그렇다. 게일의 생경한 외모와 ‘지구의 다른 쪽‘이라는 충격적인 출신지를 접한 이 가여운 목사는 몹시 혼란스러워하며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렸는데, 때마침 밥상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목사는 함께 음식을 들자고 권하면서도 내가 과연 음식을 먹는지 아니면 이 놋그릇과 젓가락을 먹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왜냐하면 조선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귀신들은 어떤 것은 쇠, 어떤 것은 나무, 어떤 것은 풀, 어떤 것은 공기 등 각각 다른 물질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사람은 쌀, 돼지고기, 생선 등을 먹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침내 내가 밥 한 술을 떠먹는 순간,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던 만리장성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 목사는 내가 사람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밥을 먹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인지한 이상 내가 우주만물을 좀 다르게 보고 있다는 작은 차이는 눈감아 주었다.> p.29

그렇다...식사 유무에 대한 질문이 인삿말이 되며, 어느 지역을 검색하든 근처 맛집에 대한 블로그 글들이 올라오는(지금 내 머릿속에 랜덤하게 떠오른 지역인 이르쿠츠크 맛집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봤는데,결과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인 이 한반도 거주민들의 유구한 밥 사랑은 저 때에도 유효하였던 것시다.

사실 음식을 나눠먹는 행위가 낯선 이들간의 ‘만리장성‘을 허무는 일은 만국공통이긴 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야 안젤루의 어느 책에서 읽은 일화가 생각났다... 안젤루가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을 무렵 프랑스에 공연을 하러 가게 됐는데, 거기서 그녀는 서남아시아인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방인지에서 온(내 기억력을 저주한다🙄)흑인 상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상인들은 안젤루를 무척 환대하며 그녀에게 음료 한 잔을 대접했는데, 음료 위에 바퀴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본 안젤루는 당연히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미국 남부 출신 할머니의 따스한 가르침(=내가 여기서 이들에게 무례한 짓을 한다면 관에 누워있는 우리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내 뺨을 후려갈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떠올린 안젤루는 짐짓 감사한 척하며 음료를 다 마셨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야 속을 다 게워냈다. 그 후 어느날 안젤루는 이 상인들이 준 음료 위에 둥둥 떠다니던 것이 바퀴벌레가 아닌, 긴 여정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한 건포도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몰이해를 반성하며 세계 어디를 가던 그 나라 사람들이 주는 음식은 아무리 고약해보여도 사양 없이 다 먹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이야기가 엄청 곁가지로 샜는데.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현대 한국인에게 얼마나 익숙하면서도 낯선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많은 풍습이 단절되거나 변형되었고 압축된 근대화의 과정을 지나면서 한국인의 생활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새로이 창조되었다. 예를 들어 게일은 조선인들의 게으름에 대하여 때로는 답답함을 담아, 때로는 애정 어린 유머를 담아 기술하는데, 이런 묘사는 워커홀릭으로 악명 높은 현대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생경하다. 청교도적 자본주의 노동 윤리가 정착되기 이전의 조선인들의 일에 대한 태도를, 우리는 게일과 마찬가지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온 거리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사람 머리통들이 뒹굴거리는, 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질성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게일과 비슷한 시선으로-즉 백인 남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게일의 개방성과 유머감각, 그리고 조선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19세기 북미 출신의 백인 남성 선교사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거꾸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 책 전반에서 보여주는 예리한 관찰력과 낯선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인내심이 놀랍다. 특히 게일이 남긴 양반 문화에 대한 강한 비판과 ‘상놈‘ 계급에 대한 애정 어린 서술은 그가 단순히 한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오만한 백인 선교사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만주 지역을 여행하며 비위생적이고 기름진 음식에 시달리던 그가 김치를 대접받고 기뻐하는 장면이라던가, 을미사변에 비분강개하며 일본에 대한 독설을 내뱉는 부분을 읽으면 게일이 얼마나 K-패치가 된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 어떻게 글을 끝맺어야 할 지 모르겠으므로 이렇게 얼렁뚱땅 용두사미로 끝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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