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한국인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독일 통일로 인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한국인에게 ‘심정적 동지’ 하나를 잃어버린 것 보다 더 큰 함의가 있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됐던 냉전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로 나뉘었던 많은 나라들은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고 이념이나 정치적 동기보다 자본으로 상징되는 이익이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불어 닥친 IT 열풍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 하였다. 재화와 자본의 이동이 국가 간에 활발해지고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목소리가 나타났다. 다윈이 이야기한 적자생존의 원리가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며 경쟁이 장려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세계화라 부른다. 한국인은 베를린 장벽 붕괴 때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세계화가 가져다 줄 미래를 마냥 환영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세계화의 파도를 넘기에 버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은 교육에 대한 투자가 비효율 적이고 노동생산성이 낮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재양성에 힘써왔지만 힘에 부친다. 중앙일보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달하여 OECD 가입국 중 3위다. 그렇지만 교육의 질 부분에서는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 투자로 인하여 상급학교 진학률은 높지만 시장이 원하는 인재를 만들어 내기 위한 교육 투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노동 시간이 제일 많다. 이에 반해 노동 생산성은 최하위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입각해 보면 한국의 세계 시장의 열패자다.

  취약한 내수 시장과 수출에 과다 의존 하는 구조도 문제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많은 나라들은 경제적 블록을 형성 하거나 갖가지 조약을 통해 서로의 이득을 극대화 하려 노력한다. 한국 또한 특정 블록이나 조약에 가입함으로써 살길을 모색하려 한다. 그 방안중 하나가 현재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FTA 조약이다. 국민과 충분한 소통 없이 강행 되는 측면이 많은 이 조약은 찬·반 양론에 휩싸여있다. FTA 비준을 찬성하는 입장은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를 말하며 FTA만이 살 길이라 외친다. FTA 비준을 반대하는 입장은 미국 보다 취약한 특정 산업들의 몰락을 이야기 하며 손익이 분명치 않은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선진국 보다 산업 기술이 떨어지지만 자유무역을 통해 국부를 증대할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는 사회적 논쟁이 FTA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경제주체 간의 경쟁이 강화됨에 따라 심화되는 빈부 격차 또한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IMF 시대로 일컬어지는 경제 불황기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명목 하에 고용시장 유연성을 강제하였다. 결국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 되었고 구조조정을 통한 대량 해고는 지금의 청년 실업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불경기로 인한 높은 물가 상승과 이자율은 서민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부동산이나 현금이 많은 부자들에겐 오히려 자본을 증식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시행하는 감세 정책이나 친기업정책은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 강화시킬 것이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안정성을 저해하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좌파 경제학자 우석훈은 연소득 4만불이 되지 않는 가계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좋다는 극단적 발언을 한다. 빈부 격차의 심화가 그려낼 부정적인 한국의 자화상에 대한 한 학자의 지나친 우려라기에는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세계화가 가져다줄 이해득실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화가 주는 많은 기회가 유독 한국에만 부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내수 시장을 키우면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세계화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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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는 지형의 70%가 산지일 정도로 울퉁불퉁하다. 이곳에서 밥 빌어먹기 가장 쉬운 방법은 논농사나 밭농사를 통한 곡류 섭취다. 프랑스나 미국과 같은 서구인들은 평원이 많아 방목을 통해 많은 가축을 기를 수 있었다. 한반도인 보다 육류 섭취가 용이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제한된 가축을 이용하여 효율적인 단백질 섭취를 할 수밖에 없었다. 농가에 자주 보이는 개를 잡아먹거나 사육이 용이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육류 섭취를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였다. 소는 다른 가축과 달리 농사를 짓는데도 쓰였기에 쉬이 잡아먹지 않았다. 마을 잔치나 집단으로 제사를 지낼 때에나 민중들은 쇠고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소고기는 워낙 귀하기에 살코기뿐 아니라 내장과 뼈까지도 먹거리로 이용되었다. 소의 뼈는 고와서 곰국을 만들고 내장은 곱창이나 내장탕을 만들어 먹었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소는 조상들에게 버릴 것 하나 없는 동물이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로 시끄럽다. 미국인들이 먹는 쇠고기와 국내에 수입된 쇠고기가 같다는 정부의 말은 국민들 귀에 신통치 않다. 광우병 유발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척수나 내장 부위의 수입 또한 문제이다. 미국인과는 다른 식습관과 유전자 때문에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주장이 대중 사이에 설득력을 얻는다. 미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내장과 척수 부위를 조리해서 먹기 때문이다.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 허용과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오역 문제 또한 정부 불신을 심화 시킨다. 먹거리 문제이기에 국민은 날이 서 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이 낮다며 ‘광우병 괴담’을 진정 시키기 바쁘다. 심지어 정부의 어느 관리는 국민의 잘못된 식습관을 준엄히 꾸짖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정당화 하려고 한다. 내장과 척수를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은 현재 소득 수준에 비춰볼 때 잘못된 습관이라며.

  단백질 섭취가 힘들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소를 이용했던 조상들은, 이제 후세의 어느 관리에게 계도 대상이다. 곱창을 좋아하는 서민들도 잘못된 식습관을 가진 부적절한 국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때문에 조상의 알뜰함과 개인의 취향까지 비판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국민을 섬긴다는 정부가 오히려 국민을 훈시하는 모습은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게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먹고 사는 문제는 그들이 쓰는 어휘를 보더라도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식구(食 口)라는 한자말에 밥이라는 뜻이 있고, 가장을 뜻하는 영어 표현은 ‘빵을 구해 오는 자(bread winner)' 이다. 이렇게 보면 먹거리인 쇠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촛불 시위를 하는 시민들의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촛불 시위대에게 정치적 행위를 중단하라하는 정부의 외침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국민의 자발적 행위를 오독하는 정치적 해석이다. 국가의 수장이라는 대통령 또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 시키는데 일조한다.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된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라 했던 마리 앙뜨와네뜨의 일화 마냥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준다. 사실 문제를 떠나서 잘못한 일은 사과하고 불평등한 협상은 다시 하는 것이 정부의 도리이다.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 섰다는 것은 정부를 향한 국민의 꾸짖음이라는 사실을 정부 관계자는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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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쉽게 쓰여진 글이 많지만 알아듣기 어려운 글이 태반이다. 쉬운 글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바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의 소재와 여기저기 흩어 놓은 잡스러운 문장이 혼재되면 글 쓴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다이달로스의 미궁이 완성된다. 어떤 사람이 이 미궁에 발을 디뎠다고 하자. 미궁에 갇힌 사람들이 테세우스가 아니듯 아르아드네가 놓고 간 실타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신화에서와 같은 친절한 인도자는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문장 해석력만이 출구로 이끌어 줄 실타래다. 길을 몰라 먹먹해져가는 가슴이 출구는 커녕 본인만의 새로운 미로를 만들어 오갈데 없이 자책만 계속 할 때는 어찌할까? 그럴때는 미로를 설계한 필자를 탓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면 미궁의 탈출구가 보인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하늘로 솟아 올라 제 갈길을 가는 것이 가장 명쾌한 탈출구이다. 시덥지 않은 미궁에서 허우적 될 바에는 미궁이란 없는 존재인냥 무던히 지나가는 것이 미궁을 설계한 글쟁이들에게 가장 근사한 복수가 된다. 소통이 아닌 자기만족으로 글을 쓴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는 '내마음 아실이'를 욕망하는 이중성이 있다. 좀 더 쉽고 정갈하게 이야기 한다면야 당신 글의 행간을 읽을 '그대 마음 아실이'는 넘실되듯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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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바가 나와 같이 살면서 나는 좀 변했다. 스토아 학파(stoic)적 자세로 자취방에서의 삶을 영위 해 왔는데 이 쾌락주의자인 조바는 나의 경건한 생활에 육식과 유흥을 심어 준다. 그가 전해주는 육식이라는게 고작해야 치킨 몇조각과 조금 더 고급스런 상차림이 놓여진 식당에서의 식사이지만 은근히 절제를 모토로 살고 있던 자취방에 평지풍파를 가하고 있다. 밤에 자잘한 세속의 소리에 귀를 막고자 클래식 음반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그는 나에게 린치를 가할거 같은 눈빛으로 준엄하게 정지 버튼을 누르라고 한다. 혹시 정 그렇게 음악이 듣고프다면 이어폰을 끼고 들으라는 그의 강권은 사소한 자유마저 억압하는 빅브라더와 같은 독재의 전형이다. 덕분에 잔뜩 날카로워진 신경과 무던하게 살이 올라버린 몸과 수십번의 조임질이 가해져야 할 것 같은 생활의 나태함이 나를 점점 대중과 괴리 시킨다. 자아가 제대로 옹립하지 않은 마음에 타인과 뛰놀고픈 욕망은 사치라 여기고 오로지 스스로를 위한 노동에 매진하고자 할적에도 조바는 다시금 준엄한 짓누름을 가한다. 자기가 가지고 온 밥상이라며 홀로 공간을 차지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며 나의 공간은 공공재를 바라보는 상인의 탐심이라도 작용한듯 선점한뒤 버티고 나가지 않는다. 햇살 가득한 방으로 이동하기 위한 열망으로 새로이 이사한 방안에 반지하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검은 대형(big brother)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그가 심어주는 유흥이란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다. 스타를 좋아하긴 하나 가끔씩 생활의 반주로 섞어 들곤 하던 것을 그는 일상이라는 들판에 심어 버렸다. 몇번이나 싫다고 하지만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아는, 마치 파놉티콘의 간수마냥 나의 치부까지 아는 그의 퀴클롭스와 같은 눈은 결국 나의 욕망을 건드려 그의 뜨거운 욕망과 합치시켜버린다. 그 욕망의 활주로를 나오고 나면 나의 불평은 지난하게 이어지지만 마이동풍이란 고사성어만이 말이 이어지지 않는 공간을 밀도있게 채운다.

 별칭이 조바(jorba)니까 그 희랍인인지 그리스인인지 하는 조르바처럼 좀 자유롭고 대인배처럼 살았으면 좋겠지만 조바는 스스로를 소인배라 칭하여 본인의 옹졸함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옹졸함에 떳떳한 것이 대인배라 여기는 그의 괴상한 배짱은 어떠한 수사학이나 논리학 또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침투하지 못할 그만의 철옹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고선 본인의 공부가 급하면 그는 나의 나태함을 질책을 가하며 스스로를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리고선 승리의 쾌감을 느낀다. 물론 그가 공부하러 나갈때 주로 내가 하는 행동은 잠이다. 잠만큼 사람을 달콤하게 매혹하면서 많은 영감의 사료가 되고 벌판이 되고 광장이 되는 공간이 없기에 나는 잠을 예찬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사는 자에겐 그만큼 사회적 제재가 가해지기 마련이다. 보통 이러한 사회적 제재는 거시적인 국가 권력의 내팽기침이나 또래 집단으로 부터의 소외라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어느순간부터 조바가 사회적 제재 그 자체가 되었다. 나의 미시적 삶까지 조여오는 국가 권력의 앞재이마냥, 조바는 나의 행동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어디 아랫것들이나 한다는 쌈박질에서 유래한 암바를 가한다. 그는 아나키스트에겐 내셜널리스트일 것이고 파시스트에겐 자유주의자일 것이며 자유주의자에겐 국가주의자일 것이다. 그의 손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가 그렇게 두려워 하던 죽음과 닮았을 수도 있지만 딱히 무슨 영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음.. 조바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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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04-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르바님이 궁금해요. 정말요. ㅎㅎ

바밤바 2008-04-15 20:07   좋아요 0 | URL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니까 완젼 악당같이 묘사해놓았네요.
사실은 좋은 사람이에요. 명륜동에 오시면 실체 확인이 가능합니다 ㅎ
 
차이콥스키 : 교향곡 전곡 [4 for 2]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작곡, Eugeny Svetl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스베뜰라노프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은 투박해 보이는 표지와 어울리게 투박하면서 덜 세공된 음악을 들려준다. 빈필이나 베를린 필의 아름다운 앙상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USSR 심포니의 '꽝꽝' 거리는 이 음색과 음향에서 다소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듯 하다. 스베뜰라노프가 사회주의 체제 내 소련의 대표적 지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과격한 음색이 소련이라는 국가가 요구하는 색깔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음악을 음악자체로 보지 않고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염두에 두고 듣는 것이 또다른 재미를 준다고 할 때 차이코프스키의 여섯개의 교향곡이 모두 들어있는 이 앨범은 차이코프스키를 읽는 조금은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보통 4,5,6번 교향곡에 비해 소외 당했던 1,2,3번 교향곡은 훗날 동성애와 우울증 등으로 재빨리 삶을 마감하였던 이 선율의 천재에게 일어날 비극적 일을 조금은 예측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우선 그의 초기 교향곡들에게서 드러나는 멜랑꼴리의 감정과 후기 교향곡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밝은 정서들의 결합은 오히려 차이코프스키가 지닌 감정적 불안정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교향곡에서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지만 오히려 이때의 차이코프스키에게는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쉬운 작곡 방식이였을 듯 하다. 그리고 밝은 정서가 함뿍 드러나는 1번 교향곡의 중간 악장에서는 이 멜랑꼴리의 화신에게도 햇살 가득한 날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 아닌 음표로 이야기 해준다.

 소위 범작이라고도 불리는 이 세개의 교향곡은 후기의 세개 교향곡을 남기기 위한 습작 수준이 아닌 감정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한 도입부와 전개부로 볼 수 있다. 극단의 우울함으로 치닫는 후기 교향곡의 선율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러한 것을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심장을 한웅큼 할퀴는 교향곡의 향연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밤잠 못이루게 했을지를 고려해 본다면야 내면에 침잠한 감정을 휘젓는 그의 선율이 어떠한 형태로든 음악의 지고지순한 형태에 근접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보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의 본질에 가까운 연주는 아마 그 미세한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과격하면서도 언제 끊어질지 모를 갸날픔을 동시에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스베뜰라노프의 연주는 갸날프기 보다는 무조건 앞으로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질주 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므라빈스키가 보여주는 과격함 보다야 덜 하지만 이 연주는 조금은 더 투박하면서 덜 세련된 연주로 천재 작곡가의 밝음과 어둠의 변증법을 과격하게 형성하고 있다.

 어떤 곡이 세상에 나온 뒤 부터는 그곡은 작곡가의 것이 아니라 연주가 내지는 청중의 것이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해석할 적에도 조울증의 조증에 초점을 맞추느냐 우울증의 울증에 초점을 맞추느냐 또한 연주자의 몫이다. 다만 그 작곡가가 남긴 전 교향곡을 연주해본 지휘자와 악단이라면 작곡가의 입장에서도 그 곡을 해석할 수 있는 생각거리가 충분히 많을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 USSR 교향악단과 스베뜰라토프의 연주는 세공의 정밀함을 떠나 청중과 작곡가의 감정선을 유장하면서 거칠게 연결해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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