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가 나와 같이 살면서 나는 좀 변했다. 스토아 학파(stoic)적 자세로 자취방에서의 삶을 영위 해 왔는데 이 쾌락주의자인 조바는 나의 경건한 생활에 육식과 유흥을 심어 준다. 그가 전해주는 육식이라는게 고작해야 치킨 몇조각과 조금 더 고급스런 상차림이 놓여진 식당에서의 식사이지만 은근히 절제를 모토로 살고 있던 자취방에 평지풍파를 가하고 있다. 밤에 자잘한 세속의 소리에 귀를 막고자 클래식 음반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그는 나에게 린치를 가할거 같은 눈빛으로 준엄하게 정지 버튼을 누르라고 한다. 혹시 정 그렇게 음악이 듣고프다면 이어폰을 끼고 들으라는 그의 강권은 사소한 자유마저 억압하는 빅브라더와 같은 독재의 전형이다. 덕분에 잔뜩 날카로워진 신경과 무던하게 살이 올라버린 몸과 수십번의 조임질이 가해져야 할 것 같은 생활의 나태함이 나를 점점 대중과 괴리 시킨다. 자아가 제대로 옹립하지 않은 마음에 타인과 뛰놀고픈 욕망은 사치라 여기고 오로지 스스로를 위한 노동에 매진하고자 할적에도 조바는 다시금 준엄한 짓누름을 가한다. 자기가 가지고 온 밥상이라며 홀로 공간을 차지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며 나의 공간은 공공재를 바라보는 상인의 탐심이라도 작용한듯 선점한뒤 버티고 나가지 않는다. 햇살 가득한 방으로 이동하기 위한 열망으로 새로이 이사한 방안에 반지하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검은 대형(big brother)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그가 심어주는 유흥이란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다. 스타를 좋아하긴 하나 가끔씩 생활의 반주로 섞어 들곤 하던 것을 그는 일상이라는 들판에 심어 버렸다. 몇번이나 싫다고 하지만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아는, 마치 파놉티콘의 간수마냥 나의 치부까지 아는 그의 퀴클롭스와 같은 눈은 결국 나의 욕망을 건드려 그의 뜨거운 욕망과 합치시켜버린다. 그 욕망의 활주로를 나오고 나면 나의 불평은 지난하게 이어지지만 마이동풍이란 고사성어만이 말이 이어지지 않는 공간을 밀도있게 채운다.

 별칭이 조바(jorba)니까 그 희랍인인지 그리스인인지 하는 조르바처럼 좀 자유롭고 대인배처럼 살았으면 좋겠지만 조바는 스스로를 소인배라 칭하여 본인의 옹졸함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옹졸함에 떳떳한 것이 대인배라 여기는 그의 괴상한 배짱은 어떠한 수사학이나 논리학 또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침투하지 못할 그만의 철옹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고선 본인의 공부가 급하면 그는 나의 나태함을 질책을 가하며 스스로를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리고선 승리의 쾌감을 느낀다. 물론 그가 공부하러 나갈때 주로 내가 하는 행동은 잠이다. 잠만큼 사람을 달콤하게 매혹하면서 많은 영감의 사료가 되고 벌판이 되고 광장이 되는 공간이 없기에 나는 잠을 예찬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사는 자에겐 그만큼 사회적 제재가 가해지기 마련이다. 보통 이러한 사회적 제재는 거시적인 국가 권력의 내팽기침이나 또래 집단으로 부터의 소외라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어느순간부터 조바가 사회적 제재 그 자체가 되었다. 나의 미시적 삶까지 조여오는 국가 권력의 앞재이마냥, 조바는 나의 행동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어디 아랫것들이나 한다는 쌈박질에서 유래한 암바를 가한다. 그는 아나키스트에겐 내셜널리스트일 것이고 파시스트에겐 자유주의자일 것이며 자유주의자에겐 국가주의자일 것이다. 그의 손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가 그렇게 두려워 하던 죽음과 닮았을 수도 있지만 딱히 무슨 영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음.. 조바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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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04-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르바님이 궁금해요. 정말요. ㅎㅎ

바밤바 2008-04-15 20:07   좋아요 0 | URL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니까 완젼 악당같이 묘사해놓았네요.
사실은 좋은 사람이에요. 명륜동에 오시면 실체 확인이 가능합니다 ㅎ